-
-
36.5도
김정현 지음 / 역사와사람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김정현님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읽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년후 나왔던 아버지의 눈물을 읽을때도 그런 눈물을 기대했으나 이상하게도 눈물이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다만, 그 책을 같이 읽으신 아버지만 눈물을 한참 흘리셨을뿐..
그리고, 다시 36.5도를 만났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역시나 김정현이라는 작가에 푹 빠지신 아버지께서 먼저 읽어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시골 작은 마을 y의 세 남자가 서울에 상경하고서도 그 우정을 이어나간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인하, 인하네 연탄공장에서 화물차 운전수를 하는 아버지를 둔 수혁, 중국집 아들이었던 대식. 인하와 수혁은 공부를 잘했고, 대식은 둘만큼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체격도 좋고 힘도 세고, 무엇보다도 두 친구에 대해서라면 최고의 의리를 지키는 친구였다.
영국에서 연구소 박사로 지내다 갑자기 귀국한 인하의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수혁은 세계적인 회사인 한국정보의 부회장까지 올라 있었고, 대식은 삼청동의 맛있는 중국집 황궁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연락하면 반가운 이들이었지만, 유난히 수혁은 무뚝뚝하고 까칠하였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아니 사실은 그 어머니의 인자한 영향인지 권력이나 부를 쫓지 않고, 그저 학업에만 전념해온 인하. 그리고 속까지 시원시원한 대식.
내뱉는 말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눈자위까지 벌게진 모습을 보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으로 태어나 살을 섞은 부부도 아니면서 이보다 더 살가울 수 있나 싶었다. 꼭 죽음 앞에서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는 우정만이 우정은 아닐 것이다. 함께하는 동안, 또는 불현듯 생각나는 그 순간 이해타산이나 선입견 없이 기쁘고 그리워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정 아닐텐가. 144p
남자들의 우정이 여자들의 것보다 진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이 책 속의 우정같은 우정이 있을까 싶었다. 특히나 다른 친구들보다도 대식의 마음 씀씀이는 너무나 따뜻하고 세심하였다. 정말 부러울 정도로..
건너건너 아는 어른 중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믿고 맡겼다가 전재산을 날린 경우도 보았다. 남자들의 우정이라는게 어느 정도의 깊이일까? 모든걸 믿고 맡기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사리사욕에 눈이 뒤집혀 모든걸 엎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강남 재개발 이후 부에 눈이 멀어 이혼까지 하게 된 탐욕스러운 부모님을 보고 결국은 불문에 귀의한 세 친구의 또다른 친구 효명. 그래, 사실 효명까지 하면 네 친구의 우정이야기가 되겠다.
36.5도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린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을 거야. 36.5도에서 조금만 체온이 올라가도 아픔이 찾아들고 의식을 놓치기도 하고, 기어이 목숨까지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서로 36.5도를 더해서 포근한 꿈을 꾸고 싱그러운 아침을 맞았잖아. 175p
선비같기만 한 인하의 아름다운 사랑 가경, 갑자기 몇달 여행을 떠난 그녀에게서 영문도 모를 이혼 통보 소식을 듣고 인하는 망연자실하게 되지만, 그녀를 잃고 죽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죽을때까지 힘들어할 시간이 무서울 뿐.. 사실 여자인 나도 가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과묵한 말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정말 사랑한 사람들이었고 부부였다면 제대로 설명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마음으로부터 오는 병으로 심하게 앓고 몹시 힘들어하는 인하와 가경. 그리고 어려서부터의 콤플렉스로 결국은 설자리가 없었던 겉모습만 강했던 수혁, 소탈하게 살았지만 친구들을 위한 버팀목으로 지탱해온 듯한 대식.
그 셋의 이야기는 끝까지 아름답기만 하다.
친구들을 있게 하는 건 이런 우정이 아닌가 싶다.
정말 목숨을 버려서만 위대한 우정은 아닐 것이다. 주는것에 행복한 마음, 그리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그 마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젊은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치중하는 요즘의 책들과 달리 중년 남자들의 정말 진하고 소중한 우정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지만, 여자인 내가 읽어도 참 재미난 소설이기도 하였다. 나 또한 소중한 내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고..
나도 뭐든 챙겨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 우리 아들을 보면 친구네 아이가 생각나고. 맛있는 집에 가면 친구에게 소개하고픈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귀찮을 정도로 챙겨주고 싶은 그런 우정..
책속의 우정만큼은 못하겠지만.. 평생을 같이하고픈 친구이다.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아프지 않게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주는 책 36.5도와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