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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엄마 납치사건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
비키 그랜트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평점 :
제목부터 나를 확 이끌었다. 사실 그리 모범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이 책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어..어..디.. 얼마나 불량 엄마인가.. 읽어나..볼까? 하는 걱정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읽기 시작하였다.
주인공인 나, 시릴 플로이드 매킨타이어는 열살 때부터 법대에 다니기 시작했다.
가난한 엄마가 베이비시터에 아기를 맡길 여력이 없어서 야간수업에 아이를 데리고 다닌 것이다. 강의 시간에 무조건 숨죽이고 조용히 있어야 했고, 시험 기간에는 엄마의 문제를 읽고 또 읽고.. 기말 리포트 제출시에는 나를 도서관 사서마냥 부려먹었다.
나이는 열 네살, 엄마 나이는 스물 아홉살. 10대에 가출해 나를 낳은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경악케 했으리라. 나는 아빠도 모르는 사생아다. 키는 153cm에 밥 먹고 난 뒤 몸무게는 42kg.
엄마는 늘 굴뚝에서 연기가 나듯이 담배를 피우고, 뱃사람들처럼 욕을 해대고,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햄버거와 소스를 잔뜩 얹은 도네어로 매번 끼니를 때우면서도 그렇게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 14.15p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총 44개의 법률 용어로 챕터별 소제목이 붙어 있다. 폭로, 사생아, 법학사, 정신장애, 희롱, 도청, 소유권, 범인 은닉죄 등등..예전에 마치 소설의 기승전결처럼 소제목이 붙어 있는 어린이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이 책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단지 법률 용어로 이렇게 재미난 소설을 쓸 수 있다는게 놀라운 사실일뿐.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이란 민사소송법 시험을 앞둔 엄마의 공부를 돕느라 담배 연기 자욱한 부엌에 앉아 있는 것일까? 11p
엄마는 날 키우는데 정말 최선을 다했다며 고마워하라고 악을 쓰고, 난 위에처럼 생각하고 엄마와 다툰다. 글을 읽다보면 아들이 엄마보다 훨씬 성숙하고, 세심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엄마의 장점이라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줄 알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 하나?
그런 엄마도 어느덧 법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한다. 엄마의 기고만장한 성격 탓에 멋드러진 법률회사에는 면접에서부터 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아툴라의 사무소에 취직을 한다. 그걸 두고서 엄마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말이 있는 걸보면 외국에서는 (아마 캐나다, 글쓴이가 캐나다를 배경으로 해서 썼기에) 법대만 졸업해도 변호사 자격이 되나보다. 우리나라처럼 사법고시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주.주.중3이라고? 난 네가 열한 살쯤 된줄 알았지!"
그렇겠지. 나 역시 당신이 인간인 줄 알았으니까. 고작 몇 분 동안이긴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 중3이 이렇게 덩치가 작다니!..
이런, 네 기분을 상하게 할 뜻은 없었는데.. 분명 여자애들은 널 보고 무척 귀엽단 생각을 할거야. 여자애들은 귀여운 남자를 좋아하거든. 걔들 눈에는 네가 토끼나 고양이처럽 귀엽게 보이겠다. 모성 본능을 자극하고도 남겠어."
그럼요. 당신은 내 살인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52p
어느날 갑자기 손이 하나 없는 바이런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우리집 우편함을 뒤져서 나를 놀래켰다 그리고 우리집에 눌러앉기 시작했다. 그는 사사건건 나와 맞지 않았다. 엄마를 꽥꽥이라 부르고, 엄마도 그와 있는 내내 불편해보이면서도 이상하게 저녁땐 그를 위해 유기농 샐러드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그 일이 발생했다.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이상한 음성 메시지만 남겨놓은채..
평소에 하지 않는 허니, 이런 닭살스런 표현과 함께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도넛(엄마가 좋아하는)을 사먹으라고 하질 않나. 냉장고에 날 위해 음식을 해놓았다고 하질 않나. 무엇보다 수상한 것은 누군가가 엄마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전화가 끊겨버렸다.
그리고 엄마도, 바이런도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면 되지 않냐고?
난 미성년이다. 엄마를 찾기 위해 신고했다가 맡겨질 친척도 없는 나는 어디로 보내질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엄마 따라 법대 다닌지 3년된 내가 직접 엄마를 찾아 수사하기로 하였다.
엄마의 지저분한 낙서장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정말 명석하게 추리해가기 시작한다.
정말 말도 안되는 낙서 나부랭이 같은 것도 정말 잘도 해석해낸다.
"꼬마야,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사가 언제나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건 아니란다." 117p
내가 정말 열심히 추리하여, 나름 처음에 내렸던 결론은..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알쏭달쏭한 엄마의 약어 표시들. 대부분 모음을 생략해버리는 엄마의 메모를 보고 나는 잘못 추정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다시 추정하다 보니 금반언이라는 법률 용어를 해석하면서 드디어 사건의 실마리를 캐내게 되었다.
가출해서 이른 나이에 아기를 낳은 엄마였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 뼈밖에 없는 깡마른 자신의 아기를 정말이나 사랑했기에.. 엄마는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였다. 아이에게 밝히기 싫은 엄마의 과거도 알게 되긴 하였지만 말이다. 엄마는 열네살이나 된 나를 아직도 베이비 시터나 학습 학교 등에 보내려 노력하고, 전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엄마의 욕지거리를 뒷처리하고 다닐만큼 성숙하게 자란 아들은 아툴라등의 엄마 상사에게서도 엄마 이상으로 인정받는 아이가 되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해결한 것도 시릴, 나 였고 말이다.
분명히 심각한 납치 사건이 발생하고, 아이는 엄마의 실종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엄마를 찾기 위해 정말 열심히 추리하고, 분석하고 노력을 한다. 딱딱해질 수 있는 소설을 중간중간 느슨하게 풀어주었던 것은 바로 시릴의 재미난 생각과 표현들이었다. 바이런과의 대화도 그렇고.. 엄마에 대해 그가 VIP (very insane person)등으로 정의한 것도 그렇고..쿡쿡..웃음을 머금으면서 읽을 수 있던 책..
사실 요즘같은 험악한 세상에..그래도 이 책에는 나쁜 사람도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책의 재미를 위해 많은 부분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형제 자매가 모두 변호사이고, 남편 역시 변호사인 까닭에 시릴 만큼이나 법쪽 먹물을 많이 먹었다는 저자의 이 소설은.. 법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 할 만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