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흩어진 날들
강한나 지음 / 큰나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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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사람은 먹다 망하고, 오사카 사람은 먹다 망하고, 쿄토 사람은 입다 망한대.

 

정말이지 오사카는 먹다가 망하기 딱 좋은 도시다. 맛있는건 어디서 죄다 가져왔는지 명성 높은 음식점이 넘실대는데다, 늦은밤까지 먹는 것에 열광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지치지 않는 식탐 또한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76p

닭국물과 돼지육수를 섞어 개발한 독특한 킨류라멘, 타코야끼, 오사카 대표음식 오코노미야키, 오사카 사람들 몸 속에는 우동 국물이 흐른다 할정도로 우동을 즐긴다니 기츠네 우동, 자그마치 스시보다 1000년이나 오래되었다는, 상자에 밥을 넣어 생선을 얹고 식초를 얹어 발효시킨 하코스시, 복어 요리 면허를 처음으로 실시할 정도의 복어요리 천국,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사카 명물 대왕 만두, 100년 전통 명물카레, 새우, 닭고기, 야채, 우동이 푸짐한 우동 스키 등등.. 78p

 

결혼 전에 딱 한번 일본여행을 다녀왔는데, 여동생과 하우스 텐보스를 여행하고 온 적 이 있었다. 나가사키와 후쿠오카로 인/아웃하는 관광여행이어서 패키지 답게 정말 버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 보내며 아쉬운 여행을 마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다음에는 꼭 도쿄에 가봐야지. 하면서 자유여행 계획을 짜봤는데, 어쩌다보니 미식을 사랑하는 내 습성 답게 맛집 위주로 여행스케줄을 짜고 있었다. 그랬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맛집의 천국은 바로 오사카란다. 그렇다면 첫 일본 자유여행은 오사카부터 시작할까? 하는 생각으로 단번에 행선지가 바뀌었다. 물론 지금 당장 출발하기는 힘들겠지만.. 

 

스튜어디스 출신의 내 친구를 연상케하는 커다랗고 예쁜 눈을 지닌 아름다운 여자 강한나, 그녀가 방송하는 글쟁이임을 자부하며 일본에서 글로벌 웨더자키로 활동하며 첫번째 여행에세이 동경 하늘 동경을 내고, 이번에는 두번째 여행 에시이 우리 흩어진 날들을 들고 우리 곁으로 찾아 왔다. 도쿄 뿐 아니라 오사카, 나라, 히로시마, 나가사키, 교토 등의 다른 도시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말이다.

빈티지 감성 여행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낡음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녀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그저 단순한 여행 관광 정보만을 주기 보다 마치 그녀의 숨겨진 다이어리를 읽듯이 지나간 옛 사랑의 추억도 들여다보이고 (그래서 그녀에게 미안해진다. 내가 알아도 되는 건가요? 이별 일년 후에 비로소 너무나 아팠다는 당신의 사랑을..) 3박 4일, 혹은 일주일 코스로 짧게 관광지만 훑다오면 도저히 알지 못할 일본의 다양한 이야기들도 찾아내어 읽을 수 있다. 전철안에서의 풍경에서는, 집에서부터 각잡고 접어온 9등분된 신문을 꺼내 연필로 한자까지 베껴가며 조심스레 읽는 일본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낡고 낡은 책을 읽고 또 읽는 오늘의 미래를 있게 한 노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먹구름으로 드리워진 고베 시내가 순식간에 칙칙해지더라.

'빛의 아이'인 난 주눅이 들어버리고 말았어. 112p

 

넌 화려한 '밤'보다 화려한 '낮'에 더 예쁜 사람이야. '어둠'의 정적보단 '빛'의 활기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이번 고베 여행은 외롭겠구나 예감을 했어. 하긴 외로움,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감정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익숙한 감정이잖아. 살면서 외로웠고..외롭지만 버텨냈듯이. 외로워도 즐겨봐. 어차피 외로우니 여행인거야. 너도 알잖아. 113p

 

일본에선 그때의 나처럼 고개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위해 땅에 예쁜 그림을 그려 두었나봐. 빙그레 웃으며 맨홀 뚜껑에게 말을 건넸어.

 

"고마워, 고개 숙인 사람에게도 웃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줘서......"

130p

 

네코, 유난히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정서도 궁금해하고, 낡은 사랑5에선 그를 드디어 만난다. 새로운 장소, 낯선 이 땅에서.. 하루키의 고향 고베를 둘러보며 60년된 멋드러진 커피를 마시고, 미래의 배우자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우리 신랑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서서히 커피에 중독이 되어가는 중이고..) 그녀의 삶, 그녀의 여행..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

 

영화 "젠젠다이조부"를 보며 나라에 와보고싶었다는 그녀.

 

초반에는 나라가 너무 오래돼서 음침한 곳, 사슴냄새만 풀풀 풍기는 무의미한 곳으로 치부되었지만, 하지만 나라를 직접 가보면 예기가 달라질거라고, 영화는 설레는 마음을 내비친다. 193p

 

그리고, 그녀의 여행 내내 비쳤던 영화 중에 우동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나도 본 영화라 반갑고 또 더 정겹게 느껴지는 대사들이었다. 끝은 코믹물처럼 끝났지만, 영화 속 우동의 장인 정신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동을 먹으러 사누키에 가고 싶게끔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으니까..

 

그녀 역시 첫 일본여행이 도쿄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난 내 일본에서의 첫 기억이 도쿄가 아닌 히로시마였다는 사실에 줄곧 감사해. 사실은 말이야. 히로시마였기때문에 내가 더 일본에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었던 건지 몰라.

낯선 이방인의 출연에 발그레 웃던 순진무구한 히로시마 사람들의 얼굴. 그걸 처음 보게 돼서 다행이야.

226p

 

나가사키 편에선 그녀의 나가사키 우동 사진을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일본 여행에서 정말 맛있던 먹거리로 기억되던, 기대하지 않았으나 너무 매력적이었던 바로 그 음식.

 

닭고기와 돼지고개, 야채와 해산물이 정체불명으로 뒤섞인 희멀건 국물이 이렇게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는게 난 매번 감동이다.

마음 속 모든 감정을 죄다 섞어 놓는다면 오히려 예상과 달리 평온이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보지 않았기때문에 미처 몰랐던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반전이 생길 수 있다. 나가사키 짬뽕처럼.

312p

 

 천년고도의 쿄토에서 그녀는 낮음을 발견하였다.

높을 수록 빛날 것 같았어. 높을 수록 우러러보일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낮음을 지향하는 교토에서처럼 사실 우리도 알고 있잖아.

자신을 높이려는 사라보다 스스로 낮추는 사람에게 빛이나고

이기려는 사람보다 져주는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는 진리를...368p

 

하늘이 정해준 숙명대로 경건히 살아가는 교토 사람들의 기품, 그리고 교토는 특별한 도시기에 교코인도 특별해야한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치는 칼날 같은 자긍심도 같이 기억하겠노라 하였다.

 

그저 다 같은 일본인줄 알았는데..사실 우리도 도마다 성격이 다르듯, 도시마다 이렇게 성향이 달랐나보다.

오사카 인들은 먹을것을 즐기고, 유일하게 웃음이 많은 일본인이라 하였는데, 교토인은 기품있고, 특별한.. 진심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라 하였다.

 

그리고, 도쿄..

그녀가 웨더자키를 하며 살았던 도쿄. 그 안에서 그녀는 모순덩어리 일본인을 이야기한다.

사실 나도 일본 문화는 좀 과격하고, 선정적일 거라 생각했다가도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내 이웃 토토로 같은 서정적인 만화들을 보면 그들의 감수성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그녀 역시 그런 면을 발견했나보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인용하면서 그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일본인에 대해 답하면서 자기도 난감해하였다.

 

그저 자신의 글을 읽고서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한 저자

하지만, 이 글을 쓰며 많이 울고 웃으며 고행을 겪는 마음으로 적어내려갔다는 그녀의 글들..

그녀의 마음이 느껴지는 잔잔히 들려주는 글들과 그녀가 직접 찍은 프로못지않은 사진들..

그 안에서 관광지의 포장된 도시락같은 일본의 모습이 아닌, 따뜻한 집밥 같은 그런 일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첫번째 책 역시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진심이 담겨있는 여행 에세이를 만나 반가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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