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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건너려거든 물결과 같이 흘러라 - 다시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옛이야기
이강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어려서는 옛날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곳이 주로 책이었다. 그래도 누군가의 입에서 전해들은 옛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아홉살 무렵에던가? 어느 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자 엄마가 해주신 옛 이야기가 바로 에밀레 종 이야기였다. 어느 가난한 집의 부모가 자신의 어린 아기를 시주하여, 종을 만드는데 그 아기를 넣고 만들었더니 비로소 종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라는 어린 나이에 듣기에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였다. 종은 마치 아기가 엄마를 부르듯.."에밀레..에밀레.."하며 소릴 낸다고 하였다. 엄마가 그 이야길 들려주시는데, 너무 슬프고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아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반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엄마는 자식을 위해 모든걸 다 해주시는 분인줄 알았는데, 그 엄마는 왜 그러셨을까 어린 나이에도 몹시 궁금하기도 하였다. 끝으로는 시주받았다고 아기를 살리지 못하고 고지식하게 끓는 쇠솥에 아기를 넣은 끔찍한 스님들이 가장 무서웠고 말이다.
어른이 되니 누가 옛 이야기를 들려줄 일이 많지는 않지만, 어릴때보다도 더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자 새로운 소설을 더 많이 읽게 되고 어려서 읽었던 재미난 옛 이야기들은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그 옛 이야기들을 반추하여 어른들에게 다시금 인생의 교훈을 얻게 해주시는 교수님의 글이 있어서 소개를 해볼까 한다.
"어이 촌인들! 원산호가 내근산하야 아지부를 호식거했으니 지총자는 지총래하고 지봉자는 지봉래하시사" 114p
이게 무슨 소리람? 이는 호랑이가 장인을 물고 가자 한 문자 쓴다는 사위가 나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 사실이다.
"잠을 자던 중에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나기에 나와 보았지요. 그랬더니 워워워워 워워워워워, 이런 소리만 들리고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다시 들어가 잤습니다." 114p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알아듣기는 "워워워워"로만 들린 것이다. 사또는 오히려 쓸데없이 문자쓰는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사위를 옥에 가두었다. 사위가 풀려나는 날 사또가 이르기를 "앞으로는 남들 모르는 문자를 쓰지말라"하였는데 사위의 대답인즉 "예, 갱불 문자 하겠습니다" 115p하고 하더라.
소통할 수 없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배운 사람이 오히려 낭패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지식인 스스로 소통 가능한 통로를 찾아내는 것 못지 않게 주변에서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도 중요한 것이라라고 말하였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옛 이야기에 대한 화두를 먼저 던져두고, 옛 이야기를 들려 준 후 다시 작가의 고찰이 이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옛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그 안에서 교훈을 얻는 방법을 좀더 쉽게 가르쳐주고 있다.
책에는 우리가 어려서 읽었던 많은 옛 이야기들과, 미처 읽어본 적 없는 새로운 (아마 유명한 이야기임에도 내가 못 읽었던 까닭이었겠지만.) 이야기들이 혼합되어 옛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동시에 작가가 쉽게 풀어 설명해준 덕에 옛 이야기의 교훈을 벗 삼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미래지향적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많은 이야기들을 여덟 물결로 크게 분류하고, 각 물결마다 6~8개 가량의 각각의 이야기와 해석들을 곁들여 마치 그가 예전에 썼다는 좋은 생각의 하루 귀절들처럼 전철 속에서 짤막하게 혹은 바쁜 일상중에서 간단하게 읽기 좋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짧지만 강한 교훈을 주는 옛 이야기의 매력! 여기서 읽은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아이들에게 들려줘도 좋아할터이고, 친구들과 잠깐 이야기하기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옛 이야기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 중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추려보자면..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이야기가 새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다.어느 고승이 스님을 박대하는 부잣집 여인에게 "백세 장수하십시오"라 하였고, 가난해도 남편이 먹을 점심을 나눠준 여인에게는 "일찍 세상을 뜨십시오"라고 하였다. 누가 봐도 이상한 그의 조언은 몇십년이 지나 힘을 발하였다.
거지꼴로 땅바닥에 떨어진 감을 주워먹고 있는 비루한 늙은 할멈은 처음의 부잣집 여인이었고, 가마를 타고 멋드러지게 지나간 귀부인이 일찍 환생을 한 가난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새로 접한 이야기기도 하였고, 이게 무슨 뜻일까? 그냥 이야기만 들었으면 난감했을 이 이야기에 작가는 이렇게 평을 하고 있다. 여기에 인과응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말을 덧보태면 너무 상투적인 틀에 갇혀버린다. 장자에 나오는' 오래살면 욕되는 일이 많다'처럼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이 이야기와 같이 그로 인해 욕을 보는 일이 왕왕 있는 것이다. 또 이 세상이 결코 끝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세가 아니어도 이 세상 이쪽에서의 파멸이 저 세상 저쪽에서의 비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낙담하지 말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길 꿈꾸는 순간부터 희망은 다시 피어오른다.. 75p
늦깎이 서당학생이 된 남편이 스승이 가르쳐준대로 '삼인위덕-세번을 참는 것이 덕이 된다'을 배워 아내의 정부인줄 알았던, 그래서 살인할뻔한 중이 사실은 아내의 사촌 여동생이었음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분노로 가득한 때는 악인 줄만 알았던 것이 진짜 악이 아니라 잠깐의 착각에 불과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212p
옛 이야기에 담긴 많은 교훈들을.. 그저 흥미로만 매듭짓고, 또 권선징악인가? 하고서 넘겨짚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작가는 꼼꼼이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정말 어느 배우의 말처럼 "잘 차려진 밥상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세상은 책이라는 좋은 것을 통해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 더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