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 내가 그리로 가서 너희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너희가 널브러진 해초처럼 썩어가는 것을 막아줄게. ...너희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 살아 숨쉬는 그 곳에 늘 함께 할 거야. 모든 것이 영원히 그 안에 머무를거야. 148.149p

 

젊고 앳된 용모를 지닌 여선생님과 19살난 남학생과의 사랑.

다소 통속적이고, 흥미 위주로 흐를 것 같았던 그 둘의 사랑을..

80이 넘은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여운으로 그들의 사랑을 화석화 시켰다.

 

순식간에 호박 안에 갇혀진 곤충들처럼..

그 둘의 아름다운 사랑은 여선생님의 죽음으로 영원히 소년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된 것이다.

그 영원한 침묵.

살아만 있었다면 한창 꽃을 피울 수도 있고.. 혹은 사제지간의 사랑이라 크게 문제될 수도 있을 그 어려운 난국에 더이상 진행되기도 어려웠을 그 사랑은.. 아름다운 두 연인을 영원히 갈라놓음으로써 오히려 마음 속에 더욱 각인시키는 잊지못할 사랑의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그녀의 추모식을 하는 자리부터 시작되어 학생 대표였지만, 선생님의 추모사를 할 수 없었던 크리스티안의 이야기, 그와 그녀의 과거의 이야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젊고 아름다웠던 슈텔라 선생님은 남학생들 뿐 아니라 같은 학교 선생님, 혹은 국제 회의의 대표의 관심을 끌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왜 크리스티안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그저 그 둘의 사랑이 잔잔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드러나고, 크리스티안의 마음에 미처 표현하지 못한 그녀에 대한 사랑이 절정으로 치달아 오름을 보여주는 과정 역시 지나침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억지스러움이 아닌 그저 자연스러움..그리고 순수함.

'죽음'이라는 슬픈 이별 앞에 더욱 성숙해질 수 밖에 없는 절정의 사랑.

지크프리트 렌츠가 아닌 다른 사람이 표현을 했다면..

사제지간의 사랑을 이렇게 여운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정말 그대로 못이 박혀버린 듯한..그 정지된 시간을 말이다.

침묵의 시간..

소년의 마음 속에..

그리고 물결에 떠내려간 여선생님의 마음 속에 각인되었을 그들의 사랑의 시간을..

 

행간을 읽다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러했던 것 같다.

얇지만, 깊이있게 느껴지는 책. 서술된 사랑 그 이상의 사랑을 마음으로 읽어내릴 수 있는 책.

슬픔 앞에 더 아름다운 사랑이 담긴 책..침묵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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