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필립 그랭베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거기에는 방학 캠프 사건이, 그의 스키 사고와 내가 함께 가지 않은 사실이 빠져 있었다.

일기는 우리 둘이 완벽하게 하나이기를 바란 그의 필사적 바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로 남아 있었다.

'진짜 우정이란 완전히 상대방이 되는 것이다.

우리 둘은 언제가 그랬고 죽을때까지 그럴 것이며 저 세상에 가서도 그럴 것이다.'

62p

 

소유에 대한 무서운 우정의 이야기.

악연..

 

책의 소개글과 다른 서평글들을 먼저 읽어보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 나는 그 악연의 공포에 대해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며, 혹시 이건 아닐까? 아니면 이건? 하면서 온갖 안좋은 상상들을 하였다. 그래서, 친구 만도를 정말 나쁜 사람으로만 머릿속에서 자꾸 몰고 갔다.

 

그저 그는 친구를 몹시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을뿐인데..

처음부터 아무 정보 없이 그냥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지나치게 허구적인 상상이 커져서, 다 읽고 나서.. 아..이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제 풀에 꺾여버린 마음이 들고 말았다.

 

사실 이 일이.. 내게도 비슷하게 일어났었기에..

나는 이 악연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내 인생에 두번..

우정이라는 이름의 굴레로 나를 옥죄어온 일들이 있었다.

 

사춘기에 한번, 그리고 대학교때 한번..

둘다 나를 몹시 힘들게 한 고통의 우정이었다.

한번은 다른 반이 되었다고 자신을 외롭게 하였다며, (반이 갈려서 멀어지는건 어쩔 수없는 일이라 생각했던건 어린 나의 순진함이었던가? 아니면 그 애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던가..)중학교때 만나서는 나도 당해보라고,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 나를 완전히 친구들에게서 멀어지게 미리 조치를 해두었다. 처음 만나는 그 생소함에 나는 정말 벽에 부딪힌 느낌이었고.. 사춘기가 이토록 혹독한 것인지 처음으로 쓰라리게 겪어봐야했다.

 

그리고, 두번째..우정이라는 이름의 굴레는..이제는 어른이 되어 우정이라는 굴레로 친구를 옥죌 일이 없겠다 방심했던 대학생때 또 다가왔다. 친하게 지냈던 언니가.. 내가 다른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을 몹시 싫어하며.. 자꾸만 구속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무섭게 닥달하고..

 

그 구속이 갈수록 심화되어서 친구도 나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기숙사를 나올 때가 되어 우리 둘이 같이 하숙을 한다고 하자, 언니는 정말 폭발할 지경이 되어... 그 날 밤 언니가 우리 둘의 핸드폰에 남겨놓은 음성 메시지는 정말 너무너무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른이 되었고..나보다 몇살 많은 언니여서 더 그런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그저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고 마음을 준 것 뿐인데..그냥 다른 친구들처럼..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는데..왜 자꾸 나를 구속하려 들었던 걸까..

 

자꾸만 부담스럽고 너무 힘에 겨웠던 생각이 난다.

 

만도..

그에게서 언니를 보았고.. 초등학교때의 그 아이를 보았다.

진실, 우정..이라는 굴레로 나를 구속했던 그 이름...

그래서 우정이 무엇인가.. 내게 아주 혹독하게 느껴지게 했던 그것들..

그래도 사람간의 친분, 우정이란 것에 아직도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은..어쩔 수 없이 내가 계속 사람을 좋아하는 천성을 지닌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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