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걸
페터 회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눈과 귀와 마음을 크게 열어라

그리고 음악을 눈으로 읽을 수도, 혹은 문자를 귀로 들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언어의 마술사 같은 페터 회의 유려한 문체로 씌여진 소설을 만났다. LA 타임즈에서 "보석으로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 작품. 콰이어트 걸.

제목이 왜 콰이어트 걸인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주인공인 카스퍼 크론은 타고난 광대이다. 세계적인 서커스 광대. 하지만, 그의 놀라운 재주는 비단 사람들을 웃기고 감동시키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발산되는 소리와 음조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고, 현재의 감정이나 기타 등등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가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녔다. 게다가 그가 바라는 기도는 실제로 이뤄지기도 한다. 완벽해보이는 그이지만, 현실의 그는 완벽한 삶을 이뤄내지 못했다. 도박에 빠져 탈세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고, 곧 연행될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어느 날 그런 그 앞에 놀라운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 소리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1초도 멈추지 않아. 하지만, 너의 시스템은 달라. 가끔 시스템이 정지되면서 완벽하게 조용해지더구나.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하는 지도 알고 싶고. 난 평생 그 침묵을 찾아왔어. "     191p

 

완벽하게 조용해지는 순간이 오는 소녀. 클라라마리아.

그는 이 기묘한 소녀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면서도 어쩐지 소녀와 있는 순간 순간 자식같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친근해지기도 하였다. 그녀와의 만남들 역시 평범하지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유괴되었음을 알고 정말 전적으로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클라라마리아처럼 "조용해지는" 특이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수녀들에 의해 클라라와 다른 실종된 아이까지 두명의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대신 그의 탈세 혐의를 면제해주겠다는 제의와 함께..

카스퍼는 그가 가진 절대 청각에 의지해 클라라마리아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그가 슈퍼맨은 아니었기에 그는 결국 사망에 이를 정도의 심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야기는 그의 진정한 사랑인 스티나와의 인연까지 맞물려서, 클라라마리아를 추적하는 사건, 그리고 실종사건과 관련된 경찰의 추적 등 복잡한 사건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그의 절대 청각은 정말 절대적인 것이어서 공간과 영혼까지도 넘나들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를 찾다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한 힘도 바로 클라라마리아에 대한 걱정이었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이 이야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바흐 이야기.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못한 나는 모든 문장마다, 그리고 모든 소리를 바흐의 음조로 표현한 놀라운 페터 회와 카스퍼의 능력을 100%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글자를 소리로 전환시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정도로 나는 음악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읽었다면 책 속 행간마다 흐르는 그 음악에 전율을 느끼며 더욱 감동적으로 읽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책이 영화라면 정말 끊임없는 음악이 연주되고 흐르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래서 거의 700페이지 가까운 책을 읽었음에도 어쩐지 나는 절반밖에 읽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나보다. <보나 녹스>와 <샤콘느> 책 속에 흐르는 수 많은 곡 중에서도 이 두 곡은 꽤 의미가 있는 곡이었다. 글의 흐름상 말이다.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하고, 당근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실제로 그 곡을 알지 못하고 그저 제목으로만 읽어야했던 나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책을 읽을때도 박학다식하고 다른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더욱 깊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깊게 들게 한 그런 책이었다.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앞 부분은 다소 좀 느슨한 느낌이라 어려웠지만 읽을 수록 특히 후반부로 갈 수록 글의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어 마지막 부분의 결말에 놀라게 되는 그런 책.

 

내가 만난 "콰이어트 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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