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요새의 아이들
로버트 웨스톨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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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집 근처에 큰 공터에 벽돌 공장이 있어서, 벽돌을 구울때 쓰는건지 뭔지 몰라도 웬 나무 판자 같은게 잔뜩 쌓여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 근처에 몇번 가봤다가 친구들과 장난삼아 그 판지로 집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방 한칸 정도를 만들고 집에 갔는데.. 며칠 후에 가보니, 남자애들이 모여서 방이 몇칸이나 되는 아늑한(?) 집을 만들어논 것이다. 사실 비밀 기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럽고 지저분하긴 해도 그 곳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그 공장 사장님인듯한 어른에게 혼나서 집을 허물기 전까지 친구들과 참 자주 찾아가 놀았던 것 같다. 그 안에 있으면 많은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었고, 가장 좋았던 건..우리 힘으로 만든 우리만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그 놀라운 믿음의 결과가 어설프지만 판자 집의 형태를 갖춰서 제법 웅장하게 우리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 뛰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놀이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 짧았던 며칠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사실 집의 구조나 외양 같은 사실적인 면보다도 그때 느꼈던 벅찬 설렘과 감동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영국과 독일이 접전을 벌이던 제 2차 세계대전의 영국의 한 작은 마을 가머스에서 일어난 이야기 <작은 요새의 아이들>
우리나라 나이로 중3정도에 해당되는 채스는 또래 친구들보다 제법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 친구다. 다른 남자애들처럼 전쟁 수집품 취미가 있었는데, 매일 독일군 전투기의 폭격과 공습에 시달려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그런 작은 취미가 유일한 돌파구였으리라. 매일 아침 옆집이 폭격에 날아가고, 시체가 널부러진 모습을 보고 살아야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낙이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날 채스가 아주 우연히 추락한 독일군 비행기에서 기관총을 발견하고 그것을 숨긴다.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들과 함께 기관총을 사수하기 위해 그들만의 요새를 만들기 시작한다. 요새에 필요한 사람과 장소, 그리고 기관총 사용법 등등 채스와 그의 친구들이 방법과 기술들을 터득하는 데에는 어른인 나도 놀랄 만큼 영리한 그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래서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한 동네 어른들의 눈길을 피해 그들만의 아지트가 완성된다. 가머스 전체에서 가장 안전한, 비스마르크 호가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면 어떤 공격도 견디어낼 "카파레토 요새"가 완성된 것이다.
요새 내무 규칙 13조항 중 10 번째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에게 고자질하는 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 얼마나 아이다운 생각인가? 어른들을 속이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감에도 아이임에 드러나는 귀여운 면들이 많아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게 되었다.


그들은 기관총 포장을 벗기고 그 위에 할아버지의 유니언 잭을 덮은 뒤 모두 기관총에
손을 대고 니키를 돌볼 것을 맹세했다. 그 맹세를 통해 카파레토 요새는
놀이터 이상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이제 적은 독일만이 아니었다. 존을 뺀 모든 어른도 일종의 적처럼 되었다. 141p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아이들의 모험이었겠지만, 그들은 진정한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
요새를 만들며 다져진 우정은 친구를 지키고, 그리고 서로를 지켜내려는 마음으로 뭉쳐지게 되었다.
정말 독일군이 쳐들어올거라는 공습령이 내려지자 어른들도 방공호에 숨고, 혹은 도망가기 위해 차로 이동하고 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뭉친다. 스스로를 지키고,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최선이고 안전하다 믿어지는 그들만의 카파레토에 모여든 것이다.

그들의 요새가 전쟁과 어른들의 눈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인가?
나중에 추락한 비행기의 독일군 조종사와 아이들이 요새에서 맞닥뜨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렸을적의 실제 전쟁 경험을 자신의 어린 12살 난 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만들었던 로버트 웨스톨은 이 데뷔작으로 바로 "카네기 메달"을 수상했다. 그 이후에도 <허수아비>라는 새로운 작품으로 또 카네기 메달을 수상해 카네기 메달을 두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영국 BBC에서 1983년에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002년에는 BBC라디오 4에서 라디오용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끝까지 용기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 우정이 너무나 반짝여 아름다운 아이들
너무나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그리고 정말 카네기 메달 심사위원단의 말처럼 "지난 70년동안 가장 뛰어난 청소년 소설"이라 할만큼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화려한 수식어구가 많이 붙은 작품이라 기대가 컸는데, 책을 다 덮고 난 이후에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리는 걸 보면 그들은 정말 내게 있어 작은 영웅이 아닌가 싶다.

"닐 카르보룬 둠, 나쁜 놈들한테 기죽지 말라는 뜻이야."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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