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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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이 정말 유명하게 잘 알려져 있는데 아이에게 추천해주고 정작 나는 읽지 않았었다.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구차한 변명이겠지.

그가 나치 수용소에 끌려갔다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이고, 그 책이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책이라 하여 궁금해하기는 했었다.

그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읽은 이 책으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빅터 프랭클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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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고 지칠 때 다른 사람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때가 많다.

나만 죽을 것 같고 나만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고 세상이 왜 나한테만 이럴까 야박하게 느껴져 세상에 대한 원망이 생길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나만 힘들다 생각했는데, 이 책의 주인공 빅터 프랭클 앞에서는 내 고민이 지나치게 사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나는 과연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미국 비자까지 받아놓은 상황에서 부모님이 걱정되어 차마 떠나지 못하고 그 곳에 남았다가 결국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부모님과 형, 아내까지 모든 가족을 다 잃고 혼자서만 살아남게 된다.

과연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런 상황 속에서 선택이 주어질때 과감히 남겠다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수용소 안에서는 인간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고, 짐승처럼 대우를 받고 번호로 불리고 더이상 사회에서의 나를 찾을 수 없고,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곳에서 희망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운데 그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새로운 이론까지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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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줍짢은 위로가 아닌 절망의 끝을 본, 절망의 끝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진심어린 회고록이랄까.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이 책의 부제이자, 이 말 하나로 강력하게 읽고 싶어진 책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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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의 십장이 그를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하여 돌을 던져 주의를 끌려 하였다.

인간으로써 너무나 뼈아프게 느껴지던 모멸감 앞에 그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프랭클의 명언으로 통하는 이 문장은 사실은 미국 심리학자 롤로 메이의 문장이 와전한 가짜 명언이라 하였다.

하지만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증명해낸 '선택의 자유'라는 실존적 본질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하였다.

외부의 폭력은 자극적이고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존엄은 반응이었다. 그 사이 아주 짧은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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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를 모멸하고 무시할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고, 그것을 참아내지만 속은 아주 만신창이처럼 들끓는다.

타인의 무심한 행동에 머릿속으로 시나리오가 쓰여진다라는 표현도 너무 내상황 그대로인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나의 소중한 하루가 나를 기분나쁘게 한, 한 사람으로 인해 망쳐졌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나이들수록 사실 어릴 때보다는 좀더 유연함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나쁜 상황이 머릿속에 남는건 정도의 차이일뿐 사라지진 않았다.

이 책에서는 외부에서 던진 공이 그대로 내 안의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산다 라고 표현이 되어 있었다.

부끄럽지만 정말 나는 그 자극과 반응 사이의 빈공간을 너무 얇게, 혹은 전혀 못 느끼고 즉각적으로 반응 (물론 바로 화를 내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진 않았지만)하고 살았던게 아닌가 싶었다. 내 안에 속상함을 가득 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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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이 아들러와 프로이트를 넘어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쾌락의 원리에 묶인 존재로 아들러는 권력의 의지에 끌려가는 존재로 보았다.

프랭클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떠밀리는 와중에도 떠밀림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 결정하는 존재라고 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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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해답을 자극이 왔을때 반응하기 전에속으로 한번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반응하려는 이 방식이 정말로 내가 선택한것인지, 아니면 늘 해오던 자동반응인지를 질문하고 그 질문이 자극과 반응사이에 틈을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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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인 반응이 정상이다.

이 말도 진짜 그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체가 쌓인 막사 한구석에서 며칠을 굶은 사람이 방금 숨을 거둔 동료의 식기에 남은 수프를 허겁지겁 떠먹는 광경을 기록한 프랭크의 기록이 있다 하였다.

대부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달리, 일정 수준의 안전과 포만이 뒷받침된 이후에나 가능한 도덕이라는 것이 이미 무너진 전제 하에 도덕을 잣대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었는데 그조차도 프랭크는 따로 변호하지 않고, 다만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상이다. 라는 문장만을 남겼다 한다.

다시 책 밖으로 넘어와서 큰 상실을 겪은 사람이 (가족,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모든 것을 끊고 망가진 모습이 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가혹하게 대하기도 한다. 타인에게는 오히려 그래도 된다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인색하다.

세상에는 다양한상실이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무너짐을 결핍 자체보다 결핍을 대하는 태도에서 온다고 말을 하고 있다.

결핍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통과하는 시간이니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는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세상의 다양한 결핍 속에서 실패라 자책하고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라는 것.

프랭클을 통해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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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힘들때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주는 책이구나 싶었다.

어떤 상태에서 읽느냐가 정말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아직은 살만한 상태인가 싶었다.

그런데 정말 힘든 상황이었을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정말 한구절 한구절이 너무너무 와닿았으리라 싶은 문구들이 정말 많았다.

그 힘으로 견뎌낼 수 있으리라 싶은 명문장들 말이다.

힘들고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을 때 세상이 나만 죽어라 떠미는 것 같은 절망이 오면 이 책을 반드시 다시 펼쳐봐야겠다 싶었다.

나를 세워줄 내 자신의 구원을 찾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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