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플러스 이코노미 - 없애고 바꾸지만 더 많이 창조하는
이경전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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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변화를 목격했다. 젊은 시절 뜨거운 물을 끓여 밥을 짓던 아궁이가 가스레인지로 바뀌고, 동네에 몇 대 없던 흑백 TV가 이제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와 세상의 모든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 격변의 세월 속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회가 겪었던 진통과 두려움 또한 생생히 기억한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는 직장의 수많은 주임과 과장들이 "이제 우리는 다 실업자가 되는 게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고, 공장의 자동화 기계가 들어설 때도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이경전 교수의 저서 <AI 플러스 이코노미>는 바로 그러한 변화의 현기증 속에서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아주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역사의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저자는 인공지능(AI)이라는 미증유의 기술을 마주하고 내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전전긍긍하는 현대인들을 향해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 과거 인쇄기가 발명되었을 때 평생 글을 베껴 쓰던 필경사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카메라의 등장은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마차가 다니던 길에 자동차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나타났을 때, 생계를 잃은 마부들의 절규는 온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 흘러갔다. 필경사는 사라졌지만 인쇄업과 출판업이라는 거대한 산업이 탄생했고, 화가는 사진사로 변신하거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개척했다. 마부는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었고, 자동차 산업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자리와 부를 만들어냈다.

 

저자의 통찰 중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은 신기술은 언제나 신산업을 탄생시키고 더 많은 수요와 혜택을 가져왔다는 본질적인 선언이다. AI 역시 마이너스(뺄셈)의 기술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풍요롭게 만드는 플러스(덧셈)의 엔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막연한 공포와 세대 간의 격차가 결코 기술 그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우리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오랜 시간 굳어진 문화가 미처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일시적인 병목 현상일 뿐이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AI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AI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고통을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도구임을 알게 된다. 비록 그 파급 효과의 크기가 과거의 기술들에 비해 훨씬 거대하고 변화의 속도가 눈이 멀 정도로 빠르다는 차이점이 있을지언정, 역사가 증언하는 발전의 법칙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기술을 움직이는 궁극의 엔진은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의 우수성을 찬양하는 미래 예측서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선을 바르게 그은 뒤, 이를 다시 미래로 연장해 보여주는 지침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의 문을 닫기 쉽지만, 이 책을 덮으며 도리어 마음속에 잔잔한 용기가 솟아남을 느낀다.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 세대와 손주 세대에게 걱정하지 마라, 인류는 언제나 답을 찾아왔고 이번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든든하게 격려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얻은 기분이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두려움 대신 역사의 거울을 비추어 보며, 다가올 풍요로운 미래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는 법에 대한 이경전 교수의 강의는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책의 핵심 통찰을 명쾌한 말글로 풀어내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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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 대화법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황정원 옮김 / 포텐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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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의 고개를 넘고 보니 세상만사 다 부질없다 싶다가도, 여전히 사람 관계만큼은 뜻대로 안 되어 마음을 앓는다. 나이 들면 주위 사람들과 허물없이 허허실실 지내면 그만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내온 이가 은근히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내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고 이용하려 들 때의 씁쓸함은 나이가 들어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노년의 초입에 서서 그런 배신감이나 소외감을 마주하면, 젊은 날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고 오래가기도 한다.

 

나이토 요시히토의 <아무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 대화법>은 이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고 만만한 대접에 속앓이를 하는 이들에게 아주 요긴하고 실용적인 처방전을 건넨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을 친 대목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용당하거나 배신당했을 때 너 나한테 왜 그랬어?”라는 질문을 절대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서운한 일을 당했을 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진심을 왜 몰라주느냐고 따지고 싶었고, 상대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질문이 결국 내 감정의 해석권을 상대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꼴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한다. 상대에게 구걸하듯 해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내 결정을 단호하게 통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관계의 주도권을 내 손에 쥐고 있어야만 만만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삶의 이치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진중함과 실용성의 균형에 있다. 저자의 조언은 결코 허황되거나 무겁지 않으며, 그렇다고 가볍게 흘려버릴 만큼 얕지도 않다. 당장 내일 아침 동네 사랑방이나 모임에 나가서 바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생생하고 현실적인 문장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저자가 심리학자답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진행한 심리 실험 결과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어, 글을 읽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나이 든 이들의 경험칙에만 의존하는 훈수가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가 받쳐주니 글의 신뢰도가 한층 더 높아진다.

 

특히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대목은 마음에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흔히 강해져야 한다거나 모질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심리만 잘 파악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저 표정이나 말투를 살짝 바꾸고, 제스처를 조금 다르게 취하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딸리고 성격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데, 이처럼 사소한 태도의 변화만으로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나이 일흔이 넘었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년이라는 이유로, 혹은 유순하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당하거나 만만한 상대로 치부되기 십상인 세상이다. 이 책은 노년의 품위를 지키면서도 타인에게 부당하게 휘둘리지 않는 영리한 대화의 기술을 알려준다.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무례한 이들에게 점잖으면서도 단호하게 선을 긋는 법, 그것이야말로 남은 여생을 존엄하고 평온하게 보내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지혜다. 인간관계의 피로감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듯, 타인의 심리를 읽고 내 태도를 조금만 가다듬으면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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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 - 초신자와 기도에 지친 성도를 위한 아주 쉬운 기도서, 개정증보판 How Book Series 1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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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보다 많아진 70대의 고개에 서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스레 본질적인 것을 향하게 된다. 화려한 성취나 세상의 속도보다는 내면의 평안과 영적인 깊이에 더 마음이 머문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왔든, 혹은 뒤늦게 창조주의 품을 찾았든 간에 늘 마음 한구석에 숙제처럼 남아 있는 외침이 있다. 바로 기도.

 

이대희 목사의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손에 쥐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 따뜻하고 친절한 길잡이라는 점이었다. 흔히 나이가 들면 기도가 깊어지고 절로 터져 나올 것이라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초신자는 초신자대로 기도의 문턱이 높아 주저하고, 해묵은 신앙인은 타성에 젖어 중언부언하는 입술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막막함을 정확히 짚어낸다. 기도를 실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그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과, 자신에게 맞는 창조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진단은 백번 옳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로 정의하며 그 문턱을 낮춰준 데 있다. 70 평생 수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살아왔다. 자식과 나눈 다정한 대화, 이웃과 나눈 소소한 안부,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대화까지. 대화의 핵심은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진심소통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대화 역시 거창한 수식어나 웅변일 필요가 없다. 저자는 성경을 기초로 삼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기도 방법을 제시한다. 책의 안내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기도가 특별한 성인(聖人)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내게 맞는 옷을 입듯, 내 영혼의 상태에 맞는 창조적인 기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큰 은혜로 다가온다.

 

나이가 들면서 몸의 기력이 쇠하듯, 때로는 집중해서 길게 기도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가 있다. 이 책은 그럴 때 상황에 맞게 기도를 확장하고 응용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읊조리듯 드리는 짧은 기도, 말씀을 묵상하며 올리는 기도 등 일상에서 숨 쉬듯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일깨워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가기 전에 먼저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책 속의 이 문장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의 기도는 늘 가 중심이었다.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 노년의 건강을 위해, 당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떼쓰듯 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호출하는 격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기도의 출발점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미 내 필요를 다 아시고 기도의 자리에 먼저 와 기다리시는 그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바른 기도의 시작이라는 지적은 깊은 울림을 준다.

내 뜻을 관철하려는 기도는 늘 조급하고 불안하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평안하다. 내 삶의 주권을 온전히 그분께 맡길 때, 비로소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릴 수 있게 된다. 70대라는 나이는 이제 내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의 뜻에 순응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말대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실어 나르는 통로. 통로가 막히면 은혜는 고이고 만다. 이 책은 막힌 통로를 뚫어주는 친절한 도구와 같다. 복잡한 이론 대신 삶에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담고 있어, 책장을 덮고 나면 당장 무릎을 꿇고 싶어진다. 지나온 세월의 무게만큼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노년의 동반자들에게, 그리고 기도의 첫걸음을 떼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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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은 언제나 내편
박현옥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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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의 화려한 구경거리보다는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자연의 풍경에 자꾸만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문다. 젊은 시절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곁에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귀함을 몰랐으나, 이제는 느린 걸음으로 마주하는 자연이 삶의 가장 큰 동무가 된다.

 

박현옥이 쓴 <오름은 언제나 내 편>을 읽는 동안, 나는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조용히 다녀왔던 제주 여행의 기억을 나지막이 들추어보았다.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 애월의 한적한 카페에서 바다를 보고, 초록이 무성한 식물원을 거닐며 나누었던 평화로운 시간들이 책장 사이로 아른거렸다.

 

제주에는 약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저 멀리서 바라볼 때는 완만한 능선을 가진 아름다운 구릉에 불과해 보이지만, 이 책은 그 오름들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거친 화산섬의 탄생 비화이자,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눈물겨운 삶의 터전이며, 신화와 역사가 촘촘히 얽힌 거대한 기억의 저장소다. 서울에서의 고단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로 내려간 저자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로 뛰며 오름의 진짜 얼굴을 마주했다.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고 문화유산 돌봄 현장에서 일하며 길어 올린 저자의 글 속에는 제주의 자연을 향한 깊은 애정과 존중이 깃들어 있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오름이 품은 다채로운 풍경과 역사적 상처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설문대할망의 신화부터 제주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돌담과 숨겨진 숲 곶자왈, 그리고 봄날의 고사리 꺾는 풍경까지는 참으로 정겹고 따뜻하다. 그러나 오름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니다. 4·3의 깊은 슬픔을 눈물로 삼켰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 동굴진지의 상처를 고스란히 짊어진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오름의 굴곡진 세월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우리 세대의 삶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졌다. 모진 바람과 상처를 견뎌내고도 여전히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오름의 모습은, 시련을 딛고 살아남은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저자가 친절히 안내하는 14곳의 오름 길을 문장으로 따라 걷는 일은 그 자체로 호젓한 즐거움이다. 다랑쉬오름의 웅장한 분화구 앞에 서서 대자연의 호흡을 느끼고,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바라보며 마음의 모난 구석을 둥글게 깎아낸다. 윗세오름의 장엄한 풍경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건축물도 자연이 주는 감동을 넘어설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걸을 때, 비로소 오름은 제 품을 온전히 열어 우리에게 바람 소리를 들려주고 마음을 만져준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 누구도 내 편이 아닌 것처럼 외롭고 쓸쓸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자식들을 다 키워 세상으로 보내고, 하던 일에서 물러나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드는 노년의 문턱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럴 때 이 책의 제목처럼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안아주는 자연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오름은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으며, 그저 그 자리에서 묵묵히 찾아오는 이들의 지친 발걸음을 받아 안는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한마디 건네고 싶어졌다. 다음 제주 여행에는 번잡한 관광지 대신, 저자가 다정하게 일러준 오름의 능선을 함께 느린 걸음으로 걸어보자고 말이다. 지천명과 이순을 지나 칠십의 고개에서 마주하는 제주의 바람은 또 어떤 깊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세상을 향해 거창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젊은이들에게도 좋겠지만, 삶의 속도를 줄이고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따스한 차 한 잔 같은 평온함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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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보다 오래 남는 것들 - 엄마의 치매와 함께한 12년의 기록
유문향.신재경 지음 / 한국NVC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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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구, 친지들을 만나면 집안의 치매환자로 인해 가슴 아프고 가슴 철렁했던 이야기들을 수시로 듣는다. 스토브에 불을 켜둔 채 밖에 나가 화재가 날 뻔 했다거나 하루 전 통화한 자녀를 두고 한 달 째 행방불명이라며 주변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일들은 흔하다.

 

<기억보다 오래 남는 것들>을 읽으며 내내 가슴 한구석이 묵직했다. 일흔의 고개를 넘어서면 주변에서 치매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어제의 정정했던 동무가 오늘은 나를 몰라보고, 평생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이가 한순간에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현실은 이제 남의 집 먼 이야기가 아니다. 유문향, 신재경 모녀가 기록한 12년의 세월은 단순한 간병의 기록을 넘어, 언젠가 나 혹은 내 가족이 마주해야 할지도 모를 삶의 한 단면을 미리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치매는 흔히 기억의 상실이자 인간 존엄의 붕괴로 이야기된다. 나 역시 나이 들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정신의 끈을 놓아버리는 일이라 답할 것이다. 그러나 두 저자는 치매를 그저 비극이나 종말의 시작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치매와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분투한다. 딸과 손녀라는 두 세대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돌봄은 한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서로를 지탱하는 연대의 과정으로 확장된다.

 

책 속의 일상은 눈물겹도록 구체적이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노동이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일이다. 어제는 고마워하다가도 오늘은 불신과 원망을 쏟아내는 환자 앞에서 돌보는 이의 마음은 피멍이 들기 마련이다.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그 고단함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하고 세밀한 기록을 보며 70대의 노년인 나 역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치매라는 불청객 앞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그리고 환자를 돌보면서도 나 자신의 삶을 잃지 않으려 돌봄과 자기 돌봄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 나이가 되면 베푸는 삶보다 누군가에게 의탁해야 하는 순간을 본능적으로 준비하게 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할 텐데하는 걱정은 동년배들과 만나면 늘 나누는 단골 소제다. 하지만 이 책은 치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기억은 사라질지언정 그 사람과 함께 나눈 온기와 사랑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엄마의 기억이 파편화되는 와중에도 가족들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노년의 삶을 앞둔 이들에게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준다. 육신과 정신이 쇠락하더라도, 우리가 쌓아온 관계의 끈은 여전히 단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만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늙어감과 소멸, 그리고 돌봄이라는 인류 보편의 과제를 마주한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다. 치매라는 긴 겨울을 통과하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쁨과 사랑을 포착해 낸 저자들의 담담한 어조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내 나이 일흔, 기억보다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서로를 품어 안았던 따뜻한 마음뿐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확신한다. 삶의 마지막 장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따뜻하고도 치열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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