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 - 워킹맘은 어떻게 단 6개월에 성공과 수익을 실현했을까?
이서이 지음 / 밥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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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직장 생활을 끝내고 생의 후반부를 건너가는 70대의 눈으로 <퇴근 후 1시간, 블로그로 월 2천만원 벌기>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부터가 매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묵직한 거부감을 준다. ‘퇴근 후 1시간이나 2천만 원같은 자극적인 문구는 평생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을 덕목으로 알고 살아온 노년의 시선에는 다소 가벼운 상술처럼 다가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지를 넘기고 저자 이서이가 전하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이 단순한 횡재나 요행을 바라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블로그의 핵심은 결국 기록의 지속성수요자와의 공감이다. 매일 1시간씩 정성을 들여 글을 쓰고, 그것을 타인이 필요한 정보로 가공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은, 내가 평생 서재에서 책을 읽고 서평이나 수필을 써 내려가던 일상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젊은 세대에게 블로그가 빠르게 부를 창출하는 디지털 파이프라인이라면, 칠십을 넘긴 나에게는 내가 살아온 세월의 경험과 지혜를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서재로 읽힌다.

 

책은 블로그 개설부터 주제 선정, 글쓰기 구도, 그리고 광고 수익이나 마케팅 협찬으로 이어지는 수익화 구조를 단계별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의 원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저자가 제시하는 글쓰기 전략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본적인 공감의 원칙을 잘 담고 있다. 특히 남들이 궁금해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보기 쉽게 정리하는 능력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기술이다.

 

물론 저자가 호언하는 2천만 원이라는 액수는 젊은이들의 치열한 상업적 노력과 전략적 투자가 결합한 극소수의 결과일 것이다. 70대의 입장에서 그 숫자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숫자의 환상을 거두어내고 나면, 그 아래에 놓인 훨씬 소중한 가치가 보인다. 바로 은퇴 후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일상에 매일 1시간의 몰입이라는 건강한 리듬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규칙적으로 생각하고, 글을 구성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타인과 소통하는 행위는 노년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훌륭한 산책이자 운동이 된다.

 

젊은 날의 부()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자산의 크기였다면, 생의 후반부에 맞이하는 부는 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느끼는 내면의 풍요다.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는 확실한 부업의 이정표가 되겠지만, 노년의 독자에게는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고 나의 글로 소소한 결실을 보는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책을 덮으며 내 서재를 둘러본다.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들과 그동안 써온 글들이 이제는 블로그라는 넓은 바다를 통해 더 많은 이들과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창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블로그에 정성스럽게 올리는 삶. 그것이야말로 70대가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풍요롭고 영혼이 담긴 부가 아닐까. 디지털 시대의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고 싶은 동년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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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 - 세계 6개 미술관에서 처음 시작하는 그림 여행
박혜성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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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박혜성의 <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를 읽으며 문득 젊은 날 미술관 어귀에서 느꼈던 낯선 중압감을 떠올렸다. 당시의 미술관은 왠지 모르게 문턱이 높고, 도록에 적힌 난해한 미학 용어들을 미리 숙지하고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드는 장소였다. 지식을 습득하고 학식의 폭을 넓히기 위한 독서에 익숙했던 젊은 시절, 미술 감상 역시 일종의 답을 찾아야 하는 시험처럼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칠십 고개를 넘어선 지금, 이 책의 제목처럼 어쨌든 재밌다는 가볍고도 명쾌한 일갈은 마음의 짐을 한결 덜어준다.

 

저자는 미술사를 뒤흔든 거장들의 숨겨진 비화와 작품 속에 숨겨진 디테일을 경쾌하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 화려한 명작 뒤에 숨겨진 화가들의 인간적인 고뇌, 치기 어린 질투, 그리고 뜻밖의 유머는 높은 문턱 너머에 있던 예술을 우리 삶의 영역으로 성큼 끌어당긴다. 미학적 이론이나 엄숙한 비평 대신,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저자의 문체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 옆에서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친근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평생에 걸쳐 오륙도의 거친 바람과 간월도의 조용한 바다, 굳건한 소나무의 정기, 그리고 흐드러진 유채꽃과 코스모스의 계절을 화폭에 담아온 아내의 붓질이다. 곁에서 아내의 작업 과정을 수없이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매 순간이 묵직한 고뇌이자 고된 모색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묵직함 뒤에 숨겨진 예술의 또 다른 얼굴, 즉 예술가가 세상을 향해 던졌던 유쾌한 질문과 삶을 향한 열정을 보여준다.

 

7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인생의 진정한 깊이는 거창하고 엄숙한 명분보다 일상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여유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청춘의 시절에는 세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느라 바빴다면, 나이가 든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태도가 더없이 소중하다.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화가의 생애나 사조를 완벽히 외우지 않아도, 캔버스 위의 한 점 색채나 화가의 솔직한 인간미에 슬며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자가 안내하는 미술관 풍경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라는 인간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견뎌내며, 때로는 삶을 위트 있게 풀어낸 흔적들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설명이나 해설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 속 인간의 호흡에 귀를 기울일 때, 미술은 비로소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시각적 울림 속에 화가의 숨결과 감상자의 삶이 교차하는 지점, 바로 그곳에 미술이 주는 참된 재미가 있다.

 

<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는 미술관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거닐게 만드는 친절한 안내서다. 서재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수백 년 전 화가들의 생생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정답을 찾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모호함과 불완전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는 여유. 그것이 인생의 후반부가 전해주는 선물이라면 미술 감상 또한 한결 자유로워져야 마땅하다. 주말이 오면 아내의 손을 잡고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가, 오랜 친구를 만나듯 작품들 앞에 서서 그 경쾌한 재미를 가만히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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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 - 인공지능의 뒷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은성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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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는 단순히 AI의 기술적 한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책임에 대해 엄중하게 묻는다. 기술의 편리함에 마비되어 판단을 맡겨버릴 것인가, 아니면 기술의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며 주체적인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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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 - 인공지능의 뒷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은성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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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로 사방이 시끄럽다. 화면 속에서 순식간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내는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아무런 결점도 없고 어떠한 편향도 없는 순수한 지능이 새로 탄생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기술의 등장과 변화를 목격한 70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AI는 기대와 동시에 서늘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과연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기술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김은성의 <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는 이러한 의문에 명쾌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답을 건네는 책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기술이 언제나 그것을 만든 인간 사회의 욕망,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 그리고 편견과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서술한다. AI가 출력하는 그럴듯한 결과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신성한 지혜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인간이 축적해 온 데이터의 집합체이며, 그 데이터 안에는 인간 사회가 가진 불평등과 오류, 왜곡된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결국 AI는 인간을映照하는 거울일 뿐, 어떠한 맥락도 벗어난 순수한 존재일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오래 살아온 이들은 안다. 아무리 뛰어난 도구가 등장해도, 그 도구를 쥐고 사용하는 주체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 산업화 시절에도,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에도 기술은 늘 삶의 편의를 약속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불평등과 소외를 낳았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 그 자체는 중립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과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기준,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목적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의도와 권력이 개입된다. 책은 이러한 기술 사회학적 시선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AI에 대한 찬사나 막연한 공포를 거두고, 냉철한 눈으로 기술의 본질을 직시하게 한다.

 

특히 마음을 울리는 부분은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해 나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해진다는 점이다. AI가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하고 답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감이나 오랜 세월 속에서 축적된 지혜,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오랜 세월을 거쳐오며 쌓아온 삶의 궤적과 통찰은 데이터 몇 줄로 단순하게 요약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인공지능은 없다>는 단순히 AI의 기술적 한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비판적 사고와 윤리적 책임에 대해 엄중하게 묻는다. 기술의 편리함에 마비되어 판단을 맡겨버릴 것인가, 아니면 기술의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며 주체적인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청년 시절부터 수많은 시대의 변혁을 지나온 70대의 시선에서, 이 책은 기술을 향한盲目적인 신화를 깨뜨리고 인간 고유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귀한 지침서가 된다. AI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인생의 깊은 궤적을 지나온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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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 애덤 스미스부터 프리드먼까지 200년 경제사상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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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밖의 풍경이 계절의 순환을 따라 자리를 바꿀 때, 서재에 들어앉아 까마득한 옛 책을 꺼내 드는 일은 노년에 누리는 특권 중 하나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명저 <불확실성의 시대>를 다시 펼쳐 든 순간, 나는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1970년대의 그 격동적이었던 지성적 울림과 다시 맞닥뜨리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 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경제 사상가들의 발자취를 추적하며, 절대적 확신이 사라진 현대 사회의 본질을 파헤친 이 책은 일흔의 고개를 넘어선 내 삶의 궤적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세월은 그야말로 불확실함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젊은 시절 우리는 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념, 혹은 특정 사상이나 이론이 인간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명확한 확신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번영과 위기를 반복하며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모든 확신이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 위에 서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갤브레이스가 이 책에서 간곡하게 설파하는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과거의 경제학자들이 제시했던 명쾌한 원칙과 교조적인 이론들은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실 앞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갤브레이스의 문장은 경제학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위트가 넘치고,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은 서늘할 정도로 날카롭다. 그는 거대 기업의 권력화, 정부의 역할과 한계,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전쟁과 집단적 광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직면해 온 과제들을 냉철하게 짚어낸다. 특히 그가 지적하는 거대 조직(테크노크라시)의 자율성과 그것이 초래하는 자본주의의 변질은, 오늘날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21세기 초입의 풍경과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시대는 바뀌었고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이 직면한 불확실성의 깊이는 조금도 얕아지지 않은 것이다.

 

노년의 눈으로 본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설적이게도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태도 그 자체에 있다. 확신에 찬 사람들은 위험하다. 자신이 완벽한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는 지도자, 하나의 이론으로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오만을 부리는 지식인, 혹은 당장의 자산 상승만을 확신하며 과욕을 부리는 투기꾼들은 언제나 역사와 개인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반면,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무지와 시대의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겸손함이야말로 위기를 헤쳐 나갈 유일한 출발점임을 보여준다.

 

일흔이라는 나이는 삶의 수많은 가설들이 무너지고 바로서기를 반복하는 것을 목도한 나이다. 건강도, 재산도, 인간관계도 절대적인 영원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비로소 불확실함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경제학이 단순히 숫자와 공식의 유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도덕적 선택에 관한 학문이어야 한다는 갤브레이스의 주장은, 인생의 후반전을 지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불확실한 세상일수록 우리가 지탱해야 할 것은 거창한 경제 지표나 일확천금의 기회가 아니라, 이웃에 대한 공감과 절제, 그리고 삶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내 서재를 둘러본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의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매 순간을 겸허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 거장의 지혜가 담긴 이 고전은, 흔들리는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차분히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안식과 깊은 통찰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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