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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리니 - 상하이와 하얼빈, 독립의 길 위에서 아이들을 지킨 교사들
전은경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발자국’이라는 단어가 유독 묵직하게 다가온다. 눈 가린 채 앞만 보고 뛰어왔던 젊은 날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걸어온 길을 가만히 반추할 때 비로소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걸음 중에는 올곧게 뻗은 것도 있지만, 갈팡질팡 흔들리며 남긴 어지러운 흔적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면서도 묘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내가 무심코 남긴 궤적이 누군가에게는 길을 찾는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황혼기를 살아가는 노년의 삶을 다시금 옷깃을 여미며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전은경, 김영숙, 문휘명, 백년화, 서선우, 이다감, 정윤희, 정지원 등 여덟 명의 저자가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치열한 기록이자 고백록이다.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이 책의 행간에는 지나간 세월의 희로애락과 함께, 삶의 본질을 꿰뚫는 다채로운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저마다의 빛깔로 풀어내는 인생의 사계절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깊은 연대감을,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저자들은 자신의 성공만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했던 순간과 그 안에서 얻은 뼈아픈 교훈들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모음집을 넘어 진정한 ‘이정표’로서의 가치를 획득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세상의 가치관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급변한다. 이런 속도의 시대에 노년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해왔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현명한 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이다. 여덟 명의 선배들이 먼저 길을 걸어가며 남긴 올바른 발자국은, 뒤따라오는 이들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가 쇠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는 혜안을 축적하는 과정임을 이 책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책을 읽으며 유독 마음이 머물렀던 것은 삶을 대하는 저자들의 겸손하고도 진솔한 태도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인간은 결코 함부로 살 수 없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무게가 실리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선에는 깊은 자애로움이 깃들게 마련이다. 나 역시 마을의 크고 작은 일들을 살피고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을 문득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무심코 행한 선택이나 남긴 말들이 과연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자식과 손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흔적이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이 책은 비단 지나온 날들을 정리하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만하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를 먼저 헤쳐 나간 선배들의 조언은 그 어떤 기술적 나침반보다 정확하고 따뜻하다. 다양한 이들이 풀어내는 삶의 궤적을 보며, 늙어간다는 것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품으로 세상을 안고 뒤에 오는 이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는 일임을 확인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이 책은 황혼의 길목에서 만난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여러 저자가 나누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책장마다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책장을 덮으며 내 남은 생의 걸음걸이를 한 번 더 가다듬게 된다. 화려하진 않더라도, 뒤따라오는 이가 안심하고 밟을 수 있는 단단하고 깨끗한 발자국을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 그리고 가치 있는 품격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마음을 담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