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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길을 잃은 당신에게 - 9가지 형태로 보는 현대 미술
스즈키 히로후미 지음, 김진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중, 주말할 것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전시관이 늘어나고 있다. 미술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빼곡히 차 있는 사람들에 가려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없을 땐 답답한 것이 사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작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조차 희미해지곤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이 책은 중학교 미술 교사로 9년간 근무한 후, “아이들보다 먼저 어른들에게 미술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2022년 2월 퇴직하고, 현재 ‘미술 해설을 해보자!’라는 이름으로 집필 활동과 누구나 제작을 즐길 수 있는 교실 ‘×art | 곱하기 아트’를 운영하며, X(구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어렴풋이에서 깨달음으로’를 모토로 미술사나 미술 감상이 즐거워지는 ‘시점’을 쉽게 해설하고 있는 스즈키 히로후미 저자가 예술을 감상하는 데 있어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관람객 각자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과 대화하며 ‘보는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돕는 인문학적 안내서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우리는 흔히 도슨트의 설명이나 작품 옆의 작은 캡션을 읽는 데 열중한다. 저자 스즈키 히로후미는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작품과 나 사이의 직접적인 교감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눈으로 형태와 색채를 관찰하고, 그 너머의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텃밭에서 작물을 기를 때 식물 도감의 이론보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잎사귀의 미묘한 떨림을 관찰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저자는 미술관을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장이 아니라, 일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명상의 공간’으로 재정의한다. 작품 앞에 멈춰 서서 캔버스의 질감과 작가의 붓 터치를 찬찬히 뜯어보는 행위는, 서재에서 고전의 한 문장을 깊이 음미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계획된 동선을 벗어나 우연히 마주친 작품이 때로는 인생의 결정적인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이브 여행 중 내비게이션을 끄고 우연히 발견한 풍경이 더 깊은 잔상을 남기는 것과 유사한 체험이다.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명화의 풍격을 흉내 내고 초고화질로 작품을 전송하는 시대에, 왜 굳이 미술관을 찾아야 할까? 저자는 실물의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그 공간의 공기, 빛의 각도에 따라 변하는 색감을 직접 마주하는 ‘현존의 감각’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고유의 감각적 경험과 정서적 교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바로 그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가장 고귀한 훈련이다.

저자는 감상을 마친 뒤 그 느낌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할 것을 권한다. 거창한 비평이 아니어도 좋다. “이 그림의 파란색이 유독 시리게 느껴졌다”거나 “그림 속 인물의 눈빛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다”는 식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 쌓일 때, 미술은 비로소 나의 삶의 일부가 된다. 매일 일상의 단상을 정갈하게 정리하는 이들에게 미술 감상 기록은 삶의 궤적을 더욱 다채로운 색채로 물들이는 훌륭한 소재가 된다.
이 책은 미술관 문턱을 낮춰주는 친절한 가이드인 동시에, 세상을 더 깊고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안경이다. 저자의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은 특별한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텃밭의 흙내음이나 서재의 종이 향기처럼 우리 일상 어디에나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품격 있는 노년을 일구며 지적인 여정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다음 미술관 방문을 설레는 만남의 시간으로 바꿔줄 것이다. 이제 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것은 더 이상 방황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가장 우아한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