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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
김영희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일의 대부분이 그저 덤덤해진다. 왕년에 부리던 고집도, 세상을 바꾸겠다던 치기 어린 열정도 세월의 무게 앞에 닳고 깎여 둥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어도 도무지 무뎌지지 않고 문득문득 속을 뒤집어놓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평생을 머리 맞대고 살아온 ‘배우자’라는 존재다. 젊은 시절에는 눈에 콩깍지가 씌어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나이가 들수록 어쩌면 그리도 또렷해지는지. 김영희의 《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는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헛기침과 함께 깊은 공감의 미소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대단한 철학이나 거창한 담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네 이웃집, 아니 당장 우리 집 안방과 거실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노부부의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눈물겨운 일상을 담아냈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목격했지만,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존재인 ‘부부’라는 관계의 본질을 이토록 담백하고 유쾌하게 꿰뚫어 본 글은 오랜만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일상들은 눈물겹도록 친숙하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 TV 채널을 두고 벌이는 소리 없는 전쟁, 별것도 아닌 일에 고집을 피우는 영감의 뒷모습을 보며 ‘저 웬수’ 소리가 절로 나오는 풍경들. 나 역시 아내와 함께 시골집 마당을 쓸거나 장을 보러 갈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를 외치곤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두 인간이 늙어가는 처지에 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일매일 작은 기적을 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저자가 쓰는 ‘웬수’라는 단어는 결코 미움이나 증오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서로의 못난 꼴, 잘난 꼴을 다 지켜보고도 끝내 버리지 못하고 곁에 남겨둔 자들만이 부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반어법’이다. 젊은 날의 사랑이 뜨거운 불꽃 같았다면, 일흔의 사랑은 다 꺼져가는 숯불 같아서 온기는 적을지언정 오래도록 은근하게 주위를 데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그 은근한 숯불의 온기가 행간마다 배어있음을 느끼게 된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살점이 되어버린 서로를 향한 깊은 연민이야말로 이 책이 가진 진짜 힘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누구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가정을 책임지느라, 혹은 사회적 성취를 이루느라 정작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는 왜 그리도 내 주장만 옳다고 우겼는지, 왜 그리도 사소한 일에 화를 냈는지 이제 와 생각하면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부부간의 갈등과 화해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탐욕을 내려놓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젊어서는 사랑해서 살고, 늙어서는 가여워서 산다.” 언젠가 들었던 이 해묵은 격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이가 드니 상대방의 굽은 등과 거칠어진 손마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저 웬수 같은 인간이 없으면 당장 내일 아침 누가 내 잔소리를 받아주고, 누가 나와 함께 늙어가는 처지를 나누겠는가. 결국 ‘이래도 웬수 저래두 웬수’라는 말의 진짜 속뜻은 ‘이래도 내 사람, 저래도 내 사람’이라는 묵직한 고백인 셈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거실을 내다보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파에 앉아 무심히 소일을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또 왜 저러고 있나 싶어 한 소리 보탰을 테지만, 오늘은 그저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지를 향해 가는 모든 노년의 부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마주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미안했다는 말 대신, 슬쩍 책을 건네며 “우리 이야기 같다”고 겸연쩍게 웃어 보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 준다. 남은 날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나, 기왕이면 이 웬수와 함께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둥글게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