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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 식물이 빚어낸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이야기
엘리스 버넌 펄스틴 지음, 라라 콜 개스팅어 그림,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겨울의 추위를 밀어내고 세상을 온통 연두, 초록 빛깔로 물들이는, 봄이 오면 나무를 한번 만져보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길가에 있는 꽃에 코를 들이대곤 한다.
얼마 전에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암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에 절로 공감이 간다. 고통스러울 때는 속상함이 불쑥불쑥 가슴속에서 치솟아 오르곤 한다. 이렇듯 힘이 들 때, 커다란 위안을 주는 것이 아카시아 꽃향기이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상큼하고 신선한 꽃향기가 내 코를 스치고 달아난다. 어제의 피로를 씻어주고 오늘의 활력을 키워주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다. 게다가 이 선물은 무료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이다.
이 책은 야생 동물 생물학자로 17년 동안 경력을 쌓다가, 50세가 넘어서부터 <향기>에 매료되어 천연 조향사로 활동하고 있는 엘리스 버넌 펄스틴이 식물의 화학 구조와 향기의 분자, 생태계 상호작용, 인류학적 교역사, 향수 제조 기술을 담고 있다. 저자는 식물이 향기를 만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꽃가루 매개 동물과 포식자인 나방과 딱정벌레, 세균과 곰팡이, 꿀벌과 파리 때문인데, 식물은 꽃가루 매개 동물을 끌어들이고, 질병과 싸우고, 초식 동물을 쫓아내고,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상호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식물은 더 효과적인 생존과 번식 등을 위해 향기를 품는다. 인류는 이미 기원전부터 그 향기를 실생활에 활용했다. 식물의 향기는 생활용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인간의 ‘향기로운 삶’도 사유하게 한다. 따라서 독자에게는 일정 부분 식물학, 생물학, 역사, 향수 산업, 그리고 문화적 감수성이 요구되고 있지만, 저자는 쉬운 언어로 흥미를 이끌어간다. 저자는 우리 삶에 깊이 스며든 ‘향기’를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는 도구임을 밝히고 있다.
오늘날 향신료는 우리 식탁 위에 흔히 오르는 재료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탐험가들의 열정, 왕실의 야망, 그리고 세계를 뒤흔든 부와 권력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저자는 향신료는 씨앗뿐만 아니라 열매, 생식 기관, 나무껍질, 잎도 향신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각각의 향신료에서 독특한 맛과 향을 만드는 분자들은 종종 자연에서는 미생물을 물리치고 그 식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금방 갈아 놓은 후추의 톡 쏘는 향, 육두구의 편안한 향, 생강의 맵싸한 향은 거의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향사이자 자연학자인 저자는 향기가 어떻게 생겨났고, 인류는 어떻게 향기를 갈망하고 활용하며 살아왔는지를 정교하고도 다정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조향사는 보통 톱, 하트, 베이스 성분으로 구성되는 세 가지 향조의 조화를 이용해서 향수를 만드는데, 이는 향수에 구조와 흥미로움을 주는 하나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향을 ‘좋다, 싫다’는 감각적 평가의 대상에서 끌어내어, 그 생물학적 기원과 진화적 목적, 역사적 기능, 그리고 문화적 가치까지 총체적으로 접근한다.
이 책을 통해 식물이 향기를 내는 이유는 곤충을 유혹하고, 포식자를 쫓고, 병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기능 때문인데, 해충이 오거나 손으로 흔드는 등의 자극을 주면 스트레스를 받아 살균기능을 가진 방향물질을 내뿜어 가까이오지 못하도록 방어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단순한 진실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다가온다.
봄에는 산유화, 개나리,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여 복숭아꽃, 살구꽃, 장미가 피어나고, 여름에는 나팔꽃, 해바라기가 세상을 수놓다가, 가을에는 국화, 코스모스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꽃들의 향연이 쉼 없이 벌어진다.
이 책은 향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화를 모두 연결 지어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교양서로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