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줄거리

  스탠리 옐내츠(Stanley Yelnats). 이름을 순서대로 써도 거꾸로 써도 스탠리 옐내츠가 되는 소년의 이야기. 스탠리는 유명 야구선수의 운동화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일명 ‘초록캠프’라는 곳에 수감된다. 소년범들의 인격을 수양한다고 하지만, 그곳은 150km 반경 어디에도 물을 얻을 수 없는 외딴 곳, 척박한 땅, 호수가 말라버린 곳이다. 그곳의 소장은 수감된 소년범들에게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5m인 구덩이를 파게 한다. 하루에 한 개씩.

  스탠리의 하루는 고되고 온 몸이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일상이지만, 엄마에게 만큼은 소년들의 ‘캠프’에 온 것처럼 거짓 편지를 써 안심 시킨다. 그 과정에서 별명이 ‘제로’인 소년이 스탠리의 편지 쓰는 양을 보게 되고... 캠프의 소장과 상담 선생들은 아동학대, 불법노동 등의 여러 범법을 저지르지만, 그 안의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아이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어떤 오해를 받아도 스탠리는 그 잘못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뒤집어쓰고,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며, 때로는 그로 인해 물 한 모금 못 먹는 일주일을 보내게도 되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희망도 절망도 없이 시간을 보낸다. 한편, 소장은 땅을 파면 나올 대단한 재산을 기대하고 있다. 

  구덩이를 잘 파는 흑인 소년 제로는 스탠리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하고, 스탠리는 결국 자신의 구덩이를 제로가 1시간 정도 파주는 조건으로 가르침의 계약을 한다. 알파벳과 구덩이 노동 1시간을 교환하며 스탠리와 제로는 은근한 우정을 쌓고, 다른 아이들은 둘의 사이를 시기하고 놀린다. 그로 인해 소장과 어른들이 개입하게 되던 날, 제로는 삽을 든 채 허허벌판의 황무지로 도망간다. 캠프에 남은 스탠리는 제로를 걱정하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찾아 나서지는 못하는데 어느 날, 그 두려움의 실체와 마주한다. 제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면 어떡하지. 제로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운전법도 모르는 스탠리는 물탱크 트럭을 훔쳐 제로를 살리려고 마음먹지만, 트럭은 구덩이에 처박히고 좌표도 이정표도 없이 텅 빈 마른 호수를 걸어 제로를 찾아 나선다. 옛 전설처럼 전해지는 배, 110년도 더 된 그 뒤집어진 배 아래에서 그 시간만큼 오래된 스플루시를 먹으며 나흘간 살아있던 제로를 발견한 스탠리. 제로는 그 달콤한 음식에 결국 탈이 나지만, 두 소년은 엄지손가락 산을 찾아 떠난다. 증조할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의 산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등대삼아서. 호수의 급경사진 경계면을 오르고, 제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이기며 스탠리는 엄지손가락산을 오른다. 제로를 들춰 업고. 그곳에서 흙탕물과 양파로 연명하며 드디어 삶의 의지를 되새기는 두 소년. 그들은 예전에 스탠리가 발견했던 보물이 나온 진짜 구덩이를 기억해 내고, 그것을 찾아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물을 담은 단지와 삽과 양파를 메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진짜 구덩이’를 파, 결국 보물을 찾는 두 소년. 그들의 고난을 이겨내고 드디어 환희에 빠지려는 찰나, 그들을 지켜보던 소장과 캠프의 어른들은 손전등과 총을 겨누고 그들에게 그 보물 가방을 내 놓으라고 한다. 노란 방울뱀 덕분에 어른들은 쉽사리 소년들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걷는 것보다 더 힘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두 소년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방울도마뱀과 함께 어른들의 위협을 버틴다. 그리고, 고조할아버지의 저주가 풀린 듯, 기적처럼 나타난 스탠리의 변호사와 수사검사. 스탠리의 무죄가 입증되고, 소장이 제로의 탈주 이후 소각해 버린 서류들이 문제가 되어 결국 두 소년은 자유의 몸이 된다. 보물 가방에서는 백만장자는 될 수 없지만, 백만달러 가까운 돈이 나와 두 소년은 또 부자가 되고.

| 감상 

  두 소년의 생존기이자 모험기, 황무지에서 오롯한 절망 속에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성장기의 소년을 본다. 가증스러운 어른들의 유도심문과 질문에 답하지 않거나, 다른 친구들이 불이익 당하지 않을 만큼의 생각을 하는 소년, 가난한 가족을 위해 진짜로 ‘초록캠프’에 온 것처럼 수상스키를 배운다고 거짓 편지를 보내는 스탠리. 그의 담담하지만 단단한 내면은 결국 두려움을 물리치고 황무지를 걸어가게 하고, 그 고난의 상황에서도 친구 제로를 살리기 위한 사투는 멈추지 않는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스탠리 옐내츠 가족의 이야기와 케이트 버로우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흥미진진한 긴장감을 잃지 않는 이야기. 그 긴장감 속에는 스탠리와 제로의 삶을 향한 투지와 묵묵히 견뎌내는 시간과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우정이 함께 그려진다. 이런 훌륭한 이야기를 자칫 ‘청소년문학’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몰라보고 갈 뻔했다는 것이 아쉽다. 이 책을 추천해 주신 분께 깊은 고마움을 느끼며 감동 깊게 읽었다. 소년들이 탈출한 것은 초록캠프라는 감옥일까, 스스로의 감옥일까. 아름다운 소설. 

 

| 인상적 장면

  미스터 선생님은 초록캠프에 처음 온 스탠리에게 사방으로 반경 150km 이내에는 물을 구할 곳이 그 곳 캠프 밖에 없다고 말한다. 탈출하고 싶으면 하라고, 사흘 안에 독수리 밥이 될 테니. 모든 수감 소년들에게 했을 말이다. 그러나 제로는 이곳보다는 나은 삶이 있을 거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캠프를 떠나고, 그 친구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았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스탠리도 그곳을 떠난다. 그렇게, 마음의 감옥을 뛰쳐나간 두 소년의 고난과 변화는 현재의 내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내 곁에는 감시탑도 전기철조망도 총구를 들이미는 사람도 없건만, 무엇에 갇혀 있는 것일까. 내 스스로 옭아맨 감옥을 탈출해야 할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용택 시인이 추천하는 101편의 시가 수록된 책이다. 첫 페이지를 읽고 이 책이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책인 것을 알았다. 혹자는 드라마에 소개된 <사랑의 물리학> 말고는 볼 것이 없다고 악평을 하기도 했다. 엄선된 시의 리스트를 보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그 악평한 분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웠다. 아름다운 시와 기억을 되살려 주는 시들이 잔뜩 실려 있다. 시를 읽으며 냉담했던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감정과 감정을 발견하게 되고, 스쳐보냈던 사물과 풍경을 남다르게 살피게 된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는 필사를 위해 공란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노트에 필사를 해보았다. 하루에 5시간씩, 꼬박 3일을 즐겁게 필사했다. 시를 베껴쓰는 즐거움이 되살아나고, 펜의 색깔을 바꾸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되살아났다. 이 소소한 4일의 행복.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베껴 쓰며 나의 마음을 깨운다. 아름다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플러스 - 김용택의 시의적절한 질문의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용택 시인이 선별한 나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모를 시 91편. 이 책에 수록된 시는 모두 아름다웠고 사색의 시간을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재미는 김용택 시인이 독자에게 건넨 미션이다. 시 한 편을 읽고 그 시와 연관하여 시인이 주는 과제는 시 보다 더 깊이 그야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글로 쓰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넙죽넙죽 책장을 넘길 수는 없는 책이다. 그 어떤 심리학 서적이나 상담실의 의사보다도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가 치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재미있는 책. 노트에 그 미션을 하나하나 채워 넣은 후, 언젠가 다시 이 책장을 넘겨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의 말에서 작가는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고 말했다. 둥글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시집을 읽어 내려간다. 아르헨티나를 건설한 군인은 직선으로 원주민을 죽이고, 사람의 몸에는 단 한 군데도 직선이 없다는 말을 남기고, 심장이라는 사물을 들여다 보다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치는 혀를 발견한다. 눈물이 찾아 올 땐 텅 빈 항아리가 되는 화자. 세계와의 조화를 소망하는, 어둡고 고독한 공간에 둥근 심상을 두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으로 향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유를 알지 못 하게 우는 아이를 향해 왜 그래가 아니라 어느 순간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우연처럼 아이의 눈물을 그치게 한 것처럼 삶은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것 아닌 곡선의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어를 읽다 보면 비약과 축약의 상승, 반어와 역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냉담한 일상 속에 울림이 되어 주는 좋은 시를 읽었다.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39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선생이 일본 문화의 비어있음이 문인들의 자살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을 한 바 있다. 젊은 문인의 자살은 탐미적으로까지 느껴지니 경계해야 함에도, 선생이 인정한 작가 중 한 사람이 다자이 오사무였다. 그래서 읽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화자인 요조의 수기 형식을 빌어 쓴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소설이다. 책장을 넘기면서는 작가가 던지는 딜레마적 물음 때문에 잠시 생각에 빠져야 했고, 책장을 덮었을 때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의 특이함에 대해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요조는 묻는다. 그 ‘세상’이 혹시 ‘너’ 아닌가 하고. 다수의 시선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가장하여 ‘나’의 고유함, ‘나’의 차이를 지우려는 수작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 나를 감추기 위해 바보짓, 광대 짓을 하는 나, 그것이 세상을 향한 구애. 그것이 ‘일부러 그랬지’라는 말로 꿰뚫어 보여졌을 때의 부끄러움. 

  정을 나눈 여인과 동반자살을 시도하여 혼자만 살아남았을 때의 아득함. 자살방조죄를 피하기 위해 각혈을 연기하는 자신에게 검사가 물었던 “진짠가?”라는 질문에서의 절망.

  천진하게 인간을 믿은 죄로 아내(?)는 강간을 당하고 그녀의 ‘순수한 신뢰’를 사랑했던 요조가 느끼는 더럽혀진 느낌. 그때 요조는 신에게 묻는다. 인간을 신뢰하는 것은 죄인가. 

  결국 모르핀 중독 신세가 된 요조는 친우 호리키를 ‘신뢰’한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히고 그 순간 그는 인간, 실격이 되고 만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야 병원에서 풀려나 짧은 수기를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요조.

  요조가 써야만 했던 숱한 가면과 고뇌했던 질문들, 술취한 그가 친구와 했던 반대말 놀이는 가슴 아프고, 깊이 생각하게도 된다. 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다자이 오사무는 책의 결말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 말하고 결국 39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담담하지만, 시대를 가로질러 여전히 같은 의문과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인간 세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보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시대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시대를 묻기 전에 나는 과연 타인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인가.

  짧은 분량의 소설,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와 반대말 놀이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