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 개정판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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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말 재미있는 수학 책이다. 수학사를 망라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17세기 프랑스의 아마추어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가 무심코 던졌던 한 마디는 350년의 수수께끼가 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x+y=z 는 참이다.

페르마의 정리는 “x+y=z에서 n은 3 이상의 정수일 때, 이 방정식을 만족하는 정수해 x, y, z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다.

그리고 페르마는 자신의 정리를 증명하였으나 지면이 좁아 옮겨놓지 않는다고 하고 죽는다. 이후로 이 페르마의 정리는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에게 커다란 난제가 되었다. 책에서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한 수학자들의 350년에 걸친 도전과 실패를 다루면서 동시에 고대 그리스 피타고라스의 시대를 보여준다. 그렇게 350년의 도전과 실패를 겪은 끝에 1993년 미국의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가 드디어 이 난제를 증명해 낸다. 세계는 환호했는데, 논문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가 발견된다. 다른 수학자들이 그러했듯 앤드류 와일즈도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수학계의 불신이 극에 달할 때쯤, 첫 증명으로부터 14개월이 지난 후 와일즈는 그 사소한 문제 역시 해결해 낸다. 그리하여 1997년에는 볼프스켈 상과 상금을 받게 되는데, 이 상은 오로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푸는 사람에게만 수여하게 된 상으로, 만들어진 지 90년 만에 수상자를 배출하고, 폐지되었다.

난제를 풀고 나서 와일즈는 허탈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그가 증명한 방식에는 1950년대부터 증명된 현대 수학이 상당 부분 사용되었다. 그러자, 여타의 수학자들은 17세기 페르마가 현대 수학으로 증명했을 리는 없다며 그가 어떻게 증명했을지 그 시대의 수학으로 연구 중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문제에 도전했던 수많은 사람과 수학자들, 상과 상금의 조성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하고, 남아 있는 수학계의 대표적 난제들이 소개된다. 대표적으로는 완전수에 대한 미지, 소수에 대한 미지, 4색 문제 등이 있다. 본문이 끝난 후에는 부록으로 본문에서 언급된 수학 문제와 그 증명 과정이 소개되어 있는데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잡고 한 챕터씩 읽느라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책이 재미있음에도 읽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수학의 증명이 내 일상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을 텐데,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는 최고의 책이다. 1998년에 국내에서 출간되고, 3판까지 나오며 총 193쇄를 찍은 판본을 읽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쉽고 재미있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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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피델리티
닉 혼비 지음, 오득주 옮김 / 문학사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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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이야기꾼 닉 혼비가 쓴 이별을 맞닥뜨린 30대 남자의 성장소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원작이다.

충실도 혹은 충성도라는 뜻의 하이 피델리티. 어느 날 갑자기, 로라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롭은 자기 인생 전체에서 상처받은 여성 베스트 5 목록을 만든다. 그들과의 사랑과 이별을 회상하고 그들을 찾아가 자기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찾는다. 위층에 살던 남자와 연인이 된 줄 알았던 로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기점으로 다시 롭에게 돌아오고, 그들은 여전히 상당한 견해차가 있음에도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해 주는 것으로 끝난다. 제목과 이야기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가 없다.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것은 로라와 레코드 가게 직원들과 주인공의 음악에 대한 충실도뿐이다.

30대 롭은 상당히 지질하고 지지부진하고 무능한데다, 자기중심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도 로라가 왜 롭에게 다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롭에게는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로라에게도 해피 엔딩일지 아리송하다.

이야기는 쉽고 간단하고 대화가 많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산만하게 서술되는 주인공의 내면과 이야기보다 더 많이 소개되는 노래들이 소설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닉 혼비의 음악 덕후 기질이 이 소설의 진가라고도 하지만, 나 같이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흥미 있는 장치는 아니다.

그의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많고, 깊게 들어가지 않고 가볍게 다루면서 핵심은 찌르고 간다는 평가가 많아 첫 작품으로 읽었는데 실망했다. 이야기의 서사, 감정이입하고 존경할 수 있는 캐릭터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의 대표작을 3권 꼽는데, 일단 나머지 두 권을 읽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프랑스에 기욤 뮈소가 있다면 영국에 닉 혼비가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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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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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가로 더 많이 알려진 이윤기 작가의 산문집. 신문과 월간지 등에 연재했던 산문을 엮은 책이다. 내게는 움베르토 에코를 번역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각주가 많은 그 책들을 읽으며,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많은 각주를 왜 붙였을까를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작가가 번역이라는 일에 대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통찰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글은 표제작이랄 수 있는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대단한 괴물들을 죽이고 영웅이 되었는데, 우리는 과연 어제 괴물을 죽였는지 묻는다. 시간을 죽인 것은 아닌가 하고. 어제오늘 영 아쉽게 흘려버린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나라는 괴물, 나태하고 진부한 어떤 것에 매몰된 나 스스로가 아닌지 말이다. 

  <장미의 이름>을 스스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2년 동안 출판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원고를 묵히고 있었다는 데서는 놀라기도 했다. 훌륭한 작품은 청탁에서 시작되지 않고 자율로서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었을 때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 간 좌절하지 않고 어떤 신념을 유지한 것도 배울 점이다.   

  편안한 일상의 생활을 이야기하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읽으며 다시금 내 세계를 넓히고 생각을 확장시키길 원하게 된다. 약장수가 차력쇼와 가수를 앞세우는 것은 그렇게 흥미를 끌고 재미를 준 뒤에 진짜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서야 한다는 것과 나의 감정적 호오를 객관적으로 보라는 말들. 활을 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 활이 세 번 이상 과녁을 벗어난다면 나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조언 등. 부드러운 이야기 중에 번번이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삶의 지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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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9
황동규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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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판 1쇄가 발간된 197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61쇄를 찍어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집이다. 나는 시인의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기항지1>을 기억하고 있었다. 독재 정권 시대에 이렇게 말랑말랑한 감성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니 특이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 시집에서는 군 제대 이전까지를 1부로, 에든버러 유학시절부터 귀국까지를 2부로, 아이오와 대학 이후를 3부로 나눈 것 같다. 시대별로 1~3부를 정리했지만, 작가 연보와 비교해 보면 그의 인생에서 굵직한 사건들과 연결되는 것이 그러한 것 같다. 내 기억과 달리 시인은 전봉준을 비롯한 시대의 인물과 정서를 통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도 잊지 않아야 할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했다는 인상이 짙다. 시대 변혁을 꿈꾸는 듯한 은근한 은유의 시들은 이해치 못할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다.

시가 끝나고 시인과 깊은 우정을 간직하였다는 김병익이 해설을 달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의 시집에 의무적으로 달리는 비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우정을 나누고 시가 생성된 시기를 함께 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인과 시와 문학 일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도 역시나 나는, 즐거운 편지와 조그만 사랑 노래와 기항지1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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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 틂 창작문고 1
김혜순 지음 / 문학실험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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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을 기준으로 죽음에 대한 시를 썼다. 생과 사, 안과 밖의 대립들이 강렬하다. 어떤 시들은 지나치게 비장하여 올드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2019년에 캐나다 그리핀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죽음이란 소재와 주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독자에게 소구되는 것 같다.

읽으며 궁금했던 것은 <아님>이란 시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하는 점. 상당한 분량을 한국식 언어유희로 끌어갔는데, 어떻게 번역했을지 보고 싶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꺼내 봐야 참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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