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번역가로 더 많이 알려진 이윤기 작가의 산문집. 신문과 월간지 등에 연재했던 산문을 엮은 책이다. 내게는 움베르토 에코를 번역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각주가 많은 그 책들을 읽으며,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렇게 많은 각주를 왜 붙였을까를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작가가 번역이라는 일에 대해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문화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통찰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글은 표제작이랄 수 있는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대단한 괴물들을 죽이고 영웅이 되었는데, 우리는 과연 어제 괴물을 죽였는지 묻는다. 시간을 죽인 것은 아닌가 하고. 어제오늘 영 아쉽게 흘려버린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싸워야 하는 것은 나라는 괴물, 나태하고 진부한 어떤 것에 매몰된 나 스스로가 아닌지 말이다. 

  <장미의 이름>을 스스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2년 동안 출판하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원고를 묵히고 있었다는 데서는 놀라기도 했다. 훌륭한 작품은 청탁에서 시작되지 않고 자율로서 좋아하는 것을 파고들었을 때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 간 좌절하지 않고 어떤 신념을 유지한 것도 배울 점이다.   

  편안한 일상의 생활을 이야기하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읽으며 다시금 내 세계를 넓히고 생각을 확장시키길 원하게 된다. 약장수가 차력쇼와 가수를 앞세우는 것은 그렇게 흥미를 끌고 재미를 준 뒤에 진짜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관념의 고깔을 벗고 세계 앞에 홀로 나서야 한다는 것과 나의 감정적 호오를 객관적으로 보라는 말들. 활을 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 활이 세 번 이상 과녁을 벗어난다면 나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조언 등. 부드러운 이야기 중에 번번이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삶의 지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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