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 왜 이야기에 빠져드는지를 분석한 책. 우리 몸은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에 갇혀 있지만 상상력을 이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진화의 단계를 거쳐온 인간에게 선사시대로부터 이야기가 왜 필요했을까를 분석한다. 진화는 무지막지한 실용주의자인데 말이다. 인지적 놀이, 사회적 접착제, 픽션을 통한 현실 시뮬레이션 등의 기능이 진화를 거듭하면서도 이야기가 인간을 떠나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한편, 이야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도 설명하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리엔치>를 관람한 후 히틀러는 세계를 무대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도 덧붙인다. 독자의 태도가 픽션에 점차 동화되는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픽션에서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내용이 그려진데도 그 바탕에는 더 강력한 도덕적인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도덕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반박한다. 히틀러와 나치는 자신들을 통해 픽션의 강력한 힘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 정책에 방해가 되는 작가의 책을 불태워 버린 것도 그 이유다. 이야기의 미래에 대한 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서사구조는 리얼리티 쇼는 물론 게임에도 적용되어 독자는 가상현실에서 쌍방향으로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며 주인공이 되는 강렬한 경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짚는다.

책을 마치며 작가는 이야기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에 상상을 멈추지 말 것과 지금 바로 소설책을 읽어볼 것 등을 조언한다. 인간이 이야기, 픽션을 찾는 이유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바라서가 아니라 보편적 이야기 문법이 주는 낡은 위안을 얻기 때문이라는 지적에는 안도감을 느꼈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해하고 이야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중요한지를 알더라도 이야기의 매력은 조금도 줄지 않으리라는 점이 결론이다.

명석한 내용과 분명한 문장이 이 책을 즐겁게 읽게 해주었다. 작가도 작가지만 노승영 씨의 번역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번역자에게 호감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었다.

한 번 읽어서는 부족한 듯 하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플락사스다.”


  저 강렬한 문구를 중심으로 자신이 깨뜨려야 하는 세계를 고민하는 에밀 싱클레어와 그에게서 카인의 표를 읽은 데미안. 싱클레어가 동급생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조언하여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기를 조언한다. 소설은 수많은 관념의 말로 채워져 있어 그 의미를 생각하고 나에 비추어 구체적 현실을 찾아가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데미안과 헤어지고 주인공이 만난 안내자 피스토리우스와의 이별 장면이었다. 많은 인상적인 어구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이별 대목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은 도달하지 못한 세계, 자신은 안내자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피스토리우스가 침묵으로 인정하고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싱클레어에게는 다시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장면은 인생에서 한번쯤 도달해보고 싶은 순간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헤세는 이 작품을 1917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19년에 출간했다고 하니, 2018년의 사회와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인간이 가진 문제는 동일하고, 스스로가 깨뜨려야 하는 세계를 알아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여전하기 때문에 시대를 막론하고 읽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나도 모르게 책을 읽는 내내 어딘가에 밑줄을 치고 있었고, 그것이 내 삶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현자의 조언이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족이지만 헤르만 헤세 정도 되는 작가가 이런 글을 썼으니 고전의 반열에 올라 끊임없이 읽히는 것이지 신인이나 무명의 작가가 이렇게 소설을 썼다고 하면 사변적이다, 관념적이다는 비판에 시달렸을 것이다.

  참, 나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판본으로 읽었는데 두어 군데 정도 비문이 있어, 그 문장을 해독하는데 애를 먹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은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2015년에 처음 접하고 나서 해마다 이 책을 기다리곤 한다. 부지런하게 모든 문예지에 발표되는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찾아 읽는다면 좋겠지만, 그럴만한 사정은 되지 않는다. 등단한지 10년 이내의 젊은 작가들이 발표한 소설 중 빼어난 작품들을 선정하여 수록한 작품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는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해마다 발표되는 작품들에서는 당대 작가들의 시대의식을 읽을 수 있고 상당히 신선한 소설을 읽을 수 있어 좋아한다.

  박민정의 <세실, 주희>는 동의 없이 올라간 동영상에서 창녀가 되어 버리고 만 주희와 반성 없이 문화를 소비하는 일본인 세실, 그리고 이들을 한 궤로 엮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의 문제가 그려진다. 시대의 문제와 역사적 과제를 대하는 두 명의 여성을 그리고 있다.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예술과 자본의 문제를 그린다. 주인공이 모든 것을 말아 먹고 마주한 뉴욕 현대예술의 퍼포먼스에서도 역시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자본이었다는 것에 좌절하게도 된다. 반면 작가 본인이 쓴 작가노트는 신랄한 유머라기에는 나같은 독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면이 있어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말을 보니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감소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 대형사고를 ‘다행히’ 피할 수 있었던 운전기사와 그 버스에 타고 있어야 했는데 탑승하지 않은 해주의 남편을 보여준다. 암담한 대형 참사를 겪은 우리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생존자-유족들이 부디 자신의 살아남음에 아파하지 말기를 바라게 된다. 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소설이었는데, 존엄사의 선택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지금, 추천하고 싶은 소설은 아니다. 다만, 이모는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에 대해 끝까지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김세희 <가만한 나날>은 N포털에 쓰레기처럼 배양되는 블로그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다. 그 광고글을 보고 제품을 선택한 피해자는 저 멀리로 다루어지지만,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광고글을 써 제끼던 인물을 보면서 씁쓸한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정나 <한밤의 손님들>은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이 작품집에는 작품에 연결하여 신인 비평가의 비평을 싣는데, 오죽하면 비평가 조차도 아쉬움을 표했을까 싶다.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중편소설로 이 작품집 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새벽 5시, 졸렸던 눈을 뜨게 만들고 결국 아침 7시에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책장을 덮게 만들었으니까. 퀴어에 대한 시선, 동성애자는 이러할 것이다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이성애자들을 한껏 비웃으면서도 인간이자 예술가이자 동성애자인 인물을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작가의 기깔나는 이야기 솜씨가 깔려 있다. 만담꾼 같다. 문학성을 따지기 전에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올해도 역사와 사회에 문제의식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들의 작품이 독자와 한걸음 더 가깝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리뉴얼판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자신의 인생을 유머러스하게 쓴 이력서 장,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갖추어야 할 연장통 장,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창작론 장, 후기를 대신한 인생론으로 구성되었다. 이력서 장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작법서 보다는 작가의 자서전 정도로 리뷰한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소설가인 작가는 기술로서의 작법이 아닌 작가가 살아온 삶을 보여줌으로써 작가 지망생들이 갖추어야 할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고단했던 유년과 무명 시절조차 유머러스하게 보여줌으로써 삶에 여유를 갖기를 조언하는 것이다. 인생론의 말미에서 작가는 말한다. 예술을 위해 인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연장통은 많은 지망생들이 무시해 버리는 기본을 언급한다. 어휘, 문법, 문단 쓰기. 기초적인 것임에도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충고한다. 

  창작론에서는 그야말로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작법 조언을 해준다. 타 작법서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본다면 금상첨화다. 누구나 자기만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작법(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의 문법 정도라도 해두자)을 깨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을 깨야 할 때 스티븐 킹의 경험과 조언을 토대로 자기만의 파생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이론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상상력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는 점이겠다.

  재미있게 읽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감동 받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스티븐 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물을 받고 진지하게 시집을 몇 장 넘겨보다가 단순한 서정 같아 잠시 덮어 두었더랜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나고, 그 때와는 또 다른 감정과 상황을 지니게 되어서 읽은 시집.

때로는 시인의 묵직한 시어에 눈시울이 붉게 닳아 오르고, 담담하지만 생사의 절박한 순간이 절절이 느껴지며 공감하게 되었다. 마음을 끄는 시에 색인용 필름을 붙이고 있었는데 책장을 덮어 갈 무렵 책 하나에 무수히 많은 색인이 붙어 있었다. 특히나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그 여름의 끝>은 그 강렬한 심상과 정서에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이전까지 덤덤하다 할 정도로 평이하게 표현해 왔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마지막 시였다. 그렇다고 하여 수록된 시들이 평범하냐면 그렇지 않다. 두고두고 자주 펼쳐볼 것만 같은 시집. 1990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2017년에는 재판 26쇄로 나온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스승님께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