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생소했다. 자신의 목숨을 사용한 그 글이 읽고 싶어졌다. 무엇엔가 목숨을 걸고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이지않을까라는 생각을하니 행복한 맘으로 쓴 소설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치료받기엔 좀 늦은 것 같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글 쓰는 데 쓸란다. 한번 입원하면, 다시 책을 쓰긴 어려울 거다. 암 치료받기 시작한 작가들 결국 소설다운 소설 못 쓰고서…. 작가가 작품을 쓰지 못한다면, 사는 게 얼마나 가치가 있겠나. 그리고 꼭 써야 할 작품이있다."
위의 말은 작가 복거일의 말이 아니다. 무슨 말인가. 작가의 말이 아니라니. 정확히 말하면 자가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의 말이다. 부연하자면 복거일이 최근 펴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라는 장편소설에 나오는 현이립이라는 주인공이 한 말이다. 역시나 그는 작가였다. 자신이 암에 걸렸고, 치료를 거부한 채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핏 작품 속 화자의 말은 액면 그대로 소설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지만, 그러나 그의 작품 성향을 아는 이들이라면 현이립이 작가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게다. 소설의 인물이 작가의 분신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떠올리지 않아도 복거일의 경우는 소설의 인물이 작가의 분신인 경우가 적지않은 편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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