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마당의 ‘사를마뉴 대제‘ 청동 기마상에 눈길을주는 관광객은 없었다. 
우측면 정원의 기도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조각상도 그랬다. 
이 청동상과 조각상은 ‘노트르담이 종교와 정치의 권력 중심‘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관광객들은 아무 관심도 주지않았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모두들 성당의 위만 바라보았다. 
성당 전면 상단 ‘장미의 창‘이나 독일군의 폭격에 부서질까 봐 떼서 숨겨 두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도 인기가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교수대에서 구출해 숨어들었던 공간을 탐색하는 중이라고, 나는 내 마음대로 짐작해 보았다. 문학의 힘이 총칼보다 센지는 모르겠으나, 더 오래 지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2019년 4월, 노트르담의 첨탑과 지붕이 불에 타 무너졌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파리 시민들, 장미의 창을 비롯한노트르담의 귀중품을 구해내려고 분투하는 소방관과 시민들의 몸부림이 화염이 첨탑을 집어삼키는 장면보다 더 강한 여운을 남겼다. 불과 며칠 만에 우리나라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복구 성금이 모였다는뉴스는 이런 의문을 일으켰다. ‘노트르담이 도대체 뭐기에?‘
프랑스 국민과 파리 시민에게 노트르담은 집단적 정체성을 집약한 문화의 아이콘이다. - P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궁전은 아흐메트 광장의 오벨리스크나 부서진 청동 기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약탈 문화재 창고였다. 그렇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저수조 건설 책임자들이 문화재를 약탈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문화재를 약탈한 게 아니라 건축자재를 재활용했을 뿐이다. 지금도 터키의 지중해 연안 곳곳에는 고대 그리스 돌기둥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스탄불에는 거의 없다. 에게해의 섬과 그리스 본토의 신전 기둥까지 뽑아왔던 비잔틴제국 관리들이 콘스탄티노플 시내의 그리스 신전 돌기둥을 그대로 두었겠는가.
지하궁전의 돌기둥은 실로 다양했다. 사각기둥, 원기등, 통으로각은 기둥 등 모양도 두께도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주두가 아예없었고 어떤 것은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주두 장식이 있었다. 저수조 맨 안쪽의 메두사도 재활용한 석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메두사를 그런 식으로 놓았을까? 저수조 기둥은 길이가 모두같아야 한다. 너무 긴 기둥은 잘라 맞추었겠고 너무 짧은 것은 적당한 돌덩이를 피었을 것이다. 마침 괴물 형상을 그려놓은 돌덩이 2개가 있었는데, 기둥을 받치기에 적당하게 놓다 보니 하나는 거꾸로, 대른 하나는 옆으로 놓게 되었다. 기둥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메두사가 바로 서든 뒤집어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일을 한 현장감독은 그것이 구름 관중을 불러 모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이 메두사가 거꾸로 앉게 된 경위에 대한 나의 별 근거없는 추정이다. 그렇지만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 P1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에 빗댄 로마가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멋진 신사같은.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대단히 현명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완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나름 인생의 맛과 멋도 알았던 그는 빛바랜 명품 정장을입고 다닌다.
 누구 앞에서든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곽해도 기죽지 않는다. 인생은 덧없이 짧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때 거두었던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로마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았다.
"어때? 종종 만나서 놀면 괜찮지 않겠어?" 로마가 물었다. 
테르미니역 승강장에서 공항 가는 기차에 오르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래, 가끔 만나는 건 뭐, 나쁠 것 없겠지. 
다음에 보자. 바쁜 일 좀 끝나면, 차오(Ciao, 안녕)!"
- P1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잘 안다고 생각되는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며 잠깐이나마 우리나라의 정치를 생각했다.

플라카의 골목을 걸으며 생각해보았다.
 아테네 시민들은 왜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고정관념, 광신, 시기심, 무지, 무관심, 변덕이 그를죽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떤 지식인은 국회의원을 차라리 추첨으로 뽑자고 주장한다. 국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충분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이 주장에 공감하지 못한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반드시 중우정치로 흐른다면서 덕과 진리를 아는 ‘철학자의 통지‘를 옹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들이 각자 훌륭해지지 않고, 훌륭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출륭해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시민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하며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얼마나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론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 P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심하는 맘으로 책을 읽을 수 있겠다. 한결 편안하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나는 도시가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나 자신과 인간과우리의 삶에 대해 여러 감정을 맛본다. 그게 좋아서 여행을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과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하는데, 그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콘텍스트는텍스트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말한다. 도시의 건축물과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 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나는 건축과 예술을 모르며, 유럽 역사를 연구하지도 않았고, 여행경력도 변변치않다.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