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궁전은 아흐메트 광장의 오벨리스크나 부서진 청동 기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약탈 문화재 창고였다. 그렇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저수조 건설 책임자들이 문화재를 약탈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문화재를 약탈한 게 아니라 건축자재를 재활용했을 뿐이다. 지금도 터키의 지중해 연안 곳곳에는 고대 그리스 돌기둥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스탄불에는 거의 없다. 에게해의 섬과 그리스 본토의 신전 기둥까지 뽑아왔던 비잔틴제국 관리들이 콘스탄티노플 시내의 그리스 신전 돌기둥을 그대로 두었겠는가.
지하궁전의 돌기둥은 실로 다양했다. 사각기둥, 원기등, 통으로각은 기둥 등 모양도 두께도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주두가 아예없었고 어떤 것은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주두 장식이 있었다. 저수조 맨 안쪽의 메두사도 재활용한 석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메두사를 그런 식으로 놓았을까? 저수조 기둥은 길이가 모두같아야 한다. 너무 긴 기둥은 잘라 맞추었겠고 너무 짧은 것은 적당한 돌덩이를 피었을 것이다. 마침 괴물 형상을 그려놓은 돌덩이 2개가 있었는데, 기둥을 받치기에 적당하게 놓다 보니 하나는 거꾸로, 대른 하나는 옆으로 놓게 되었다. 기둥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메두사가 바로 서든 뒤집어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일을 한 현장감독은 그것이 구름 관중을 불러 모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이 메두사가 거꾸로 앉게 된 경위에 대한 나의 별 근거없는 추정이다. 그렇지만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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