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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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다. 도서관에서 일하다보면 인기작품들을 금세 꿰뚫수 있게 된다. 2000년대 초반, 해리포터의 광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일본 여류작가의 작품들도 발빠르게 선점해야만 대출이 가능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활자가 빽빽하게 담긴 작품을 읽어야 책을 읽었다고 느끼는 부류여서 인스턴트 같은 일본 여류작가의 작품들의 인기가 그다지 달갑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와 동시에 어떤 작품들이길래 이토록 인기가 있나 싶은 호기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잡아든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은 역시나 나의 독서취향에 전혀 맞지 않아 이 후 그런 종류의 책들은 무관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 문득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활자보다 여백이 많은, 게다가 간간히 묘한 그림까지 수록된 바나나의 책들을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읽기 시작한 첫 이야기는 "하드보일드 하드럭"이었다.

 

"하드보일드"와 "하드럭", 2편의 단편은 '죽음'을 모티브로 꾸려가는 이야기이다. 헤어진 연인의 죽음과 결혼을 앞둔 언니의 죽음, 단지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서술된다. 평소 누구나 생각하는 '죽음'을 상당히 현실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류작가 특유의 간결하고도 섬세한 문체 역시 글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허세스러움'은 주된 내용이 매우 현실적으로 펼쳐가는 것과 무관하게 읽는 이와 화자와의 이질감을 자아냈던 것 같아 아쉬웠던 대목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눈 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기분이 든다. 효과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그녀의 글 솜씨가 기대했던 것보다 뛰어나 놀라웠다. 하지만 감각적이고 세련됨을 표방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가끔은 감성의 오글거림으로 다가와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드보일드 하드럭"의 마지막 장을 덮고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도 '죽음'을 기본적인 도구로 활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작가는 '죽음'이라는 인간사에 매우 집착하는 듯 싶다. 과연 그녀는 다른 작품 속에서 '죽음'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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