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 강의 푸가
안 들라플로트 메드비 지음, 정기헌 옮김 / 뮤진트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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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할 수 없지만, ‘노래’는 부를 수 있다. 한 여인은 어느 날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갖은 방법으로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녀에게서 목소리는 사라져버렸다. 그러던 중, 그녀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희한한 아이러니가 내게 찾아온다면 과연 나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이 모순을 수용할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들이 『퀴르 강의 푸가』를 읽는 동안 내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읽어낸 순간마저도 그 의문들은 말끔히 해결되기는 커녕 더욱 복잡한 결론들만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많은 결론들을 탄생케 한 『퀴르 강의 푸가』속으로 들어가 묘한 주인공 클로틸을 만나보자.

 

서른셋의 클로틸은 잘생기고 멋진 조종사 남편과 귀엽고 사랑스런 네 아이를 둔 가정주부이다. 마치 그림 속의 행복한 가정을 현실에서 보는 것 같은 가정이 바로 클로틸의 가정인 것이다. 티끌만한 근심걱정조차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클로틸과 벵상과 네 아이들에게 핵폭탄급 걱정거리가 찾아온다. 바로 클로틸의 ‘침묵’이었다. 벵상도 네 아이들도 처음에는 클로틸의 ‘침묵’이 금세 깨어질 것이라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클로틸의 치료 과정이 지지부진해지면서 벵상도 아이들도 그녀의 아버지, 친구마저도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더욱이 그녀가 말 대신 노래‘만’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클로틸의 주변인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당연시되었던 행복과 우정은 점차 금이 가기 시작된다. 클로틸 자신도 목소리를 찾는 일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일을 더욱 중요시여기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정신적 대립각에 서게 된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클로틸은 목소리를 찾고 싶은 걸까?

 


현재의 클로틸은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그녀는 뛰어난 피아노 실력과 3개의 외국어를 구사하고, 몇 개의 학위를 갖고 있는 미모의 재원이었다. 하지만 잘나가는 조종사 벵상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한 남편 벵상은 그녀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라고 있기에 그녀의 사회생활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클로틸의 목소리가 사라진 이후부터 그녀의 꿈은 조금씩 조금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전혀 순조롭지 못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퀴르 강의 푸가』를 읽고 있는 여성인 나 자신마저도 클로틸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도대체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에게서조차 응원받기 어려운 것만 보더라도 이 사회에서 가정주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퀴르 강의 푸가』의 주인공 클로틸은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남편, 아이들, 아버지, 친구 역시 그녀의 성공을 축하해준다. 나 또한 클로틸의 성공에 박수를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허구 속의 주인공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자리 잡았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자신의 꿈을 일궈낼 수 있는 수많은 클로틸이 존재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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