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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때쯤 영화 『남극의 셰프』를 관람했었다. 영화 속 배경인 남극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먹으며 사는 걸까, 하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 선택한 영화였다. 적당히 요기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화면 속 맛깔나게 등장하는 음식덕분에 침을 꼴깍 꼴깍 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의 원작 에세이 『남극의 셰프』가 내게 날아왔다. 그저 만들어진 것이라 여겼던 이야기가 실화였다니!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영화 속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나의 설렘과 기대감은 무궁무진하게 부풀어갔다.
광활한 설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 남극 대륙의 해발 3,800미터에 조그마한 돔 기지만이 덩그러니 존재한다. 그곳은 펭귄도, 바다표범도, 그 어떤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극한의 땅이다. 극한의 땅을 연구하기 위해서, 연구원들을 의료, 설비, 기계 운영으로 보좌하기 위해서 9명이 모였다. 돔 기지의 월동대원은 과묵한 가네토 부대장을 필두로 겉과 속이 다른 히라사와 대원, 씻기를 거부하는 린 대원, 술고래 모토야마 대원, 유쾌한 바이러스 소유자 가와무라 대원, 열성 카프(프로야구단)팬 니시하라 대원, 추위에 약한 사토 대원, 가끔 정신을 놓는 마취의 후쿠다 대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남극의 셰프』의 저자인 니시무라 대원은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요리사의 막중한 사명을 갖고 돔 월동대원이 되었다. 앞으로 평균 기온 영하 57도에 돔 기지라는 협소한 장소에서 9명의 남자들은 싫든 좋든 1년 동안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한다.
『남극의 셰프』는 다양한 개성의 9인 성인남자들의 남극 적응기이다. 혹독한 기후의 남극이니만큼 당연히 그들의 적응기가 순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좌충우돌 남극적응기는 상당히 유쾌하고 즐겁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자칭 게으른 성격에 불량한 요리사인 저자를 비롯하여 다소 무겁고 진지할 것 같은 8인의 남극대원들 역시 그저 철없고 재미있는 아저씨들이라는 사실이 『남극의 셰프』를 유쾌하게 만든다. 또한 저자의 과감한 시선으로 대원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온 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장난기가 가득한 편안한 문체를 읽다보면 읽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오히려 전문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득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월동대원들은 틈만 나면 이런저런 구실을 찾아 파티를 개최한다. 게다가 평소에는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내는 음식들을 돔 기지에서 맘껏 맛 볼 수 있다. 고가의 고기를 다 먹어치우지 못해 그 다음날 하찮은 라면의 고명으로 사용하기도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밥을 무한정 먹고 있는 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음식기행을 하러 남극에 왔나,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종반부에 이르렀을 즈음, 독자는 그들이 매일매일 먹은 다채로운 음식만큼 대원들은 매순간마다 남극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제한된 공간에서 그들 나름대로 동료로서의 정을 파티와 음식을 통해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극의 셰프』를 읽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동하게 되었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해도 인간은 의지를 갖고 타인과 함께 열심히 적응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발칙하고 귀여운 남극의 요리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또 다른 남극의 셰프는 지금 이 시각 남극 돔기지에서 대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를 고심하며 열심히 요리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