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Zone
차동엽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들른 서점 가판대에서 차동엽 신부의 『바보Zone』을 만났다. 나는 평소 자기계발서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게다가 종교색이 짙어 보이는 저자의 작품은 일단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이런 성향의 내가 가톨릭 신부가 집필한 자기계발서를 집어든 것은 사건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평상시 나의 독서행보를 반추해봤을 때, 절대 만날 수 없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바보Zone』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참으로 열심히 읽었고 많은 물음들을 머리와 가슴 속에 던지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차동엽 신부의 『바보Zone』은 독자에게 ‘답’이 아닌 독자 스스로의 ‘물음’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바보Zone』은 바보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하는 ‘바보 패러독스’와 바보가 되기 위한, 바보임을 증명하는 12가지 바보 철학을 다루고 있는 ‘바보 속의 거인’, 그리고 진정한 바보에 도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이야기하는 ‘바보의 자유’, 크게 3부분으로 구분되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2장에 해당하는 ‘바보 속의 거인’에 많은 공을 들였다. 1장과 3장에 비해 많은 부분을 할당하여 12가지 바보 철학을 진지하고 재미있게 논하고 있다. 이는 작품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자 읽는 이로 하여금 가장 많은 ‘물음’을 뽑아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상식을 의심하라, 망상을 품으라, 미쳐라, 남의 시선에 매이지 마라, 투명하라 등의 12가지 바보 블루칩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엉뚱한 ‘바보짓’에 지나지 않는 요상한 것들뿐이다. 당연히 12가지 원리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독자의 의구심과 물음이 수반된다. 그리고 차동엽 신부는 독자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여러 가지 간략한 우화와 옛 성현들의 이야기,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풍부하고 가지런히 나열하며 읽는 이의 물음에 해당하는 답들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실제로 저자가 깔끔하게 제시해 놓은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상당한 재미를 줄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이해도우미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오랜세월 동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는 『바보Zone』을 중반 이상 읽어나가면서도 솔직히 저자가 역설하고 있는 진정한 바보에 대해서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세속에 찌들어 있는 나의 관점에서 차동엽 신부가 풀어놓는 바보는 한없이 어리석게만 보였다. 또한 만약 내 안에 꽁꽁 숨어있는 바보Zone을 개방시켰다가는 이 세상의 낙오자가 될 것 같아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두려움과 걱정은 나 스스로가 완전한 바보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뒤따르는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보인척 그 시늉만 내려고 했으니 두려움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바보는 스스로가 쌓은 장벽을 깨뜨리고 그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끄집어내어 실천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실을 찾아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바보Zone』을 단순히 성공을 위한 목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십분의 일도 깨닫지 못하고 자신도 원치않게 주마간산[走馬看山]하고 있는 꼴이 된다. 『바보Zone』을 성공이 아닌 새로운 나와 조우할 수 있게 만드는 무한한 가능성의 무대로 활용한다면 이제껏 보지 못하고 스쳐 지난 것들의 존재를 하나씩 하나씩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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