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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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에 대한 검열법 때문에 전쟁을 치르는 도서관 방위대의 독특한 이야기, 『도서관 전쟁』을 인상깊게 읽은 후, 기억해뒀던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이전의 SF공상소설이 아닌 철부지 청년의 늦깎이 성장소설이라는 점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지 나는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를 읽기 전부터 기대만발이었다.

세이지는 이류대학을 다녔지만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한다. 하지만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석 달 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더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지만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둔 그저 그런 대학 출신의 세이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의욕을 잃어버린 세이지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용돈벌이 단기 알바생활에 안주하고 만다. 나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무렵, 세이지에게 큰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어머니의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20년 동안 동네 사람들의 괴롭힘이 주된 원인이었고 세이지와 아버지의 냉각된 관계와 누나의 부재는 어머니의 우울증을 부채질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탈출하는 것이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다. 자신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도통 이사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옥 같은 동네를 떠나야 하기에 세이지는 새 집을 마련코자 돈을 모우기로 결심한다.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를 읽기 전에는 유쾌한 내용의 즐거운 작품일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작품은 무거운 주제의 어두운 작품이었다. 무뚝뚝하고 독단적인 아버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 선을 넘어선 동네사람들의 괴롭힘, 너무나 현실적인 현 사회의 모습, 연거푸 취업에 낙방하는 주인공 들은 독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가는 곳곳에 세이지의 조력자들을 배치해둔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척척 해결해 내는 누나, 언제나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 현장 알바의 동료들과 소장,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막무가내 아버지까지, 그들은 세이지를 도와주고 보둠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떠올리고 있었다. 청년백수가 흔하디흔한 요즘 같은 시대에 세이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 게으름과 나태 속에서 안주하던 세이지는 어머니의 우울증을 계기로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달라진 모습을 주변에서 먼저 인지한다. 의지와 끈기가 생겨 힘든 현장 알바를 꾸준히 지속하게 되었고 가족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에는 배려가 묻어난다. 도통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청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가에는 배시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세이지의 고군분투 성장기 속에서 우리가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다. 그의 게으름이 나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여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실은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아버지의 마음과 우울증을 겪고 있는 중에도 자식과 남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아리카와 히로는 '저자후기'에서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는 집필하기 편한 작품이었노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의 백수시절 에피소드를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독자 역시 즐겁지 않은 현실이 주된 내용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술술 읽히게 되는 가독력이 높은 작품이었다. 게다가 우울한 소재를 저자만의 긍정적인 화법으로 돌파하기 때문에 읽는 이가 작품의 종반부에 다다랐을 때에는 가슴 한 곳에 자리 잡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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