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리버튼 저택의 불행은 전쟁에서 기인된다. 만약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데이비드, 해너, 에멀린의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장남인 데이비드는 하트포드 가의 유구한 명맥을 계속 이어갔을 것이고, 둘째 해너는 런던으로 독립하여 여류작가의 삶을, 막내 에멀린은 귀여운 가정의 사랑받는 안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의 굴레는 한없이 잔혹하기만 하였다.

『리버튼』은 1914년부터 1999년까지, 한 세기를 지나온 여인을 화자로 내세워 하트포드 가문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1914년 7월, 14살의 어린 그레이스는 하트포드 집안의 하녀로 리버튼 저택에 첫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소녀는 자기 삶의 전부가 될 동갑내기 아가씨, 해너와 만나게 된다. 해너 삼남매를 위해 가정교사에게 거짓말을 둘러대는 그 순간부터 그레이스는 해너에게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알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기꺼이 해너를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정한다. 같은 나이의 어린 소녀이지만 그레이스와 해너는 전혀 다른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한쪽은 안락하고 편한 아가씨의 삶을, 다른 한쪽은 버겁고 힘든 하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아가씨보다 하녀쪽이 더 행복해 보인다. 1910년대 영국 사회는 상류층이라도 여인의 삶은 제한되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열렬히 원하는 해너는 쇠락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리버튼을 떠나 런던 생활을 시작하면서 차츰차츰 해너와 에멀린의 일상은 변화가 생긴다.

『리버튼』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되는 치밀한 구성에 특히 주목할 수 있다. 이야기는 십대 소녀 그레이스와 아흔을 넘긴 노파 그레이스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서술된다. 이러한 교차 편집된 작가의 서술방식은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작가가 공들여 배치해놓은 복선들과 그 결말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십분 충족시킨다. 작가의 영리한 이야기 구조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리버튼』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세기 초 영국 상류사회와 여성의 지위,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몰락하는 상류층과 붕괴되는 신분제도, 미국 금융권의 영국 진출,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청년들 등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작품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전형적인 인물부터 개성적인 인물까지 놓치지 않고 두루 섭렵하기에 이야기는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지막 해너가 그레이스에게 보낸 편지이다. 해너의 편지는 리버튼 저택의 호수사건 이후 해너가 그레이스에게 던진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풀 수 있는 열쇠이다. 그 열쇠는 독자의 궁금증을 홀가분하게 풀어줬지만 반면에 그들의 일그러진 운명의 원인으로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결말을 유도한 편지였기에 책을 덮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리버튼』, 책을 펼치는 첫 순간부터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부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이 작품이 신생작가의 처녀작이라니 독자의 놀라움은 배가 된다. 복잡한 그림의 수많은 퍼즐 조각들을 정교하게 짜서 완벽하게 맞춘 작품, 『리버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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