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 손턴 와일더의
손턴 와일더 지음, 김영선 옮김 / 샘터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문학다운 문학을 만났다. 게다가 철학적인 주제를 문학 장르에 균형있게 다루고 있었다. 2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이 작품은 독자에게 '인간의 삶이란 신에 의해서 예정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우연히 살아져가는 것인가!', 라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일관된 물음은 독자에게 넓고도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해준다. 자, 이제 각자의 답을 찾으러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714년 7월 20일, 페루의 리마 근처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 순간 다리를 건너던 다섯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지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히 참담한 사건으로써 고인들을 향해 잠깐의 묵념을 보내진 후, 덮어질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붕괴된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주니퍼 수사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 못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들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아야하는가? 이 궁금증은 다섯 사람의 인생을 조사하게 만드는 발단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수면 위로 차츰차츰 드러날수록 자신이 믿고 있는, 믿어야하는 '神'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독자 역시 어느 순간 주니퍼 수사처럼 인생의 여정에 대해서 함께 고심하게 된다.

외모로 인한 콤플렉스를 아름다운 딸에게 집중시킨 몬테마요르 후작부인, 고아로 수녀원장의 조그마한 관심을 갈구했던 페피타, 쌍둥이 형의 자살로 혼돈의 세계에 빠져버린 에스테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카밀라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여준 피오 아저씨. 5인은 다리가 붕괴되면서 함께 인생의 종지부를 찍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보여준 집착에 가까운 이해 불가한 행태는 사랑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문제로 인한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원인은 모두 '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죽음은 참으로 어이없고 허탈한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매개로 하여 삶의 상실감에 대한 문제를 하염없이 던지고 있고 독자는 그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야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관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답변이 존재하기에 작가는 자신만의 결론은 배제하고 질문만을 남고 둔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결국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묻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인생사에 대해 원론적으로 집중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는 철학적으로 인생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와일더의 문장력은 매우 수려하다. 이 작품을 집필할 당시 작가는 프랑스 문학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작품 안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문장조차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표현되어 있고 내재적 의미가 깊게 산재되어 있어 여러 번 곱씹어봐야 한다. 게다가 상당히 객관적인 위치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독자 입장에서 해석하기가 용이하다. 이러한 점들은 읽는 이에게 이 작품이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복잡다단함에게 기인된 사유의 세계를 독자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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