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앗!", 하는 놀라움은 퍽 오랜만인 것 같다.『흑백합』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작가 타지마 토시유키의 얼굴이 매우 보고 싶어졌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까지 '이거 추리소설 맞아?', 하는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라고 결정지으려던 찰나에 작가는 갑자기 추리소설의 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휘리릭 순식간에 마무리 지으며 이야기를 깔끔하게 끝내버린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또 무엇을 놓쳤는지 내 머리 속은 매우 복잡해졌다. 영리한 작가 덕분에 나는 다시 한 번 책을 뒤적이게 되었다.

아버지들의 친분으로 여름방학을 롯코 산 별장에서 지내게 된 순수한 도쿄소년 스스무.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해박하지만 소녀감성 이해력은 조금 떨어지는 간사이소년 카즈히코.
두 소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밝고 명랑한 소녀, 카오루.

14살 여름방학, 롯코 산의 표주박 호수에서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자연스레 친해져서 그 해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삼총사의 이야기는 여느 성장소설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다. 나 역시 그들의 일과가 내가 겪은 일처럼 마냥 즐거웠다. 하지만 밝기만 하던 카오루의 이면에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스스무와 카즈히코는 자신들의 빛으로 안아주고자 한다. 이처럼 추리소설『흑백합』은 풋풋한 성장소설이 가미되어 있다.

『흑백합』은 스스무, 켄타로(카즈히코의 아빠), 신야(카오루의 고모부)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물론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스무의 시점이다. 스스무의 시점에서는 순수문학의, 켄타로와 신야의 시점에서는 추리문학의 향기가 배어있다. 작품의 마지막 2페이지가 없었다면 단순한 성장소설이 되었겠지만 강력한 마지막 2페이지 덕분에 『흑백합』은 추리소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작가는 중간 중간에 복선의 이미지를 깔아놓았고 나는 멋지게 그것을 끄집어내지 못했다. 정말이지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작가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기분이 든 마지막이었다.

타지마 토시유키의 문체는 간결하고 단조롭기까지 하다. 단조로운 문체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깔끔한 문체는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많지 않은 분량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선보인 그의 서술방식은 독특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으며,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타지마 토시유키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전에 나는 먼저 켄타로와 신야의 시선으로『흑백합』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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