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균형 아시아 문학선 3
로힌턴 미스트리 지음, 손석주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인도라는 곳은 빈부의 격차가 큰 제3세계일뿐 무관심의 대상이다. 왜 그리 가난한 사람이 많은 나라일까, 라는 원초적인 물음이 항상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올랐고 그것마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적절한 균형』을 읽고 그들의 처절한 가난의 이유를 반 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적절한 균형』은 여느 책에 비해서 상당히 두껍고 페이지마다 활자가 빽빽하게 들어있다. 2권이상의 분량이 한 권으로 묶여있다. 활자 홀릭에 빠진 독자로서 정말 100% 마음에 쏙 드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분량만큼 내용 역시 버릴 게 없다. 워낙 두꺼운 책이라 몇 시간 만에 읽을 수가 없다. 이틀의 새벽을 홀딱 새어가면서 『적절한 균형』을 읽어야 했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읽기를 포기한 채 잠자리에 들면서도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매우 궁금했다.

『적절한 균형』은 디나, 이시바, 옴, 마넥의 복잡다단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죽음 뒤 오빠에게 학대받는 디나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여인이다. 오빠의 반대를 꺾고 공연장에서 만난 가난한 러스텀과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생활 3년즈음 러스텀은 뺑소니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오빠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 그녀는 러스텀의 아파트에서 홀로 살게 된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하숙생 마넥을 들이고 재봉사 이시바와 옴을 고용하게 된다.
재봉사 이시바와 옴은 카스트제도의 희생자들이다. 투표권을 얻고자 했던 옴의 아버지, 이시바의 동생 나라얀으로 인해 고향의 가족들은 무참히 학살당한다. 이시바와 옴은 도시로 가서 일감을 구하다가 디나의 재봉사가 된다.
마넥은 소위 잘 팔리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수료증획득을 목표로 대학에 진학한다. 물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강요로 고향집을 떠나오게 된다. 기숙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넥은 디나의 아파트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태어나고, 살아오고, 앞으로 살아갈 환경까지 모두 다른 네 사람의 이야기는 "아픔"이 배어있다. 처음에는 서로를 배타적으로만 여기던 그들은 그런 "아픔"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차츰 친밀한 '가족'과도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 아마 디나가 자신의 빨강 장미 찻잔을 옴에게 내어준 뒤부터였던 것 같다.

카스트제도 안에서 하층에 속하는 이시바와 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큰 재앙을 겪는다. 처음에는 카스트제도의 말도 안되는 특권사상 때문에 가족을 잃는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 있는 타락한 위정자 때문에 수레에 실려 가는 돼지취급을 받으며 노동현장에서 대가도 요구하지 못하고 뼈 빠지게 일만 한다. 결국에는 카스트제도의 냄새나는 특권과 위정자의 권력이 합쳐진 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인해 이시바와 옴은 불구의 몸이 된다. 불행한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웃어 줄 수 있었던 이시바와 옴이 나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마지막 거지가 되었어도 이시바와 옴은 웃는다. 나는 그들의 웃음이 어떤 종류의 웃음인지 쉽게 결정지을 수가 없었다. 그저 크나큰 불행의 비를 맞은 그들의 남은 미래를 위해서 희망에 가까운 웃음이길 바랄 뿐이다.

마넥은 대학진학을 위해서 기차를 탄다. 기차 안에서 변호사이자 글을 교정하는 일을 했던 낯선 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낯선 이는 인간이 어찌됐든 살아가려면 절망과 희망사이에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 낯선 이는 바로 『적절한 균형』의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이고 그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주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적절한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디나, 이시바, 옴, 마넥이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