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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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이라는 장르는 그리 자주 접하게 되는 분야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반짝반짝 머릿속에서 연극무대를 만들어 가면서 읽은 작품이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8년에 아서 밀러에 의해 탈고되어 49년에 초연, 현재까지도 인기 있는 공연 중 하나라고 한다.
창작된 지 벌써 60년이 다 되었는데도 지금의 현실과 많이 닮아 있는 이야기이다.

해결책이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단히 노력한다. 또 어떤 이는 현실을 회피하고 거짓 진실을 만들어서 위안을 삼는다.
로먼 가의 윌리, 린다, 비프, 해피는 후자 쪽 현실에서 도피하는 사람들이다.
"OO는 사람은 좋지만 인기가 없어. 난 사람도 좋고 인기도 많아. 난 대단한 사람이야!" 라고 늘상 자신의 어린 아들들에게 말하는 윌리.
그런 윌리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고 무조건 따르는 수동적이며 안쓰러운 아내, 린다.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운동만 하면서 친구들의 대장노릇에 익숙한 비프.
"아빠, 나 살이 빠졌는데 알아보시겠어요?" 라며 윌리의 관심을 갈구하던 해피.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는 내내 답답한 무언가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아 오히려 책장을 빨리 넘기게 되었다.
현재 내가 부모가 아닌 자식의 입장이라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윌리가 아닌 그의 아들 <비프>에 동화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의 다른 작품에서라면 등장인물의 죽음이 안타깝고 슬픈 것이 대부분인데 <세일즈맨의 죽음>은 달랐다.
마지막 윌리의 죽음은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오히려 후련한 감정의 비중이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윌리가 정신적으로 통제불가한 정도로 힘든 상황을 벗어나는 건 죽음뿐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그의 안식으로 느껴진 것이리라.

1940년대 경제공황 속의 로먼 가의 불행은 2000년대 세계적인 경제불황의 또 다른 로먼 가의 불행으로 겹쳐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리는 현실적으로 그 시대의 희생자를 대표하고 있으며 지금도 제 2의, 제 3의 윌리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세일즈맨의 죽음>이 오래된 희곡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지금 읽어도 전혀 동떨어지지 않는다.
피곤한 삶을 영위할 바에야 『편안한』죽음을 선택하는 게 더 매력적이고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퀴엠의 마지막 부분, 윌리의 묘지 앞에서 린다의 가슴 아픈 대사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심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정신줄을 꽉 붙잡고 덜 매력적이고 매우 어렵겠지만『불편한』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에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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