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봄날의 병아리처럼 <천사들의 도시>는 아주 샛노란 표지를 뽐내고 있다.
밝지 않은 분위기의 작품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서 읽은 책이지만 이렇게 우울한 내용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마치 순간의 주체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서 노오란 병아리를 집에 데려 왔는데 며칠만에 죽음을 맞이한 싸늘한 병아리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내가 어려워서 잘 읽지 않는 과학서적만큼이나 한장 한장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매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우울한 내용에도 어려운 심리묘사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의 도시>는 꽤나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천사들의 도시>은 조해진 작가의 2004~2007년도의 7편의 단편을 모아서 만든 단편집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와 말없는 그의 이야기, 단편집의 제목과 같은 <천사들의 도시>.
에이즈에 걸린 여자, 미숙의 일주일과 병든 짝사랑을 그린 <그리고, 일주일>.
한국으로 시집 온 우즈베키스탄 여인과 그녀의 부엌이 인상깊었던 <인터뷰>.
살아있지만 죽은 존재가 되어 버린 안타까운 남자이야기의 <지워진 그림자>.
죽은 동생들의 환영에 시달리는 여인과 그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학생 M, <등 뒤에>.
매번 사람들의 오해를 사는 전과자 남자와 여자 배우의 이야기, <기념사진>.
세상에 희망이라고는 한줌도 없는 여자와 뇌수술 후 거인이 되어 버린 여자의 여행을 다룬 <여자에게 길을 묻다>.
총 7편의 단편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7편의 단편 중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기념사진>이었다.
본때 없는 안하무인 여자와 아파트 주민 사이에서 비아냥거림을 받는 남자는 항상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다.
짜증스럽게 인상을 쓰는 여자는 "망막색소변성증", 일명 "아르피"라는 병이 있다. 그녀가 사물을 보려고 노력할때마다 얼굴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짜증을 내는 인상으로 비춰진다. 결국 그녀는 본때 없는 안하무인녀가 되어버렸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밤에도 짙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남자는 범죄자로 오해를 받고 감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해가 풀려서 출소하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두려워 자신의 얼굴을 꽁꽁 숨기고 다니게 되었다. 결국 남자도 아파트 주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심심풀이 땅콩이 되어버렸다.
남자와 여자는 잘못한 것도 없이 타인에 의해서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처한 상태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내 옆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면 등을 토닥거려 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웠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을 소외시키는데 가담한 가해자와 다를바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쩡하게 평범하게 인생을 살아가다가 누구나 한순간에 사회의 소외자가 될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다시금 알려주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서는 작은 희망을 느꼈다.
소외당한 남자와 여자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들의 어색한 웃음에서 그들이 더이상 사회의 소외자가 아니라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되길 진정으로 바라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남자와 여자가 보였다.

꼭 알아야하지만 가끔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눈앞에 있을 때가 있다.
매번 싫다고 눈을 꼭 감아버리면 언젠가 내가 그 현실에 처하게 되었을때 다른 사람도 나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알고 싶지 않지만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천사들의 도시>도 우울하고 안타깝고 어렵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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