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마찬가지예요. 죽어도상관없어요. 실은 죽었으면 좋겠어요. 오래 걸리지만 않는다면."그가 올리브를 향해 숱이 없는 머리를 돌리고 그 파란 눈으로 피로한 듯 올리브를 들여다보았다. "난 혼자 죽고 싶지 않아요.""망할. 우린 늘 혼자예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지. 혼자 죽은들 뭐가 다르담?
매일 아침 강변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다시 봄이 왔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봄이, 조그만 새순을 싹틔우면서. 그리고 해를거듭할수록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봄이 오면 기쁘다는점이었다. 물리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에 언젠가는 면역이 생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사실이 그랬다. 떠오르는 태양에 강물이 너무 반짝여서 올리브는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그의 공식에서 예측되는 공허 속에서 우주의 기본 매개변수들은 성질이 뒤바뀌었다. 공간은 시간처럼 흘렀고 시간은공간처럼 늘어났다. 이 왜곡은 인과 법칙을 바꿨다.
기현상은 특이점의 내부에 국한되지 않았다. 특이점 주변에는 한계가 존재했는데, 이 장벽은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의미했다. 이 선을 넘으면 행성 전체로부터 작디작은 아원자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가 영영 사로잡힐 것이다. 마치바닥 없는 구덩이에 떨어진 것처럼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수십 년 뒤 이 한계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명명되었다.
빛은 특이점에서 결코 탈출할 수 없으므로우리의 눈은 특이점을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 또한 특이점을 이해할 수 없다. 특이점에서는 일반상대성 법칙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지원이 소진되면 충분히 무거워진 항성은 붕괴할 것이다. 분열이나 회전, 복사 때문에 질량이 감소하지 않는다면 이 수축은 무한히 계속될 것이다.그러면 슈바르츠실트가 예언한대로 공간을 종잇장처럼 구기고 시간을 촛불처럼 끌 수 있는 블랙홀이 형성되며, 이것은 어떤 자연법칙이나 물리적 힘으로도막을 수 없다.
그 자신과 세상 사이에놓여 있던 막이 찢겨나간 것만 같고, 모든 것이 가깝고 무섭게느껴졌다. 베시 데이비스는 언제나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얼굴에 외로움이 상처처럼 배어 있었다. ‘난 아냐, 난 아냐’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예쁘장한 니나 화이트가 마리나의 카페 밖에서 티모시 버넘의 무릎에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생각했다. 넌 아냐, 넌 아냐, 넌 아냐.
자신의활약으로 탄생한 살충제를 가지고서 나치가 몇 년 뒤 자신의 이복 여동생, 매부, 조카들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을 살해할 것임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가스실에 웅크린 채 근육이 경련하고 피부가 빨간색과 초록색 반점으로 덮이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입에서 거품을 토하며 죽었다. 몇 분 몇초라도 더 숨쉬려고 젊은이들은 아이들과 늙은이들을 짓밟으며 알몸의 무더기를 기어올랐다.
여전히 가스 냄새가 감돌았다. 남은 덤불 몇 그루에도 냄새가 걸려 있었다. 프랑스 전선에 당도하자 참호는 비어 있었지만 800미터 앞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믿을 수없었다. 영국인도 몇 명 보였다. 병사들이 숨을 쉬려고 얼굴과 목을 손톱으로 할퀸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총을쏜 사람들도 있었다. 아직 마구간에 있던 말, 소, 닭, 모든 것이 모조리 죽어 있었다. 모든 것, 심지어 곤충까지도 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