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2 - L Novel
타카기 코이치 지음, 니와 그림,이진주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전역 준비로 책을 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꽤 오랜만의 감상이 되었다. 사실 책 자체도 읽은지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정작 감상을 지금까지 적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사회에 나가면 해야할 일도 많고, 관심이 가야할 일도 많으니 독서는 오히려 군대 안에서보다 뜸하게 될 것 같다.


 나는 이전 1권을 '과장되고 작위적이며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속도감 있는 이야기에서 전해져오는 재미는 확실한 작품'이라고 평했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 작품이 '미숙한 작품'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재미와 감동을 겸비한 '숨은 진주'로 남을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었는데, 낮아진 평점에서도 짐작하듯이 나는 이어지는 2권이 다소 실망스러웠다.


 2권에서는 주인공인 아카이가 친하지는 않지만, 결코 모르는 사이는 아닌 후배가 에이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얼떨결에 에이라를 소개시켜준다는 약속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카이를 좋아하는 에이라는 이 일에 깊은 상처를 받게 되고, 후배에게 에이라를 소개시켜줘야 하는 아카이는 사이에 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갑갑하다. 사람이 좋은 것을 넘어서, 자신을 좋아해주는 여자아이, 자신이 신경쓰고 있는 여자아이를 상처입힐 것을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거북했다. "굳이 이야기를 이렇게 복잡하게 끌고나갈 필요가 있었나?"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약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는 이야기는 싫지 않다'고 하는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에 스토리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인간관계와 갈등, 그리고 고민이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다소 왁자지껄한 라이트노벨임에도 느껴지는 리얼함에는 조금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위적'이라는 감점 요인은 어떤 말로도 커버할 수 없었다. 시종일관 이야기가 억지로 끌려나가는 듯한 미숙함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건의 시작부터도 억지스럽다. "길거리에서 본 취향의 여자아이에게 반해버렸다."는 후배의 말에 '설마 에이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란... 저 문장의 어디에서 에이라가 연상된다는 말인가? 이러한 작위적인 분위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사건의 마무리까지 이어진다.


 '인간관계'에서 시작된 갈등과 고민이기에, 나는 이 사건의 마무리 역시 '인간관계'로 마무리 될 줄 알았다. 그것이 상식적인 스토리 라인이었을 것이다. 스포일러이기에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아카이와 후배, 아카이와 에이라 사이의 갈등에서 일어난 사건이 불량배로 인해서 마무리 되었을 때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세 사람 사이에 일어난 갈등이 뜬금없이 불량배로 인해서 마무리 될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불량배는 좀 아니지. 무슨 7~80년대 드라마도 아니고 카페에 불량배가 쳐들어오고 그걸 각성한 고등학생이 주먹으로 패서 물리치는 게 말이나 되나.


 타카기 코이치(高木幸一) 작가에게는 무엇이든지 과장하고, 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갈려고 하는 단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완결난 책이기에 이야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만약 작가가 이 책을 쓸 당시라면 나는 충고해주고 싶다. "굳이 억지로 복잡한 이야기를 끌고 나갈 필요는 없어." 스토리텔링 재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단순하고 담백하더라도 그 재미와 진정성은 독자에게 충분히 전달된다. 마치 파티를 하는 것처럼 억지로 과장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타카기 코이치 작가의 처녀작인 나는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俺はまだ恋に落ちていない)는 총 4권 완결이다. 그렇기에 가장 걱정되는 점은 이 시리즈가 어떻게 완결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권에서는 '사라진 아버지'라는 중요한 떡밥을 던져놓고선, 이번 2권에서는 해결될 조짐은 커녕 언급조차 없이 뜬금없는 사건이 진행되었다. 하렘물에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엔딩'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존재하는데, 에이미와 에이라 자매는 물론, 친구인 소라카와까지 주인공을 노리고 있는 이 작품 역시 비켜나갈 수 없다. 4권 완결 중 벌써 반이 지났다. 다가오는 9월에는 3권이 정발된다. 만약 이 시리즈의 마무리에서 이도 저도 아닌 결말이 나거나, 아버지에 대한 떡밥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실망할 것이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매드 픽션 클럽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모든 것은 '비'가 내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작품에는 두 결손 가정이 등장한다. 망나니 새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오빠 렌과 오빠의 자살을 두려워하는 가에데, 새 엄마에게서 미움을 받기 위한 행동만을 계속하는 형 다쓰야와 새 엄마를 싫어하지 않지만, 형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동생 게이스케. 서로 엇갈리며 진행되던 이야기는 렌이 일하는 주류점에서 두 가정이 만나게 되면서 하나의 사건을 향해 질주하듯 진행된다. 새 아버지의 죽음과 은폐, 목격자와 협박, 스릴있는 이야기에 이은 충격적인 반전이 소름 돋는 재미를 안겨준다.


 또 비다. 7개월 보름 전, 비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또 다시 비로 인해 자기들의 인생이 어긋나버렸다. 비만 안왔으면 가에데는 친구 집에 갔을 것이다. 비만 안 왔으면 무쓰오에게 몹쓸 짓도 당하지 않았을 테고 죽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충격적인 결말 이후 몇몇 부분에서 느껴지는 단점 때문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새 아버지인 무쓰오 살인 사건에 대한 묘사와 사체 유기와 은폐를 하는 과정은 디테일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끈적끈적했지만, 그 치밀한 과정과 다르게 아쉬웠던 것은 그 살인 사건에 대한 '진범'이 너무나 뜬금없었다는 것이다. 진범과 관련된 단서와 복선이 작중에 계속해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독자가 추리하기에는 너무 정보가 부족하여 후반의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반칙'이라고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작품은 반전을 위해 억지로 짜여진 듯한 이야기의 '작위성'이 가장 큰 단점이다. 결손 가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지만, 그 메시지가 결손 가정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과 다르지 않아 진부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치오 슈스케(道尾秀介)의 글은 항상 '읽는 재미'만큼은 확실하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에는 감탄했다. 이야기의 구성은 탄탄하고, 스릴있으며,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다가 놀라운 반전으로 뒤통수를 때리는 치밀함은 영리하다. 하나의 범죄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디테일은 훌륭하다. 디테일한 묘사와 스크린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마치 영화와도 같다. 그러나 작위적인 부분에서 미숙함이 느껴져 평점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쉽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은의 구세기 1 - S Novel
아마노 토케이 지음, 곽형준 옮김 / ㈜소미미디어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적으로 녹일 수 없는 이상한 눈. '아우터 스노'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눈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그 아우터 스노를 식량으로 삼는 미확인 생물체 XENO(제노)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인류는 남아 있던 마지막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XENO와 마찬가지로 아우터 스노를 식량으로 섭취하여 활동하는 '제노이드'라는 생명체로의 인공적인 진화를 이루어내고 XENO에게 대항하기 위한 거대 병기. 제노트랜서를 개발함으로서 그들에게 맞서 싸운다. 그러나 인류는 제노이드로 인공적인 진화를 이뤄낸 대신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바로 '감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알츠는 스푼을 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째서 눈을 먹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그 위화감은 기계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 집단 내부의 명백한 오류였다.

 예를 든다면 순백의 세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 노이즈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명확한 이상ㅡ 고독.


 그러나 주인공인 알츠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인류의 눈덩이 낭네서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그 감정 때문인지 병기인 제노트랜서 뿐 아니라 뇌파의 정밀도로 조종하는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조종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인 조트 사령관은 선별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선별 시험이란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불합격 처리 된 자는 도시 방어에 불필요한 인간으로 취급되어 '폐기 처분' 당한다. 열등한 자신에게 언젠가 닥쳐올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감정이 없는 냉혹한 아버지에게 '이번엔 날 버릴 셈인가. 아버지!'라며 증오심을 내비친다. 도시의 방어를 위한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린 자신의 앞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였기에...


 "죽는 건...... 무섭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 알츠에게 '죽음'의 상징은 10년 전 어머니를 덮친 불행한 사건이며, 그런 어머니를 아무런 주저도 없이 내버린 아버지의 냉철함이기도 했다.

 아마 도시에서 생활하는 다른 누구도 알츠의 공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그들은 모두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부품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준기사인 자신의 여동생이 감독하는 선별 시험에서 그는 XENO에게 당하여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구인류'인 나유키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갈구하던 '감정'을 마주보게 된다.


 "......그것도, 안다. 잘못된 건 내 쪽이란느 걸."

 감정은 XENO와의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본래라면 가슴을 불사르는 격정은 존재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물질게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도저히 안 돼. 나는, 나를...... 이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


 제8회 MF문고J 라이트노벨 신인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아마노 토케이(天埜冬景)의 데뷔작. 백은의 구세기(白銀の救世機)는 신규 라이트노벨 레이블인 S Novel의 창간 라인업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지에서 느껴지는 IS의 느낌과 헐벗은 히로인의 모습에서 창간작들 중 가장 재미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직접 읽어보니 초반부의 몰입도가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후의 내용이 아쉬웠지만, 적어도 S노벨의 다른 창간작들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역시 무엇이든지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겨울 세계'의 세계관이었다. 마치 빙하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우터 스노'. 그리고 그것을 식량으로 삼는 인류의 적. XENO의 등장. 그들에게 객체에 따라 트라케라, 브라키오, 티라노 등. 공룡에 빗대어 공포와 절망을 담아 객체 식별명을 붙인 것 역시 상징적이다. 설정은 단순히 여기서 멈추지 않고, XENO에 대항하기 위해 인공적인 진화를 이뤄내어 제노트랜서라는 거대 병기를 다루게 된 대신 '감정'이라는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제노이드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다. '그것은 즉 세계의 정점에 선 영장류가 가진 최후의 긍지이자 의지이며ㅡ 새로운 생명체 XENO에게 패배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은 인류의 진화를 놀랍도록 냉혹하게 표현한다. '눈'이 내리는 세계 속에서 '눈'을 먹고 사는 적과 인공인류. '눈'이라는 소재는 이 작품에서 그만큼 '차갑게' 다뤄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주인공은 그 수많은 제노이드 중에서도 감정을 일부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열등 인자였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불합격 하면 폐기 처분 될지도 모르는 '선별 시험'을 치르게 된다. 심지어 시험의 감독관은 여동생이다. 인공 수정으로 인류가 태어나는 이 세계에서는 '가족'이라는 형태가 없다. 심지어 '가족애'라는 감정도 없다. '백은의 구세기'는 냉혹한 세계에서 다소나마 감정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히로인을 만나 무언가를 깨닫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대 로봇물 안에 SF소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감정'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점이 재미있다.


 그러나 흥미롭던 초반부의 설정과 다르게 역시 기존의 라이트노벨이라는 틀을 벗어 던지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무엇보다 작위적인 느낌이 이야기 전체에 깔려있었다는 것. 구덩이에 빠지고 구인류를 만나기 전부터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피를 보고 '과거 구인류가 서로 싸우던 곳인가?'라고 생각하며 평소 인지하고 있지도 않던 구인류의 존재 가능성을 예견한다던지, 이상한 기동음을 듣고 '구인류 유적지가 다시 기동한거야?'라고 생각한다던지. 이미 멸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구인류를 만나기도 전에 구인류에 대한 인식이 어찌나 각별한지 놀라울 지경이다. 누가 보면 모두들 구인류 연구가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개연성을 무시한 부분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것에 더해 구인류인 나유키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초반의 무게와 진지함, 그리고 탄탄한 구성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분위기가 일변하여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이나 러브 코미디 소설 정도의 유치한 분위기를 풍긴다. 히로인들과의 에피소드나 기합으로 승리하는 로봇물 특유의 전투에서 드러나는 유치함,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숙함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속도감이 빠르고 탄탄한 설정으로 일궈내는 초반의 몰입도는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에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었으나, 그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을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와 탄탄하지 못한 구성, 그리고 다소 유치하고 미숙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흐려버리는 것이 아쉽다. 상징적으로 보여졌던 '눈'의 설정과 '감정'의 부재를 소재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으나 생각보다 임팩트가 약했다. 그래도 소미 미디어의 창간 라인업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재미있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처참한 필력을 보여줬었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ダンジョンに出会いを求めるのは間違っているだろうか)에 비하면 훨씬 기본이 잘 되어있는 평작이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트워치 1~3 세트 (초회한정)
카도노 코헤이 지음, 구자용 옮김, serori 그림 / ㈜소미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카도노 코헤이(上遠野浩平)는 <부기팝 시리즈>로 라이트노벨의 시대를 연 작가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사건 시리즈>로 여러번 다루었었는데, 지금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10년 전과는 다르게 최근에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보니 그의 대단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꼭 언급하게 되는 것이 그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다. 사토 유야, 니시오 이신, 나스 기노코, 이루마 히토마 등이다. 라이트노벨은 물론 순문학과 신본격 소설을 넘나들며 이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엔터테인먼트 작가들인데, 아마 이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은 금새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떤 스타일인지 대충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언급한 작가들처럼 과격하지는 않더라도 카도노 코헤이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중2병 전기물의 시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작품이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이번에 새로 복각된 나이트워치 삼부작(ナイトウォッチ三部作) 역시 라이트노벨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반 SF 소설에 가깝다고 해도 괜찮을 소설이다. 최근이라면 '미디어 웍스 문고'라던지 '하야카와 JA'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을 법하다.


 <나이트워치 삼부작>이라는 시리즈 제목은 작품이 완결난 뒤에나 붙은 명칭으로 실제로는 <우리는 허공에서 밤을 본다(ぼくらは虚空に夜を視る)>, <우리는 허몽을 달에게 듣는다(わたしは虚夢を月に聴く)>, <우리는 허인과 별에서 춤춘다(あなたは虚人と星に舞う)>. 이 세 작품을 말한다. <철가면을 둘러싼 논란(鉄仮面をめぐる論議)>이라는 외전이 잡지에서 연재되기도 했으나 국내에는 출판되지 않아 아쉽다.


 나이트워치 삼부작은 도쿠마 듀얼 문고(徳間デュアル文庫)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간행되었으며 국내에서는 대원씨아이의 라이트노벨 레이블인 NT Novel에서 2003년에 정발된 초창기 작품이다. 지금에서 보자면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재출간된 나이트워치 삼부작은 세카이샤 문고(星海社文庫)에서 복각한 책이다. 일러스트를 새로 그린데다 본문 역시 올컬러로 되어있는 호화판이다. 나카자와 카즈토(中澤一登)가 그렸었던 오래된 구판 일러스트가 Serori가 새로 그린 일러스트로 교체되었다.


 그런 나이트워치 삼부작의 복각판을 이번 8월에 소미 미디어의 라이트노벨 브랜드인 S노벨에서 정식 발매했다. 옮긴이 역시 김지현 역자님에서 구자용 역자님으로 바뀌어 새롭게 번역되었다. 고급스러운 초회 한정 책갈피가 들어있다. 내부 일러스트가 올컬러인지라 제작 비용이 비싼만큼 원래는 일반 소설 판형으로 출판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수익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 소미 미디어는 라이트노벨 판형으로 출판하는 것을 결정했다. 요즘 출판사답지 않은 그들의 성의있는 태도는 놀랍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반 소설 판형이 더욱 소장용으로 어울렸을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1. 우리는 허공에서 밤을 본다(ぼくらは虚空に夜を視る) ~ The Night Watch into The Night Yawn


 평범한 고교생이었던 쿠도 효고는 어느 날 수수께끼의 소녀, 카게세 미사코에게 '진실'을 듣게 된다. 지금 있는 세계는 인류의 적인 '허공아'에게 맞서기 위한 초광속 기동 전투기 '나이트워치'를 조종하는 코어의 정신이 절대진공의 초절 허공에서 발광하지 않기 위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과 효고 자신이 나이트워치인 '마바로하 레이'의 정신을 안정시키기 위한 또 다른 인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마바로하 레이의 코어는 지금 허공아에게 공격당하여 사라져버렸고 '마바로하 레이'를 제어하기 위하여 쿠도 효고는 진공 속으로 내던져진다.


 당신의 로켓은 나를 별로 인도했지만,

 하늘까지 고작 반 마일 남은 곳에서,

 나는 거꾸로 추락하고 말았지.

 차가운ㅡ너무나도 차갑게 얼어붙은 세계로

                                      ㅡ 스티비 원더 <로켓 러브>


 우주에 존재하는 나이트워치로 의식이 옮겨 간 쿠도 효고는 허공아에 맞서 SF소설다운 액션을 펼친다. 하지만 역시나 카도노 코헤이의 작품이라고 할까. 단순한 SF액션에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허공 속에서 인간이 발광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인간은 우주로의 진출을 원했지만 우주에는 '허공아'라는 정체불명의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은 그에 대항하기 위하여 초광속 기동을 할 수 있는 전투 병기 '나이트워치'를 만들었지만, 나이트워치를 조종하는 코어는 허공아와 전투를 펼치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 속에서 미쳐버릴 수밖에 없다. 물론 초광속 기동을 해제하고 바깥을 시작으로 확인하면 별들의 빛이 보일 테지만 그것은 수천수만 년 전 과거의 빛에 불과하다.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인간을 공격해오는 적만이 존재한다. 쿠도 효고가 원래 살아가던 지구. 즉 과학이 발전하기 전의 구세기의 환영은 나이트워치가 발광하지 않고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안전장치'인 것이다.


 "꿈이라고 해도 많은 종류가 있잖아? 그래, '악몽'도 꿈은 꿈이니까."


 재미있는 것은 '허상'이자 '꿈'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한 것은 그 가상 세계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는 것이다. 거짓된 세계에서 사고를 당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냉동 수정체도 죽음에 이르고, 질병에 걸리면 현실의 몸도 똑같은 질병으로 죽는다.


 "저기 욘ㅡ 어째서 나이트워치에 인간 코어가 필요한거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욘은 의외의 질문에 눈을 깜박거렸다.

 "......무슨 소리야?"

 하지만 효고는 그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반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다.

 욘이나 세계를 만들었다는 자이로 사이브레이터보다도 어마어마한 지성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기계들보다도 그런 의미에서는 아직 주관 시간으로 10대 중반의 애송이에 불과한 효고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ㅡ. '인간'을.

 어째서 인간이 싸워야 하는가?

 그것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가 배신하고 자신들에게 반기를 들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도저히 떨쳐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이런 '아이러니함'은 단순히 '죽음' 하나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 전체에 퍼져있다. 엄청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인 전투기를 개발하지 않고 허공에 조종사가 미쳐버리는 부담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낸다. 어떤 이는 '발광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인 '꿈'의 세계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이럴 바에는 차라리 허공에서 강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나이트워치의 코어와 인격을 뒤바꾸기도 한다. 강대한 적인 줄 알았던 '허공아'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강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항상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효고는 그들이 자신들을 봐주고 있다는 모순적인 느낌을 받는다.


 효고는 조금 전까지 '허공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포함하는 인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효고가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중에도 '적'은 계속해서 침략해온다. 허공아는 물론 가상 세계를 파괴하려는 내부의 적까지 들이닥친다.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던 효고가 이 아이러니함 속에서 깨다는 것은 무엇일까?


 액션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재 유행하는 트랜드를 집대성한 것 같은 내용과 등장 인물이었다. 무려 13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현재 유행하는 라이트노벨이나 SF소설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무엇보다 세련되었다. 주인공 효고는 지금 유행하는 주인공들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과연 라이트노벨의 시대를 연 작가의 기량이 놀라울 뿐이다.


 2. 우리는 허몽을 달에게 듣는다(わたしは虚夢を月に聴く) ~ The Night Watch under The Cold Moon


 심퍼사이저를 통해 인류가 절대 진공의 우주로 진출하기 이전의 이야기. 즉 1권보다 전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시대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화가' 묘가야 이쿠야를 등장시킨 것에서 작가의 센스를 살펴볼 수 있다). 인류는 허공아의 습격으로 이전 시대의 기술력을 잃어버리고 달 위에 존재하는 원면기지에서 일곱 세력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에게 죽는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싸우고 있는지. 싸우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 월면기지 지하에는 오래 전 인류 보존 계획에 의해 냉동 인간들이 사이브레이터에 의한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사상 세계에서 허공아와의 공존을 꾀했던 죽은 영웅이 심퍼사이저에 의해 되살아나고, 월면을 뛰어다니는 토끼 모양의 탐사 로봇이 지하에 묻혀있는 사이브레이터와 냉동 인간들을 발견한다.


 2권인 월면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나이트워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이자 작품 전체의 주제를 가장 확연히 드러내는 권이었다. 2권에는 정체불명의 소녀가 등장한다. 세계를 부정하였기에 없어져버렸지만, 과거의 세계가 가상으로 복원되면서 다시 태어난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소녀. 그녀는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덧없음을 느끼는 가상 세계의 인물과, 코사 무그 군의 인공지능 무인기, 그리고 토끼 모양의 탐사 로봇 앞에 등장하여 무언가를 전하려고 애쓴다.


 "모든 것이 거짓말뿐이라고 해도 세계에는 확실한 것이 하나 있어. 그것만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진실'이며 거짓말로도 꿈으로도 때울 수 없는거야. 그래ㅡ슬픔을 느끼는 당신의 마음. 그것만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당신들은 '자신들은 기계니까'라면서 묘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기계든지 뭐든지 당신들에게는 마음이 있어,"


 '가상임에도 마음만은 진실하다'. 이것이 아마 이 나이트워치 삼부작 전체를 꿰뚫는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최근 읽은 여러 가상현실 SF소설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던 주제이자 핵심인데, 정작 10년 전의 라이트노벨에서 닳도록 나오고 있었다니 대단하다.


 "아아.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그런 일을 해도 무의미하지 않나? 이미 월면은 전란의 폭풍 속이고, 아무도 느긋하게 피크닉 같은 걸 할 리 없다. 그런 지도를 만들어도 소용없다. 뭐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하지만 진짜 그럴까?"


 2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등장인물은 인간이 아니라 의외로 토끼 모습으로 달을 탐색하고 다니는 매핑 무버인 '시마스'였다. 그는 인간이 허공아를 만나기 전, 희망이 넘치던 시대의 엄청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자립형 탐사 로봇으로 월면이 전란으로 뒤뎦여도 그는 달을 탐사하고 그것으로 '책'을 만들라는 목적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길을 잃은 군인을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지도를 만들어서 길을 찾아주는 유쾌함까지 갖추었다.


 "뭐, 그건 그거고요. 이러다 정지되어버린다고 하면 나의 인생은 거기까지라는 거잖아요? 인간도 로봇도 다르지 않아요."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단순히 '목적'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서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한다는 것이다. 이번 편에 등장하는 많은 '가상'과 '기계'는 고민해왔다. 자기 자신조차도 거짓된 이 세상의 덧없음을 느끼고,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등장하는 탐사 로봇 시마스는 다르다. 그는 자신에게 '마음'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향해 올곧게 나아간다. 이 두 형태의 '가짜'는 대도적지면서도 또한 상징적이다.


 그렇다. 시마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소녀를 구해낸다 해도 살아남은 것이 한 사람뿐이어서는 이미 인류의 보전이라는 목적은 이룰 수 없다. 이미 <계획> 자체가 실패해 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녀를 구해내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시마스에게는 시마스의 임무가 있다. 이런 일은 그가 만들어진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하지만 시마스로서는 그가 언젠가 써낼 '책'에 이 일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상상했을 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결론 이외에는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시마스의 마음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할 정도의 이유가 되었다.


 토끼 주제에, 그것도 로봇 토끼 주제에 환장할 정도로 멋있다. 이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올곧게 간직하고 있는 등장인물이 있을까. 그는 자신의 목적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에너지를 사용하여 사람을 구하려고 한다. 그것이 시마스의 '마음'이다. 기계이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마음'이 존재했다.


 '달'을 배경으로 그것을 탐사하는 토끼라는 소재는 카도노 코헤이의 로망을 비추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로 로맨틱하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다 이야기 그 자체보다는 인류가 심퍼사이저를 어떻게 얻어서 우주를 향해 진출하는지. 그 세계관을 다룬 편이기에 가장 재미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실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3. 우리는 허인과 별에서 춤춘다(あなたは虚人と星に舞う) ~ The Night Watch against The Star-Crossed Star


 나이트워치가 막 만들어진 시대. 2권보다도 반세기 전. 인류의 '천적'과 싸울 힘을 가진 '허인'이자 나이트워치 시작 14호 부르톰제스트의 코어. 태양계 외부 공역에 오직 홀로 생존한 '쿄'와 부르톰제스트에게 '허공아에게 오염되었다'는 판단 아래 아군이었어야 할 인류 연합군이 습격해온다. 그리고 그들의 습격에 맞서서 허공에서 그녀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부르톰제스트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딱 하나 확실한 게 있어. 우리는, 우리가 어중간하다는 사실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아ㅡ. 지긋지긋해. 그러니까ㅡ. 어중간한 게 싫다면 발버둥 쳐서라도 우리는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거야ㅡ."


 이미 눈치 챘겠지만. 나이트워치 삼부작에는 모두 '가상 세계'가 등장한다. 1권의 효고 이야기에서는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과 그곳의 모순을 인지하고 외부와 내부의 '적'과 싸우며 이도저도 아닌 도중. 인간의 '어중간함'을 말한다. 2권의 시마스 이야기에서는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인공 지능과 현실에 존재하는 기계. 즉 '가상'이자 '인공'의 모습을 통하여 세계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마음만은 진실된 것이라고 말한다. 3권에서는 단시 한 사람만을 위해 창조된 '가상 세계'가 등장한다. 나이트워치의 코어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가상 세계. 그곳의 가상 인물들. 그러나 모순적인 것은 그 나이트워치의 코어인 쿄는 그 가상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을 공격해오는 적들과 싸운다는 점이다.


 이 세 작품의 공통된 주제는 가상 세계이지만, 그곳을 결코 '가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권에서 효고는 나이트워치의 코어를 조종하게 되며 현실로 나아가지만, 다시 가상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허공'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이자 인공 지능인 '소녀'의 마음을 진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2권의 이야기는 좀 더 노골적이다. 주제를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번 3권 역시 그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장치일 뿐인 가아세계이지만, 쿄는 그곳을 지키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운다.


 그리고 이번 권에서는 1권에서 등장했었던 효고가 다시 등장한다. 한참 과거의 시간대이지만 쿄와 효고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에서 1권의 '어중간함'은 완결된다. 인간은 도중이고, 어중간하지만, 그렇기에 행동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치 열혈물처럼도 느껴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사건 시리즈'도 그랬지만, 카도노 코헤이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이야기 그 자체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세계관'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특히나 나이트워치 삼부작은 사건 시리즈와 다르게 편마다 세계관만 같을 뿐 시대도, 이야기도, 주인공도 다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크다. 더구나 나이트워치 삼부작이 모두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이런 애매모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면서도 또한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 결말을 상상하는 재미를 얻을 수 있지만, 하나로 이어지지 않는(아니, 정확히는 세계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미완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있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다가오는 것도 많았던 작품이지만, 너무 방대한 세계관을 짧은 볼륨에 담아내다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 세계관을 장편으로 차분히 그려나간다면 더욱 재미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애매모호함과 허약한 문장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점이 카도노 코헤이 작품의 매력인건 분명하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명 전해주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이 작품은 충분히 '재미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었고 재미있는 SF소설임에 분명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읽는다면, 충분히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이 되리라.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실망스러웠다. 총 173페이지.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뺀다면 이야기는 149페이지. 150페이지조차 넘지 않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몰입도는 상당하다. 짧은 글이기에 활자들은 더욱 폭풍처럼 몰아친다. 아버지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꾸준히 살인을 해오다가 25년 전에 은퇴한 70세의 연쇄살인범 김병수에게 알츠하이머가 찾아오고 그의 딸인 은희의 주위에 그녀를 노리는 연쇄살임범 박주태가 등장한다. 김병수는 과연 알츠하이머를 이겨내고 딸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 이야기가 스릴 있게 펼쳐진다.


 난 시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내 살인의 과정을 정직하게 썼다. 첫 시의 제목이 '칼과 뼈'였던가? 강사는 내 시어가 참신하다고 했다. 날것의 언어와 죽음의 상상력으로 생의 무상함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거듭하여 내 '메타포'를 고평했다.

 "메타포라는 게 뭐요?"

 강사는 씩 웃더니ㅡ그 웃음, 마음에 안 들었다ㅡ메타포에 대해 설명했다. 듣고 보니 메타포는 비유였다.



 아하.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비유가 아니었네. 이 사람아.


 간결하고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가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철학적인 연쇄살인범의 일기는 인상적이다. 또한 날카로운 유머까지 담겨있다. 그러나 흥미롭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급정지 해버린다. 연쇄살인범의 회복기이자, 알츠하이머를 통한 인생의 회고이자, 딸아이를 지켜내는 스릴러인줄 알았던 소설은 충격적인 반전과 그에 이은 허무한 결말을 남기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엇에 진 걸까. 그걸 모르겠다. 졌다는 느낌만 있다.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살인자의 기억법에 눈에 띄는 단점이 있다면 이 소설이 '너무' 잘 읽힌다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결말이 허무하게 느껴졌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문장들을 모두 인지하며 읽었음에도 나에게 이 소설은 너무나 '허무'했다.


 '빛의 제국'을 쓸 당시에 김영하 작가는 말했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소설을 주로 파헤치는 나로서는 의견이 다르다. 권희철 문학평론가는 '너무' 잘 읽히는 것이 단점이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잘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일단 독자에게 재미를 안겨줘야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잡문이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는 철학이 아니라, 가독성을 통하여 독자들을 작품의 스크린 앞에 데려와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작품이 널리 읽히길 바라는 작가라면 응당 '어떻게 하면 잘 읽힐지',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재미있을지'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그려내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독자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바로 그때에 전해지는 것이다.


 혼자 고고하게 존재하고 싶은 어려운 문학성이라면 아무래도 괜찮다. 그러나 '이해받기를 원하는 문학성'이라는 고고한 산 위에 머물며 누군가가 산을 올라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 스스로 내려와 산 아래의 대중들과 마주보고 널리 읽혀야 한다. 가독성과 문학성.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문학성이 이해받기 위해서는 그보다 가독성이 먼저이다. 가독성이 이야기의 구성이라면, 문학성은 그 구성 속에 담긴 메시지이다. 그런 면에서 작품에 빠져들게 만들었었던 첫 인상과 다르게 나는 이 작품이 아무래도 아쉽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지만, 온전한 이야기로서 마무리 지어진 것 같지 않다. 말하자면 마지막까지 탄탄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구성이 실망스러웠다.


 처음 접하는 김영하 작가의 글에는 여러모로 놀랐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의 심리와 반전을 통하여 독자에게 공포를 끼얹었다. 스릴러나 미스터리 소설 같은 구성 속에 철학과 삶을 담아내었다. 문장은 거칠면서도 유머러스하여 악질적인 농담 같은 문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속에 담긴 오디세우스, 톨스토이의 일화를 생각나게 만드는 일종의 패러디 역시 김영하 작가의 센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좋았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타인의 피를 이해하지 못한 책 읽는 게으름뱅이다. 그러나 책 읽는 게으름뱅이가 없다면, 책을 쓰는 초인도 없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