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구세기 1 - S Novel
아마노 토케이 지음, 곽형준 옮김 / ㈜소미미디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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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리적으로 녹일 수 없는 이상한 눈. '아우터 스노'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눈으로 뒤덮인다. 그리고 그 아우터 스노를 식량으로 삼는 미확인 생물체 XENO(제노)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인류는 남아 있던 마지막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XENO와 마찬가지로 아우터 스노를 식량으로 섭취하여 활동하는 '제노이드'라는 생명체로의 인공적인 진화를 이루어내고 XENO에게 대항하기 위한 거대 병기. 제노트랜서를 개발함으로서 그들에게 맞서 싸운다. 그러나 인류는 제노이드로 인공적인 진화를 이뤄낸 대신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바로 '감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알츠는 스푼을 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째서 눈을 먹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떠오른 그 위화감은 기계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 집단 내부의 명백한 오류였다.

 예를 든다면 순백의 세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 노이즈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명확한 이상ㅡ 고독.


 그러나 주인공인 알츠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인류의 눈덩이 낭네서 감정의 동요를 보인다. 그 감정 때문인지 병기인 제노트랜서 뿐 아니라 뇌파의 정밀도로 조종하는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조종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인 조트 사령관은 선별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선별 시험이란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이다. 불합격 처리 된 자는 도시 방어에 불필요한 인간으로 취급되어 '폐기 처분' 당한다. 열등한 자신에게 언젠가 닥쳐올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감정이 없는 냉혹한 아버지에게 '이번엔 날 버릴 셈인가. 아버지!'라며 증오심을 내비친다. 도시의 방어를 위한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린 자신의 앞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였기에...


 "죽는 건...... 무섭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 알츠에게 '죽음'의 상징은 10년 전 어머니를 덮친 불행한 사건이며, 그런 어머니를 아무런 주저도 없이 내버린 아버지의 냉철함이기도 했다.

 아마 도시에서 생활하는 다른 누구도 알츠의 공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그들은 모두 인류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부품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준기사인 자신의 여동생이 감독하는 선별 시험에서 그는 XENO에게 당하여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구인류'인 나유키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갈구하던 '감정'을 마주보게 된다.


 "......그것도, 안다. 잘못된 건 내 쪽이란느 걸."

 감정은 XENO와의 생존경쟁에서 승리를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본래라면 가슴을 불사르는 격정은 존재조차 허락되지 않는 이물질게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도저히 안 돼. 나는, 나를...... 이 감정을 제어할 수 없어......"


 제8회 MF문고J 라이트노벨 신인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아마노 토케이(天埜冬景)의 데뷔작. 백은의 구세기(白銀の救世機)는 신규 라이트노벨 레이블인 S Novel의 창간 라인업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표지에서 느껴지는 IS의 느낌과 헐벗은 히로인의 모습에서 창간작들 중 가장 재미없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의외로 직접 읽어보니 초반부의 몰입도가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후의 내용이 아쉬웠지만, 적어도 S노벨의 다른 창간작들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역시 무엇이든지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겨울 세계'의 세계관이었다. 마치 빙하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우터 스노'. 그리고 그것을 식량으로 삼는 인류의 적. XENO의 등장. 그들에게 객체에 따라 트라케라, 브라키오, 티라노 등. 공룡에 빗대어 공포와 절망을 담아 객체 식별명을 붙인 것 역시 상징적이다. 설정은 단순히 여기서 멈추지 않고, XENO에 대항하기 위해 인공적인 진화를 이뤄내어 제노트랜서라는 거대 병기를 다루게 된 대신 '감정'이라는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제노이드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다. '그것은 즉 세계의 정점에 선 영장류가 가진 최후의 긍지이자 의지이며ㅡ 새로운 생명체 XENO에게 패배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라는 구절은 인류의 진화를 놀랍도록 냉혹하게 표현한다. '눈'이 내리는 세계 속에서 '눈'을 먹고 사는 적과 인공인류. '눈'이라는 소재는 이 작품에서 그만큼 '차갑게' 다뤄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주인공은 그 수많은 제노이드 중에서도 감정을 일부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열등 인자였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불합격 하면 폐기 처분 될지도 모르는 '선별 시험'을 치르게 된다. 심지어 시험의 감독관은 여동생이다. 인공 수정으로 인류가 태어나는 이 세계에서는 '가족'이라는 형태가 없다. 심지어 '가족애'라는 감정도 없다. '백은의 구세기'는 냉혹한 세계에서 다소나마 감정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히로인을 만나 무언가를 깨닫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거대 로봇물 안에 SF소설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다뤄지는 '감정'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점이 재미있다.


 그러나 흥미롭던 초반부의 설정과 다르게 역시 기존의 라이트노벨이라는 틀을 벗어 던지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무엇보다 작위적인 느낌이 이야기 전체에 깔려있었다는 것. 구덩이에 빠지고 구인류를 만나기 전부터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피를 보고 '과거 구인류가 서로 싸우던 곳인가?'라고 생각하며 평소 인지하고 있지도 않던 구인류의 존재 가능성을 예견한다던지, 이상한 기동음을 듣고 '구인류 유적지가 다시 기동한거야?'라고 생각한다던지. 이미 멸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구인류를 만나기도 전에 구인류에 대한 인식이 어찌나 각별한지 놀라울 지경이다. 누가 보면 모두들 구인류 연구가라도 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개연성을 무시한 부분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그것에 더해 구인류인 나유키를 만나고 난 이후부터 초반의 무게와 진지함, 그리고 탄탄한 구성은 어딘가로 가버리고 분위기가 일변하여 일반적인 라이트노벨이나 러브 코미디 소설 정도의 유치한 분위기를 풍긴다. 히로인들과의 에피소드나 기합으로 승리하는 로봇물 특유의 전투에서 드러나는 유치함,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미숙함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속도감이 빠르고 탄탄한 설정으로 일궈내는 초반의 몰입도는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에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작품이었으나, 그 매력적인 세계관과 설정을 개연성이 부족한 전개와 탄탄하지 못한 구성, 그리고 다소 유치하고 미숙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흐려버리는 것이 아쉽다. 상징적으로 보여졌던 '눈'의 설정과 '감정'의 부재를 소재로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으나 생각보다 임팩트가 약했다. 그래도 소미 미디어의 창간 라인업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재미있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처참한 필력을 보여줬었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ダンジョンに出会いを求めるのは間違っているだろうか)에 비하면 훨씬 기본이 잘 되어있는 평작이다.


출처 : http://tlqtown.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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