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Wrong with the World? : The Surprising, Hopeful Answer to the Question We Cannot Avoid (Paperback)
John Murray Press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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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설교 말씀에 ‘인간은 부름을 받은 존재이다’라고 하셨다. 능동적인 인간의 계획과 의지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수동태로써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 나는 어떤 이유로 어린 시절 집 앞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래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나 나는 ‘죄인’이란 말을 너무 싫어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반감이 일었고 왜 ‘사랑’이란 말 대신 ‘죄인’이란 말로 시작을 하는지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죄(sin)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뼛속까지 죄인인 나 자신의 민낯을 만나기가 너무 무섭고 싫어서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이 책에서 죄의 얼굴, 죄의 파괴력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신이 있는데 어떻게 세상에서 인종청소, 인종차별, 극악무도한 행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지 묻는다. 제대로 된 치료와 해결책을 위해서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과학, 심리학, 철학만으로는 인간의 죄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 죄책감, 용서를 그 학문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모든 문제의 기저에 인간의 죄가 있다. 인간의 죄는 곳곳에 심어 둔 지뢰밭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물리치지 않으면 인간은 죄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기 기만, 위선, 불신, 자기의, 나병환자, 노예 등등의 죄가 도처에서 나약한 인간을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바랐으나 요나는 분노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시리아는 멸망하는 것이 마땅한데 적의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니 하나님의 생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고 결국 불순종했다. 그런 요나를 아끼시어 더운 날씨에 박넝쿨을 내려 요나를 지켜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물으신다. ‘네가 하룻밤 피었다가 지는 박넝쿨을 아꼈거든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니느웨 120,000명의 사람과 가축을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공의를 부당하다고 판단할 자격이 없는 요나는 자기의의 죄를 범했다. ’Have you any right to be angry?‘ 라고 요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세상의 많은 문제에 대해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분노할 권리가 있는가? 이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는 자기의가 됨을 깨닫는다.

Naaman과 Elisha에 관한 나병환자의 죄(Sin as Leprosy)도 매우 인상 깊었다.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7번씩 씻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말에 분노했다 그의 교만이 지혜와 회복의 길을 가로막는 듯했으나 그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어 시킨 대로 하였더니 병이 나았다. 교만이 사랑과 지혜를 죽일 수 있는 무서운 죄임을 깊이 깨닫는다. 기독교의 배타적 진리를 주장할수록 겸손이 필수적임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교만을 내려놓고 치유를 경험한 나아만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전하기로 결심한다. 불쾌함, 교만, 우월감, 비겁함 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개종되었다. 오늘날 이 세상은 기독교인들의 입을 막을 수도 있고, 배척하거나, 핍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깨어 있어, 오히려 과감할 정도로 관대하고, 섬김의 노예가 되어 기쁨과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권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고 변화된 사람의 표시이다. 나 역시 영적 나병환자가 아니었던가? 일단 나아만이 되고 나면 노예가 되어야 한다. (Once we become a Naaman, we have to become a servant. p.151)

죄를 극복하는 치유의 방법으로 회개(repentance)를 설명함에 있어서 다윗의 예시는 매우 감동적이다. 회개는 나의 치부, 부끄러움, 잘못을 고백하는 부정적 개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시편 51(Psalm 51)은 다윗이 나단 선지자로부터 밧세바와의 간음에 대해 책망을 듣고 쓴 참회의 시이다. 작가가 추천하는 회개의 방식은 첫째 죄를 만나고, 고백하고, 슬퍼하고 죄를 미워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렵고 무서워서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떨어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인정함으로 자신을 비참한 상태에 놓는 회개이다. 만약에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지은 죄를 고백한다면 자신이 너무 싫고 비참해서 죽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깊이 숙고하고 그 사랑을 짓밟은 나를 생각하며 죄를 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준 예시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시편 51편이다. 결국 그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회복이 있을 것을 믿게 된다.

나도 다윗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충동이 샘솟는다. 그는 순종, 회개, 친밀감, 유용성의 삶(a life of obedience, repentance, intimacy, usefulness, p.213)을 살았다. 그동안 탕자로 살아왔던 나의 죄가 너무 크고 후회스러워서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 쓸모가 있을까 염려했었다. 너무 늦어서 기회조차 없는 것이 아닐까 회의감이 있었다. 작가는 내 삶에 나단 같은 사람이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나단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Do you have Nathans in your life? Are you a Nathan to anybody else? p.181) 아마도 나는 그동안 나단 같은 역할은 하지 못했으나, 주변에 나단 선지자가 많았지만, 나의 완고함과 교만함으로 듣지 못했던 것 같다. George Herbert의 아름다운 시, ‘Love Ⅲ’는 진홍같이 붉은 나의 죄에도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담고 있다. 즉,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너무 작아서 정죄를 받지 않아도 되는 죄도 없고, 아무리 큰 죄라도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정죄를 가져오는 죄는 없다’고 했다. 나의 크고 작은 죄가 얼마나 많고 무서우며 강력한지 또 언제 어떻게 나를 압도할지 잊고 살았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요나처럼 화를 낼 자격도 없으면서 함부로 분노의 죄를 범하지 않고, 최근 몇 년 전에 나아만이 된 나는 늘 깨어 있어 주변의 나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모범을 보인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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