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thers Karamazov (Paperback)
Dostoyevsky, Fyodor / Penguin Classics / 200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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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반드시 해야 할 숙제를 끝낸 희열이 있었다. 985 페이지의 고전을 시작할 때는 너무나 먼 길 같았고, 중간을 지날 때도 마지막 장은 까마득해 보였으나, 읽는 과정이 매우 행복했다. 마치 연애하는 들뜬 기분으로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서 무더위를 잊으며 읽었다. 산해진미를 사준다고 친구가 회유해도 독서를 핑계 삼아 거짓말을 하고 싶을 정도의 유혹이 있었다. 내게 독서의 즐거움이 없었다면 나의 삶은 너무나 단조롭고 무료했을 것이 분명하다. 분량이나 문학적 깊이 측면에서, 톨스토이의 ‘War and Peace’와 비슷한 면이 있으나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전쟁과 평화’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등장인물, 어려운 러시아 이름, 복잡하게 얽힌 스토리, 미묘한 심리 묘사, 만연체 문장이라 조금만 방심하면 내용을 놓칠까 염려하여 늘 긴장하면서 줄거리를 따라갔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만연체 문장은 대가들의 전유물인가 할 만큼 문장의 긴 호흡은 읽기 힘들었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한글판으로 읽기 시작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어서 결말을 알지 못하므로 끝까지 호기심과 긴장감을 가지고 읽었다. 법정 드라마나 영화를 매우 좋아하지만, 범죄 스릴러에 관한 고전은 많이 읽지 않은 터라 결말이 엄청 궁금했다. 과연 대문호는 어떤 탁월하고 신선한 결말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할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검사와 변호사 측의 변론을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었고 이미 그 전에 작가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준 터라 당연히 무죄가 선고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피고 변호인의 날카로운 변론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유죄로 선고되었다. 작가가 그 전에 진짜 범인을 독자에게 미리 알려 주었음에도 사실 그 재판은 무죄 선고가 되었다면 윤리적 파장이 엄청 컸을 것이다. 독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의해 범인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리 정확한 물적 증거는 없다 하더라도 부친 살해를 무죄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장에서 어떻게 진짜 범인 이야기를 작가가 펼쳐 나갈 것인지가 궁금했다.

마지막 장이 소년의 Ilyusha의 장례식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오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에 길들여진 편향된 독자의 고집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런 이유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대단한 작가인가? 살아생전 Ilyusha에게 돌을 던진 친구들, 절교했던 친구들이 모두 참여했다. Alyosha는 어린 친구들을 모아놓고 간곡한 부탁을 한다. 한때는 서로 돌을 던지고 싸우고 미워했지만, 이렇게 모여 화해의 장을 만들고 사랑을 나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어디서나 친절하고 정직하며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기를 권고한다. 직전 장까지 부친 살해에 대해 누가 범인인지 변론하는 어른들의 어두운 세계가 그려졌는데 갑자기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넘어왔다. 심지어 아이들은 죽어도 다시 부활하여 서로 만나며 영원히 산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이 끝났다.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마태복음 19:14) 말씀이 떠올랐다.

슬픈 장례식이지만 한 아이의 죽음으로 사랑과 화합의 장을 이루며 천국을 생각하는 마지막 장과는 달리 이 책은 전반에 devil이란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인간 자체의 본성이 나쁜 것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으로 못된 행동을 저지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신이 없어도 인류가 서로 사랑하며 양심에 따라 살 수 있는가? 신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도덕 윤리는 무너질 것이고 인간은 자신을 찬양하고 숭배하며 신이 되려고 하지 않겠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왜 순수하고 무고한 아이들이 고통받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등의 문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다닌다. 이 책은 세 명의 아들과 아버지를 중심으로 탐욕과 사랑이 부른 부친 살해를 다룬 범죄 스릴러의 옷을 입고 있으나 신의 존재 유무, 선과 악의 싸움, 회개와 용서, 진실과 정의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이런 질문은 종교인이 아니어도 살면서 한 번씩 아니면 평생 고민하는 질문이 아닌가 한다.

Zosimo 신부님의 이야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인상 깊다. Alyosha의 멘토이자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신부님은 생전에 신의 경지에 있었다. 그런 그가 죽고 며칠이 안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하게 나게 되자 그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되고 충격을 받고 실망한 Alyosha는 수도원을 나오게 된다. 영웅은 언제나 한 자리에 흔들리지 않는 고고한 자세로 독야청청 푸르게 남아 있어야 하는데 다른 신부님들과 달리 악취가 풍기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성스러움과 거룩함이 의심받게 되고 많은 실망감을 낳았다. 그러나, 진정한 거룩함은 외적인 것에 있지 않았다. 가나의 혼인 잔치(wedding at Cana: John 2)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다. 결국 Zosimo의 거룩함은 외적인 신체의 부패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영적 가치에 있음을 알게 된다. 부족한 인간이 아무리 선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의 힘과 노력에 의해 거룩함이 성취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Zosimo 신부가 수도원에 오기 전에 만났던 신비에 싸였던 Mikhail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것을 시사하다. Mikhail은 수많은 자선 사업을 하면서 늘 겸손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적극 실천했다. 가끔은 선행을 베풀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으나 그의 겸손은 지나치다 싶은 면이 있었다. 그런 Mikhail이 Zosimo 신부에게 14년 전에 사랑했으나 거절당한 여자를 살해했고 증거가 불충분하여 미해결 처리되었음을 고백한다. 이런 고백은 듣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결국 고해 성사를 권유했고 망설이던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진정한 자유함이란 이런 것일까? 그는 14년 동안 죄의 감옥에서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회개를 통해 죄를 고백하고 나서야 자유함을 얻는 것이 아닌가? 외적인 자비와 선행이 의인의 척도가 될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없다.

Mitya의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변론이 엄청나게 흥미진진했다. 작가는 그 전에 범인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었으나 과정 전체를 암시한 것이 아니라서 어떻게 유죄와 무죄임을 변론하는지 궁금했다. 소문난 변호사의 변론을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놀라웠다. ‘심리학은 두 개의 끝을 가진 막대기와 같다’는 논리가 인상적이었다. Mitya의 폭력적인 기질,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 재정적 궁핍, 유산 및 여자 문제는 그가 범인임을 자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돈이 봉투에 있었는지, 절도가 일어났는지 증거가 없다는 변론은 놀라웠다. 정확하게 반박할 수 없는 증거는 하나도 없음이 변호인의 변론이었다. 눈에 띄고 강렬한 정황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인간의 심리를 생각하며 현저성 편향이라는 개념도 떠올랐다. 모든 인간은 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정확한 인간의 논리와 이성에도 치명적인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랜 기간 확증 편향의 노예로 살아온 나는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사랑, 질투, 명예, 불명예, 자존심, 물질 등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Mitya가 Katya를 사랑하지 못함은 자존심과 불명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스럽지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고상한 면이 있어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Katya는 그에게 당한 수치심과 채무감이 있어서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평생 희생하겠다고 다짐하며 실제로 희생을 감수한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Ivan이 있지만 수치심에 대한 복수심 혹은 채무감 때문인지 Mitya에게 집착한다. Grushenka가 Mitya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그를 구원하겠다고 자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그를 향한 연민 앞에서 오히려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한 것일까?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은 질투, 명예, 자존심, 물질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그 이름 자체로만 존재하기에는 인간의 사랑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거짓이라 생각한다.

늘 느끼지만 책은 단숨에 연이어 읽어야 줄거리를 잘 따라가며 생각의 깊이도 넓어지고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는 이 책에 몰입하며 집중해서 읽었으나 워낙 대작이라 리뷰에 소감을 다 담을 수 없는 나의 부족함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두 명의 대문호를 가진 러시아가 부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들의 문학적 탁월성에 대한 존경과 질투심으로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다. 진부한 사랑과 질투심, 물질에 대한 탐심에 관한 스토리를 가지고 심리학적 통찰, 신의 존재 유무, 죄와 회개,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책 전반에 걸쳐 ‘무가치한 내가 자격이 있는가?’라는 겸손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겸허의 표현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진실한 고백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고 부족하기에 타인을 향해 판단할 자격이 전혀 없다. 추후 Mitya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바란다.

매 순간 나의 방법을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금수처럼 살았다. (Every instant I strove to mend my ways, but lived like a savage beast. p.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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