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nfession Leo Tolstoy (Paperback)
Leo Tolstoy / Fili Public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장 톨스토이의 송두리째 흔들렸던 신앙이 확고하게 뿌리내리기까지의 고백을 담은 이 책이, 길 잃은 세대의 나침반이 되길 소망한다. 풍요 속에서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화두는 ‘대의명분, 이유, 의미(cause, reason, meaning)’였다.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스스로 답할 수 없다면 그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그는 자신을 ‘기생충‘이라 자책할 만큼 치열하게 괴로워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고민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에게, 아픔마저 투명하게 드러낸 이 참회록이 잠든 영혼을 깨우는 촉매가 되길 바란다.

15세에 철학 작품을 읽으며 교리를 거부하고 16세에 기도를 멈춘 그는 ‘도덕적 완벽’을 추구하다가, 궁극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갈구했다. 어디선가 완벽이란 단어는 오직 신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들은 것 같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했기에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교리와 삶의 실천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종교인과 지인들의 모습에서 그가 얻은 것은 좌절감과 경멸감이었다. 파리에서 바라본 공개 처형 장면을 지켜보며, 과연 이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지 생각하며 그는 참담해했다.

부와 명예의 절정에서 그를 사투로 몰아넣은 결정적 계기는 형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선했던 형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그는 물질도, 사랑도, 신앙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함을 깨달았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그는 비참하고 괴로웠다. ‘진보‘와 ‘발전‘이라는 화려한 이름 아래 지인들처럼 향락을 쫓으며 살았으나,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 앞에서는 모든 성장이 허무로 귀결될 뿐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이면과 달리 그의 내면은 어두운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인간은 질병, 노화, 죽음(sickness, old age and death)이라는 필연적 굴레를 피할 수 없다. 이를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무지로 외면하거나(Ignorance), 쾌락에 탐닉하거나(Epicureanism), 죽음으로 저항하거나(Strength), 혹은 솔로몬과 쇼펜하우어처럼 삶의 허망함을 노래하며 약함(Weakness)을 드러내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철학과 과학이 삶의 의문에 답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게 함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의 삶을 관조하고 있다는 직관을 지울 수 없었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유기체이든 무기체이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정렬되어 운행되고 있음을 보며, 결국 그는 지식의 교만함과 그 허상을 인정했다. 삶의 유의미함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은 이성을 버리고 비이성적인 지식이라 생각했던 신앙을 택하는 것이었다. 죽음이 파괴하지 못하는 삶이 의미를 갖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연합이다. 죽음이 예정된 유한한 세상에 살지만 무한하고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인지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믿음과 삶이 일치할 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모습에서 참다운 신앙을 보았다. 과중한 육체노동을 하고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내는 농민들을 보며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직 읽지는 못했으나 ‘편안함의 습격’이란 책이 시사하듯, 몸의 편안함이 마음의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주는 불편함을 일부러라도 감수하고 노동의 신성성을 깨달으며 편안함을 벗어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수반될 때,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가 넘칠 수도 있다.

지식의 한계로 명시할 수 없으나 이 세상을 정확하게 운행하는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도 실존의 위기는 언제든 덮칠 수 있다. 인간이 공중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고 심연의 아래를 보아도 무섭고, 바라보지 않아도 언제 떨어질지 몰라 무서울 때, 단지 위를 바라봄으로써 공포를 물리칠 수가 있다. 질병, 노화,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기둥이 있는 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20대에 저술을 시작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라는 대작을 쓰고도, 50대 초반에 삶의 위기를 맞이한 톨스토이가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그의 치열한 사투가 바로 나의 오랜 화두였고 누구나의 고민일 거라 생각한다. 내 소견으로 다 알지 못하나 내가 이 세상에 사는 이유를 희미하게 알고 있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도 내 삶의 이유와 목적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처럼 또다시 ‘삶의 이유’로 흔들릴 때가 올 수 있으리라. 그때는 내 지식의 한계와 교만을 내려놓고 내가 얼마나 작고 초라하며 유한한지를 기억하며, 이 세상을 운행하시는 신의 섭리는 얼마나 무한하고 영원한지를 떠올리며 아래가 아닌 위를 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