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ashlight (Paperback)
수잔 최 / Vintage Publishing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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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고 그저 나의 부족함만 일깨워준 책이다. 글자만 읽는 느낌이었고, 책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압박감이 있었다. 차라리 한숨에 다 읽었다면 감동을 더 크게 느꼈으리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반드시 끝내리라는 의무감으로 접근해서 더 어려웠다. 비행기 안이나 호텔 방에서도 책을 펼쳤지만, 눈으로만 읽고 마음으로는 다가가지 못했다. 많은 분량을 넘어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았다. 고전을 읽을 때도 단어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는데, 오히려 신간을 읽으니 완전히 처음 보는 단어가 많아서 찾아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전후 문맥으로 추론할 수 있었으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 하나씩 찾아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고, 생소한 단어가 너무 많아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느끼며 절망했다. 배움은 끝이 아니라 날마다 시작임을 알게 해 주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가 한국의 아픈 분단 현실을 조명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영어 전공 후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고조되었다고 자부하는 나도, 통일에 대해, 북한 동포에 대해 잊고 사는 적이 많은데, 작가가 우리나라의 슬픈 분단 현실을 소설을 통해 상기시켰다. 분단의 현실은 한국인이라면 직시하고 인지함으로써 반드시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작가는 영문학 전공이고 창의적인 글쓰기를 지도하는 작문 교수라서 탁월한 은유나 직유를 통한 서사적 표현이 많았으나 직관적인 감동을 느끼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건의 전개, 한국의 아픈 과거에 대한 역사적 배경, 한국의 고유명사를 그대로 표기한 점 등이 아마 외국인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난관이 아닐까 한다.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줄거리에만 길들여진 나의 두뇌도 큰 도전을 받았다.

광복 직후 좌익으로 몰려 3만 명 이상의 제주도민이 죽음을 당한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갔던 한국인 부모의 피를 받아 일본에서 태어나 총명했던 Seok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으나 그는 늘 그늘과 친숙했던 사람이었다. 안정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그린 카드를 소지하였으나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사이에서 그의 정체성은 표류하는 배와 같았고, 아내인 Ann조차도 그의 과거에 대해 알 수 없었고, 과거를 말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북으로 간 한국인 부모가 있다는, 죽음보다 무서운 연좌제는 평생의 업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의 하루가 얼마나 무섭고 암울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조총련 소속이었던 동생 순자와 지속적인 연락을 하는 그에게 부모와 가족은 어떤 개념이었을까? 위로 받고 사랑 받을 수 있는 안식처이기 전에 계륵 같은 존재는 아니었을까?

바닷가 산책 중에 아빠를 잃은 Louisa는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빠가 익사했다고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익사가 아니라고 추측하지만 증명할 길이 없다. 어린 시절 아빠를 잃은 상처, 평생 자유롭지 못한 몸을 끌어안고 불편하게 살아가는 엄마를 지켜보아야 하는 Louisa를 읽어 내는 것도 힘들었다. 각자의 관점에서 심리를 그려내고 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청소년 소설 Wonder처럼 전지적 시점으로 등장 인물의 심리를 묘사해 주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할 수가 있어서 독자들이 오해하는 걸 막아준다. To Kill a Mockingbird에서 읽은 유명한 명언이 생각난다. “You never really understand a person until you consider things from his point of view… until you climb into his skin and walk around in it.” 피부 속으로 들어가 걸어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북한으로 납치당한 Seok의 처참한 인간 이하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체계적인 굶주림 (systematic starvation)이라는 표현이 있다. 굶주림 앞에서 고상하고 품격 있는 삶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초라한가? 살기 위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며, 나무껍질 없으면 눈을 먹으며 삶을 유지한다. 겨울에는 눈까지 인색하여 눈덩이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상상이 되는가? 먹을 것이 없어서 쥐도 잡아먹으며 삶을 연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주 땅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선교사와 NGO 기자의 도움으로 마침내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빠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된 Louisa의 손을 잡고 그는 평안히 잠들게 된다. 소설 속 그는 마침내 북한 땅을 목숨 걸고 탈출하기는 했지만, 현재 이 순간에도 1인 독재 체제 속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온다.

만주에서 탈출한 북한 동포들을 돕고 있는 목사님이나 NGO 기자처럼 현재 이 순간에도 목숨 걸고 인도주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나도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내가 아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유익을 살아가는 것 같으나, 현실 속에서도 이타적인, 인도주의적인 희생과 봉사를 펼치며 단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다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불의와 싸우며 노력하기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한다. 불가능처럼 보였던 독일도 통일을 이루었는데, 우리나라는 언제 즈음 통일 한국을 그릴 수 있을까? 불가능이란 단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단어이고 신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이냐는 역시 신이 결정을 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꿈을 꾸며 지속적인 도전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역사적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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