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쓰여졌다고 했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악마에 의해 범속한 것의 압력에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닐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한다. 제목 Screwtape는 Scrooge, screw, thumbscrew, tapeworm(촌충), red tape(관료적 형식주의의 상징 빨간 끈) 등의 음성학적 연상 작용을 일으켜 불쾌한 느낌을 주도록 의도하였다. 결국 사탄이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어떤 방법으로 유혹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인간, 즉 나의 연약함과 간사함의 민낯이 드러나기에 읽기에 유쾌하거나 즐거운 책은 아니다. 오죽하면 작가도 악마의 마음으로 비트는 일이라 쓰는 동안 온갖 티끌과 갈망과 욕망으로 자신을 몰아가야 했기에 영적 경련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했다. 이 책과 상반되는 ‘천사의 충고들‘ 같은 글이 동시에 실렸다면 독자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모든 문장에서 천국의 향기가 묻어나는 높은 수준의 영성을 갖춘 적합한 문체를 구사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위 글은 곧, 죄인인 인간은 언제라도 악마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어 있어서 시험 당하기는 쉽지만, 유혹의 손길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거룩한 영성을 변함없이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을 양서류로 표현하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대상을 향하고 있지만 그 육체와 정욕과 상상력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에 감동의 시기, 무감각하고 결핍의 시기의 기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연약한 육체가 원하는 쾌락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지배를 받기에 영원할 수 없고 결국 불행을 부를 수도 있다.

청년의 시기에 갈구하는 순간의 짜릿한 쾌락을 넘어서는 중년은 악마의 손길에서 자유로운가? 사랑과 희망의 점진적 쇠락, 조용한 절망, 무미건조함, 모호한 원망 등이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되는 중년의 시기 또한 감사가 줄어들게 되며 악마의 타겟이 될 수 있다. 나의 연약함에 비해 악마는 언제나 전투복을 입고 강건함을 유지한 채로 나를 마중나오고 있다. 중용을 지키는 종교는 무교와 같다는 무서운 표현이 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나의 영적 상태는 믿지 않음과 같아 악마의 속삭임에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을 기억하자.

다행히도 마지막 페이지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나니 ‘바로 당신이었군요’라는 감격스런 선언과 간증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즉, 고독한 순간마다 경험했던 느낌, 모든 순수한 경험 속에 내재해 있었지만 기억 속에 잡아둘 수 없었던 그 중심의 음악을 복원한 느낌, 누군가가 나를 강하게 이끌어 가고 있었구나라는 등의 고백을 하는 날이 내게 오기를 소망한다. 이제 더 이상, 감각적, 정서적, 지적 즐거움, 미적 자체가 주는 즐거움으로 나의 하루를 가득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한 후 탈진된 상태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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