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을 좋아하지만 나름의 선정 기준이 있다. 우선, 참신한 소재와 구성에 마치 자석처럼 끌리며 눈과 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 보이나, 결국엔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직업이 작가임을 알기에, 항상 신선하고 놀랄만한 스토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이유로 스토리가 아니라면 같은 듯 다른 표현이지만 세련되고 정제된 언어의 미학을 보여주는 책이 좋다. 물론, 스토리와 언어의 미학 둘 다를 내포한 책이라면 금상첨화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후자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작가이다. 조정래는 나의 까다로운 선택의 범주에 있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내 작가가 아닐까 한다. 부족한 내 안에 가득한 인지 편향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정래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읽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다.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과의 너무나 강렬했던 첫사랑은 지금까지도 나의 눈과 귀를 가리며 맹목적인 선택을 하게 한다.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가득했던 첫사랑과 조우가 예전의 기억과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는 없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하듯 책과의 만남도 첫 느낌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믿도 읽는 조정래 작가의 혼을 알기에 실망감이 따르지는 않았다. 2년 전 ‘천년의 질문’ 이후 출시된 장편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2년 전 책과 달리 이 책은 제목에서 책의 주제와 내용이 모두 보이기에 큰 신선감은 없었으나 이 작가의 책은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고 진부한 내용도 지겹지 않다는 데 매력이 있다.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물질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들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경고라는 슬픈 내용이었다. 알람이 울리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야 하는 데, 경종이 울림에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음은 나 또한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나라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과 귀를 덮고 싶을 때가 많은 것은, 막강한 권력과 부패 앞에 내 자신이 너무나 무기력하고 달라지지 않는 악인의 교만함 때문이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면서도 아무 실천도 하지 않으며 감정적 분노만 앞세우는 내가 더 싫어진다. 꼿꼿하고 빳빳하게 기개를 세우며 사회를 바꾸어 보고자 했던 운동권 출신의 이태하, 한지섭은 결국 세파에 시달려 한풀 꺾인 신세가 되었다. 이태하는 검사를 포기하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머임)의 일원으로, 한지섭은 정치를 내려 놓고 귀농하여 영농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너와 우리의 맥박은 언제나 영원히 함께 뛰고 있다고 생각하며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나, 이 세상을 혐오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51명으로 시작한 민변 회원이 30년 사이에 1,200명이 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은 것 또한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리라.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판사, 검사, 변호사의 삶이 아닌 민변의 일원이 되어 약자를 도우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자기희생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해 왔던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을 ’순결한 영혼, 상처투성이의 영혼, 가장 고독한 영혼‘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고, 황금종이의 위력에 지배받지 않으며 독야청청하기란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인지 잘 암시하고 있다. 이태하와 한지섭이 뜻을 같이 공유하며 넘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우정이 따뜻하고, 각자의 다른 위치에서 약자들의 위로와 힘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2의 이태하와 한지섭 같은 인물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에 여전히 세상은 살아갈만한지도 모른다.

2권 후반부에 KTX를 타고 가는 이태하는 영어 범람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존엄성과 국민적 자주상 상실의 시대라 할만큼 영어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시에 영어 조기교육을 강조하며 시작된 영어 사대주의는 갈수록 심해져서 상습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한글인지 영어인지 모르는 것도 있다. 회사, 상품, 아파트, 가게, 노래, 가수 이름 등 예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 신선한걸 찾은 탓인지 여러 언어를 섞거나 혼합하여 국적 불명의 언어도 많다. 심지어 관공서에서 내세우는 프로젝트나 슬로건에도 영어가 들어감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내가 쓰는 글에도 영어가 살아 숨쉬고 있다. 심지어 난 영어 전공자이지만 필요시에만 사용하고 아름다운 한글이 오래 오래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가는 소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시(p. 149)’라는 표현으로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시대의 풍자와 비판을 통해 시원하고 통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더라면 책을 덮고 내 마음이 편안했으리라. 그러나, 마지막 장에서 의로운 길을 가고자 했던 민변 이태하도 10억 앞에서 고민하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무조건 흔들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칼에 내치지 못하고 있다. 여전이 마음 속 내적 갈등 상태로 책이 끝난다. 현재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겅아지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 줄 수도 있는 시대가 아닌가? 이태하의 고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고민임을 암시하며, 황금종이의 엄청난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다.

돈이 인간의 실존이자 부조리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불감증이 심해지고, 인간의 마음 속에 돈의 필요성이 기본값으로 내재되어 이제는 필요를 넘어 악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소설로 인해 그 문제점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물질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함으로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할지 고민해야겠다.

인간이 저지르는 많은 어리석음 중에서 가장 큰 어리석음두 가지는, 첫째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고, 둘째는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을 자꾸자꾸 생각하며 후회하는 것이라고 했다. - P85

정경유착, 경언유착, 경유착, 권경유착이 상시적으로벌어지고 있으니 권력이 바뀔 때마다 ‘경제개혁, 재벌개혁‘ 구호를 요란하게 떠들어대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물쭈물 용두사미가 되고는 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 P94

왜 그 명칭이 ‘KTX‘인지 이태하는 기차를 탈때마다 눈에 거슬리고 비위가 상했다. 그것은 갈수록 통제불능 상태로 범람하고 있는 영어 남발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수출에 주력하는 개인기업도 아니고 국가가 경영관리하는국철에 왜 굳이 ‘KTX‘라고 외국어를 붙이는가. 외국인들이편하라고? 외국 사람들이 몇이나 타는가. 글로벌 시대에 맞춰서? 이 열차가 파리나 뉴욕까지 달리는가? 영어 남발은 김영삼 정권의 영어 조기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단지들이 국적 불명의 뜻 모를 외국어 명칭들을 경쟁적으로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 P140

우리는 왜 국가적으로 이런 조처를 취하지 못하는가. 영어간판을 쓰되 위에는 반드시 한글로 쓰고, 아래에는 영어를 쓰게 하는 방법 말이다. 이것은 쇄국이 아니다. 그건 국가적 존엄성과 국민적 자주성을 스스로 지키는 일인 것이다. 이 나라의 이 정신없는 영어 범람 현상을 미국 사람들은 뭐라고 하며바라볼까 고마워할까, 기특하다고 할까, 스스로 문화식민지가 되려고 허둥거리는 꼴을 보며 불쌍해하고 경멸할까. - P141

소설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제시라고. 아마 작가는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시하고, 그 답은 역사에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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