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을 반복할 경우 편안함 보다 지루함을 먼저 느끼기에 새롭고 신선한 것을 원한다. 새로운 자극이 어떤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새로 접한 것이 기존의 틀을 벗은 경우, 자석처럼 끌리며 나도 모르게 따라갈 수가 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길을 잃을 경우 답은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서 찾으려 한다. 이 소설이 딱 그랬다. 첫 장을 열었을 때 많이 달랐다. 보통 소설이 인과관계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반드시 뒤에 가면 이유와 결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계속 기다렸다. 여전히 말이 안되는 상황은 계속 되었으나 마지막 장에서는 속시원한 답을 줄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부조리한 이 소설이 답이 없는 이 세상을 모델로 하는가?
글을 쓰지 않으면 죽어야 하고, 본인은 문학 외에 그 어떤 사람도 아니며,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힘이 글쓰기였던 Kafka가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법학박사까지 받았다. 정신적 폭력을 가했던 아버지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이 소설을 썼을까? 법학을 전공한 작가라서 사법부의 부조리함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아서 불공정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까? 무죄라고 소리쳐 봐도 모든 인간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며 결국 수치심만 남기고 죽을 수 밖에 없다는걸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너무 너무 어렵고 끝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은행 고위 관리직원이던 주인공 Josef.K는 30번째 생일 날 기소당하고, 이유도 듣지 못하며, 그가 기소당함을 받아들이고 무죄임을 증명하기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그는 실패하고 채석장에서 죽임을 당한다. 기소당한 이상 이유 불문하고 유죄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판사를 만난 적도 없고 주위에 도와 주겠다는 사람들(uncle Karl, advocate Huld, manufacturer, painter, Block, Leni)은 많지만,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고, 누가 정직을 말하는지 알 수도 없다. 결국, 거짓말이 세상 질서에 기본이란 말인가.(It makes lie fundamental to world order. p. 177)
주인공은 이유없이 기소 당했는데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시키는대로 일요일 날 법원에 출석을 한다. 체포 영장없이 체포되었다고 해도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 이 체포는 도둑의 경우와 달리 ‘학구적인 어떤 것’(something scholarly. p. 16)이라고 하고 있다. 법을 위반한 경우가 아니어도 누구나 체포될 수 있고 기소 당할 수 있는 죄인이란 뜻인가? 지식인으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무죄를 벗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유대인으로서 무신론자로 되어 있다. 중간 즈음에서는 사법부의 비리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것으로 이해하며 읽었지만 석연치 않다. 성당에서 만난 사제(prison chaplain)가 예시로 들었던 ‘법원 앞 문지기’(Before the law stands a door-keeper. p. 170)의 비유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혹되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과연 누가 속인 자인가? 뇌물을 받으며 법원을 끝까지 못 들어가게 하고 헛된 구원의
메세지(message of salvation, p.172)만 준 문지기가 기만자인지, 문지기의 옷에 묻은 벼륙에게까지 법원을 들어가게 해 달라고 도움을 간청하던 시골에서 온 그 사람이 기만자인가?
법원 안으로 들어가면 판사 즉 심판주가 기다린다. 아무도 이 책에서 심판주를 만나지 못했다. 주인공이 채석장에서 죽게 될 때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친구인가? 선한 자인가? 모두 어디에 있는가? 논리는 흔들지지 않은 진리이지만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가 만난 적이 없는 판사는 어디에 있고,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고등법원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판사와 고등법원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다’(everyone has his own cross. p. 107)는 표현이 있었다. 원치 않아도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일까? 부귀영화와 신분의 비천함 상관없이 모두 피고인으로서 결국 구원의 손길을 얻지 못한 채 죽을 수 밖에 없는 비참함을 이야기 하고자 한걸까? 왜 작가는 희망으로 마무리 하지 않았는지 답답하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친구, 선한 자, 논리(Logic)가 해결하지 못한 구원의 손길이 어디서 올지는 독자 스스로 찾게한다.
어렵고 난해했으나 원인과 결과를 찾기 위해 조바심을 내고 잘 따라 읽었는데, 미궁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책을 덮었다. 야속하지만 ‘생각의 힘’을 기르게 해 주어 고마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