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gie & Me : <원더> 두번째 이야기 (Paperback, 미국판 International) - Three Wonder Stories: The Julian Chapter / Pluto / Shingaling
Random House, Inc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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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2012)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독자들로부터 후속편(sequel)에 대한 요구가 쇄도했던 것 같다. 난 사실 개인적으로 후속편이 나오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아쉬운 대로 여백을 남기는 것이 후작에 대한 실망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Wonder는 영화로도 광장히 유명하고 원서 내용은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수작이었다. 이 책은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쓴 책이나 후속편은 아니고 입장과 시각을 달리한 것이다.

Wonder라는 책이 좋았던 것은 챕터마다 주인공을 달리하여 이야기를 끌어가게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 August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가족의 중심이 August로 바뀌면서 역시나 어린 누나 Via가 늘 양보해야하고 동생의 그늘로 살아가며 부모님의 관심을 덜 받게 자랄 수 밖에 없는 아픔이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나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지 못하면 그를 이해할 수 없다. 20번도 넘게 얼굴 수술을 한 동생을 둔 누나가 그 어떤 응석을 부모에게 부릴 수 있었겠는가? 사실 Via의 어린 시절은 동생으로 인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책은 Auggi(August)의Welcome buddy(환영 맞이 친구) 중 하나로서 Wonder의 악역이었던 Julian, Auggie의 오랜 기간 죽마고우였으나 연락이 뜸해졌던 Christopher, 그리고 역시 Welcome buddy이며 모범생으로 소문났으나 Auggi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적극적 지원 사격은 못하고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Charlotte의 이야기이다.

Wonder의 주인공은 선천적 질병으로 얼굴 수술을 20번도 넘게 하면서 홈스쿨을 하다가 학교에 가면서 뜨거운 시선과 어려운 교우관계의 장애를 딛고 극복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책의 주인공 3명은 가려진 인물들이다. 비록 악역일지라도 내면에서 ‘옳은 일에 대한 열망(a yearning to do right)’ 때문에 그들도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박수갈채를 받은 Auggie에 비하면 부적응자이고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그들에게 더 넓은 아량과 수용력을 보여주며 공감력을 형성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이 쓰여졌는지도 모른다.

Elizabeth Gilbert의 “The Signature of All Things”에서 모든 사물은 서로 자기를 보아달라고 아우성친다 라는 문구를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은 아주 특이하게 이끼(moss)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인데, 식물이나 동물도 서로 관심을 받으려 할진데 사람은 얼마나 더 할것인가?

Wonder의 악역이었던 Julian은 프랑스에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움직이며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Auggie에게 사과 편지를 쓰게 된다. 유태인 신분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같은 반 소아마비 불구의 상태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이야기였다. Christopher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Auggie와 자주 못 만나게 되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심리적 불안 상태가 되어 Auggie와는 친한 관계를 자주 맺지 못하게 된 나름의 변명이 나온다.

Charlotte 편을 읽으며 특히나 여학생들은 교우관계가 얼마나 학교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교우관계가 전부일 수도 있을 만큼 누구와 친해지고 누구랑 점심을 같이 먹느냐가 그들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다. 어른이 읽으면 유치할지 모르나 현재도 이런 교우관계 문제로 왕따 및 학교 폭력이 심해진 것과 어른들조차도 대인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걸 볼 때 관계맺음이 단순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Wonder를 읽을 때 만큼의 신선함은 아니었으나 입장을 달리하여 그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줌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 않는 시대 아닌가? 주인공만 박수를 받고 약자의 이야기는 묻히는 시대가 아닌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들어 줄 시간이 없다고 우리는 이야기한다. 과연 듣지 못하고 들어줄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우리는 그 무엇에 시간을 쏟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아우성치는 이들이 많은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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