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허영으로 니체를 만나고 싶어했는지 읽는 내내 후회했다. 책을 중간에 포기하는건 Carl Sagan의 COSMOS 한 권이고 싶어 끝까지 붙들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고집 때문에 3주 내내 힘들었다. 슬럼프를 지나며 위안을 얻고 싶어 읽었는데 오히려 내게 위험한 책이었다. 난 아직 철학에 입문하기엔 멀었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모두가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절대 처음에는 읽지 말라는 사람들의 조언이 이해되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니체가 God is dead를 수없이 반복하며 Superman을 강조했던 것은 그가 살던 당시 기독교의 부패상 때문일까? 신과 기독교를 부정하였으나 이 책엔 기독교 내용이 많이 들어 있고 모든 것은 헛되고(All is vain), 세상은 고통과 역겨움(disgust)로 가득차 있으며, 인간은 극복의 대상이다(Man is something that must be overcome)라고 아주 여러 번 반복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은유적 표현도 넘쳐난다는 이면이 있다. 니체의 허무주의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경구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겨울.수줍은듯 얼굴을 붉히며 나타난 일출.모든 것은 영원의 샘에서 세례를 받았다. 유연한 강인함(supple hardiness) 그것은 정복할 수 없는 삶의 살아있는 등대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실망과 연민을 파괴시키는 것은 용기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구로 용기를 주는 니체는 또 다른 허무주의로 읽는 동안 우울하게 함과 동시에 공감도 불러일으켰다.모든 것이 헛되다. 산다는 것은 자신을 불태우지만 전혀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가장 최상의 것에도 역겨움을 유발시키는 것이 있고 심지어 최상의 것도 극복의 대상이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오물이 있다. 수 많은 의인화와 은유 표현 중에 Life가 Zarathustra를 향해 던진 말이 있다.‘난 너의 지혜가 부럽다. 만약 너의 지혜가 언젠가 너를 떠난다면, 너를 향한 내 사랑도 또한 너를 떠날 것이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뜻일까? 어떤 책을 읽어도 그 속에서 보물을 캐내어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데 사용된다면 난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저절로 지혜가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에서 지혜를 얻고자 내가 이리 몸부림을 해도 내 지혜의 샘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는 의문이다.허무주의의 늪에서 나오며 배운 것은, 어둠을 어둠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과 부정을 허무주의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허무주의 자체를 부인하지 않으나 슬럼프 기간에 만난 허무주의는 나를 세우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감은 되었으나, 내게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했다. 너의 과일은 무르익었으나, 넌 아직 그 과일을 먹을만큼 무르익지 않았다(Your fruits are ripe but you are not ripe for your fruits, p. 169)는 표현이 있었다. 더 고독해져야 하고 더 무르익고 성숙해진 순간에 철학을 만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