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심판(The Trial)의 내용이 예시로 나온다.주인공 ‘K는 영문도 모른 채 죄책감을 느낀다(K feels guilty without why. p. 127)’. 나 역시 일중독에 빠져 3주를 보내며, 책을 늘 손에 들고 다녔으나 머리에 넣지 않으며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단순히 일이 내 뜻 대로 안되어, 혹은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왜 나는 열심히 사는데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몰랐다.
이 책에서 답을 찾은 듯하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반복되어 내 심장에 와 꽂힌 단어는 productively이다. to live productively가 중심 주제처럼 여기 저기 산재되어 있다. 책 제목을 내용에 맞게 번역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한 인간, 남이 아닌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인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 정도 되리라. 궁극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 즉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살며 잠재적인 내가 되어 사는 것(To be himself and to be for himself, to become what potentially is)이 너무나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실존적 이분법(existential dichotomies)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내용에 매우 공감한다. 일과 쾌락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도 내적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광활한 우주에서 겪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고독을 인정해야 한다. 확실한 것을 추구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있는 것을 찾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며 불확실성이 오히려 인간의 진정한 힘을 펼치게 하는 바로 그 조건이 됨을 알지 못한다.
실존적 이분법으로 인한 혼란 외에도 인간은 도덕적 달레마에 빠져 선과 악의 개념도 흔들리고 있다. 절대가치가 존재한다면 가치 판단을 할 경우 그 노선만 따라가면 쉽지만 지금은 상대주의 이론이 만연하고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고, 삶이라는 예술에서 인간은 예술가가 되고 인간이 그의 예술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예술가로서의 좋은 삶과 나쁜 삶의 개념은 무엇일까? 역동적으로 살아 있는 삶(to be alive)은 이성적 신념(rational faith)을 갖고 자신의 생산적인 활동(productive activity)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마치 광야에서 울부짖는 삶을 살지라도 그의 목소리가 살아 있고 타협하지 않는 의지가 있다면 광야가 비옥한 땅이 될 것이며 내재하는 사회적 가치와 보편적 윤리 사이의 모순이 좁아져서 결국 사라지게 되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발전을 서로 도모하는 인간다운 가치가 살아나는 사회가 될거라 희망을 던진다. 우리의 사회가 그 만큼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암시한다. 즉, 선과 악의 구별에 대한 도덕적 윤리 문제도 인간의 능력, 자유의지, 진정한 자신이 될 용기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인간이 하나의 소모품으로 살아가지 않고, 성공과 부의 수단이 아니고 목적으로 살아갈 때,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 도덕적 딜레마와 실존적 이분법도 잘 극복하며 예술 작품을 빚어내듯이 예술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일까? 3주 동안 일중독으로 살면서 난 행복하지 못했고 짜증과 불만이 높았다. 즉 일은 만족이라는 것이 쉽게 따르지 않고 완벽이란 단어도 없기에 난 지속적으로 매달려서 결국 일이 내 삶의 목적이 되었고 난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며 내 한계에 크게 부딪쳤다. 생산적인 삶이란 burns without being consumed(p. 142)란 문장에서 내 얘기 같아 쿵하는 느낌이 있었다.
일이 곧 나이고 일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으며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이라 생각해 왔는데 일이 내 삶의 목적일 수 없음을 내적 불안에서 실감한다. 생산적인 삶이 아니고 소모전이었기에 난 불행과 허무를 크게 느꼈다. Faith란 희망의 실현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신념을 갖고 산다(to live by our faith)는 것은 생산적으로 사는 것이라 한다. 일로 나를 표현하지 말고 원래의 나로 살아가기란 무엇일까?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과 생산적인 삶은 선순환을 이룬다고 했다. 책을 읽을 때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물론 여유있는 시간이 아닌 바쁘고 일에 쫓길 때 내가 얼마나 나 다운 모습으로 살기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예술이 되느냐 아님 불평하는 삶이 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내가 앞으로도 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모적인 삶을 산다면 카프카의 K처럼 심판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공허와 불모의 땅을 걷는 느낌을 알면서 나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심판 앞에 서게 되면 결국 나 자신만이 나를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