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새로 옮긴 직장내에서 같이 하는 북클럽 도서라 몇 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몇 년 전에도 북클럽 지정 도서이긴 했으나 엄청난 분량에 눌린 탓인지 나 혼자 읽었기에 그 당시 토론은 불가했다. 이번을 계기로 두 번 읽게 되는 호사를 누림에 감사한다. 사실 읽어야 할 새 책들의 중압감 때문에 두 번씩 읽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기에 나중에 또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3000년에 걸친 대륙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인문학 서적에 ‘우연, 행운, 혜택’이란 말이 자주 반복된다면 믿겠는가?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인간의 역사도 과학적 연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낙관하고 있으며 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이 현대세계 형성 원인도 밝히고 미래 형성 원인도 조명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하면 ‘우연이나 행운’은 어울리지 않을 법 들린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세계의 불평등의 시작은 지리적 입지라는 역사적 우연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윤리적 공백과 간극을 메우기 위함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지리와 역사를 배우긴 했으나 누구의 관점과 시점에서 규명하고 바라보았느냐도 중요하다. 차이에 대한 궁극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환경이 아닌 생물학적 원인이라 단정 지어왔다. 문명/비문명, 우수/열등의 이분법적 단정은 윤리적, 도덕적 공백을 만들었고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게 했기에, 잘못된 인과관계의 사슬을 끊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에게 편견을 벗기를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백인과 흑인을 논할 때 기본값으로 우수와 열등이 떠오름은, 마치 도시와 시골을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시골의 삶이 반드시 부족함이 많은 것이 아니듯이 흑인이 더 열등하고 지능이 낮지 않지만 우리는 어쩌면 오랫동안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명인과 원주민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무슨 근거로 문명인의 삶의 질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오랫동안 자리잡힌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유라시아 대륙이 뉴기니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보다 먼저 발달할 수 있었던 궁극적 원인은 지능적으로 더 우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생태학적 우연이었으며 결국은 지리와 환경이 발달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에는 야생 동식물이 풍부했기에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가 먼저 이루어 지면서 식량생산도입이 가능했고 이는 인구밀도를 높이고 정주형 생활, 기술발달, 중앙집권화를 가능하게 했다. 결국 식량생산과 기술의 역사는 자가촉매작용을 일으키며 총기, 해양기술, 문자, 군사기술 등의 발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또한 동물의 가축화로 인한 병원균이 대량 살상력을 일으키며 많은 원주민들을 죽이게 되었고 유럽인들의 정복과 탐험을 가능하게 했다.

반대로 지협이나 사막으로 인해 격리나 고립 상태에 있거나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이 많았던 뉴기니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유럽인들이 가져온 병원균에 속수무책으로 전염되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콜롬버스는 신대륙 발견의 영웅으로 역사책에서 찬양되고 있지만, 한 번도 원주민 입장에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결국 그로 인해 구유럽인들의 탐험과 정복이 가속화 되고 많은 원주민들이 총기와 병원균으로인해 죽게 되었으니 원주민 입장에서 그는 테러범이 된다.

문자의 발견도 비옥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니 역사도 백인의 입장에서 조명되어 온 것이다. 결국 백인들의 정복욕에 의해 대부분의 원주민은 영토를 빼앗기고 말라리아나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백인이 접근하기 힘든 극한 지역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지금도 원주민의 삶은 미개하고 열등하기에 문명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수와 열등, 문명과 비문명도 누가 규정한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인종차별문제로 시끄럽다. 흑인과 백인의 차별 논란은 뿌리 깊은 고질병 같은 문제로 수많은 문학책의 소재로 자리했고, 현재도 늘 잠재적 위협성을 안고 있는 문제이다. 작년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소재로 한 책을 몇 권 읽으며 슬펐던 적이 있었다. 이 책에도 유럽인들이 희망봉 일대의 코이산족을 평정하기까지 9차례 전쟁으로 175년의 세월이 걸린 것으로 나온다. 지리적 생물학적 우연으로 유산자가 된 지배계층의 정복 욕심, 문명화 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 학살, 파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지리적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이 절대적이고 문화 차이나 개인의 특성은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화나 거대 영웅이론이 인류의 발달사에 끼친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그런 요소로 설명되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역사가 너무 많았고 결국 그 궁극적 원인으로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그간 놓치고 있었다.

앉은 자리를 바꾸어야 풍경이 달라진다고 했다. 관점과 시선을 바꾸지 않으면 편견은 벗을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의 원인이 환경인지도 모른 채 유전적 요인으로 단정짓는 오류를 범하고 내 안의 편견으로 쉽게 평가와 판단을 내려왔다. 인종차별 아니어도 내 안의 편견은 수 없이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날마다 점검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윤리적 공백을 크게 만들어 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걸 생각하며 정신적으로 깨어 있는 연습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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