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nne of Green Gables (Paperback, Reissue) - Puffin Classics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 Puffin / 1996년 1월
평점 :
품절
음악치료(music therapy)나 미술치료(art therapy)에 대해 공감할 수 있지만 책치료(book therapy)에 대해서는 낯선 느낌이 있었다. 책을 너무 좋아하지만 마치 신체 건강을 위해 음식을 선별하여 먹듯이 책은 정신 건강을 위한 필수품목 같은 것이었다. 읽어야 할 책이 많기에 구미에 맞는 것만 읽을 수 없어 괴로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book therapy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서 부정이 들어 올 틈을 원천봉쇄 한 책이어서 읽는 내내 따뜻했다.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가 주는 느낌이 다르듯이 너무나 잘 알려진 ‘빨강머리 앤’을 읽으니 어른이 된 것이 서글프기도 했다. 과연 나에게도 이런 감수성이 살아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3개월만에 부모를 잃고 10년 동안 두 가정을 돌며 집안일을 돕다가 고아원에서 4개월을 보냈던 Anne이 입양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There’s scope for imagination.
처음부터 끝까지 Anne은 imagination/imagine을 빼고는 말하기 힘든 감상적 소녀이다. 상상력이 곧 그녀이고 지나친 상상력에 몰두하다가 해야 할 일을 까먹는 치명적 단점이 있을 정도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계절의 변화를 느낌이 너무나 감사한 그녀는 splendid, thrill, scrumptious, romantic 등을 항상 연발하면서도 언어로 구사할 수 없는 장면이 너무 많다고 한다.
케이크를 만들거나 소풍을 가는 것들이 모두 처음인 그녀에게 세상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바다이다. 항상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소녀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과 감격으로 살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가? 사물을 침착하게 받아들임은 그녀의 본성을 바꿈과 같을 정도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Anne은 어른들의 잃어버린 감성과 순수를 찾아 주고 있었다.
이 책은 누가 언제 읽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일 것이다. 휴대폰 한개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Anne의 문학 작품 암송이나 story club을 만들어 글쓰기를 하는 내용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겠다. 보는 사물마다 낭만적인 이름 짓기를 하며 낭만과 상상력을 찾는 그녀의 지칠줄 모르는 수다가 이성의 촉수로 긴장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는 얼마큼 신선하게 다가갈지.
마침내 어른들은 낭만을 모른다고 포기하려는 Anne에게 대인 기피증이(특히 여자)있고, 평생을 비사교적으로 살아 온 Mattew도 약간의 낭만은 있어도 된다고 한다. A little of it(romance) is a good thing. Keep a little of it. (p. 274) 감성을 잃어버린 채 아니 숨기고 살아가는 어른에게도 순수함과 감성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 항상 남아 있기에 목석 같던 Mattew도 Anne에게 자석 처럼 끌렸으리라.
날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늘도 또 다른 새 날을 맞이함에 감동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주는 고통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수다쟁이 Anne의 표현에 마음이 무너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표현만을 쏟아내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착각이라도 해본다.
Anne에게 상처나 실망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오랜 기간 슬퍼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라며 무서운 회복력을 보인다. Mattew가 죽고, Marilla가 시력을 잃어감에 대학에 대한 꿈을 접으며 삶에 굴절이 있다는걸 알지만 또 다른 조용한 행복의 꽃이 그 길을 따라 필 것을 직감하는 사랑스런 Anne. 어려운 삶에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자연이 낳은 Anne.
Anne의 슬프지만 매력적인 표현 너머로 보이는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 보자.
My life is a perfect graveyard of buried hopes. (p.45)
She was a kindred spirit. (p. 97)
Don’t you think the trying so hard ought to count for something? (p.217)
There is one consolation when you are poor-there are so many more things you can imagine about. (p.280)
There’s the worst of growing up. The things you wanted so much when you were a child don’t seem half so wonderful to you when you get them. (p.282)
He was a foeman worthy of herself. (p.294)
I don’t want to be anyone but myself. (p.329)
There was always the bend in the road. (p.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