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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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필독서라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누군가의 하루가 이렇게 길게 펼쳐질 수 있다니 놀랍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재가 그 어떤 허구보다 큰 감동을 주기에 감정이입을 안할 수가 없다. ‘Man’s Search for Meaning(죽음의 수용소에서)’이 매우 큰 감동을 주었듯이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내가 마치 그 강제수용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었다.

순수 문학이나 예술을 목적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작품도 가치가 있지만 이렇게 사회 고발의 기능을 하는 작품도 많이 나와 오래 오래 진가를 인정받기를 희망한다.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직접적인 역할로, 사회제도, 법률, 규범 자체의 혁신이 우선이고 유능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문학이 끼치는 영향도 엄청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문이 무보다 강하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2차 대전 중 독일군에게 이틀 동안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음에도 스파이 혐의로 10년형을 선도받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일어나 결국 힘겨운 하루를 잘 견디어 내고 행복하게 마무리가 된다. 영창에 들어가지 않았고 더 혹독한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 않고 점심에 죽도 두 그릇 먹고 벽돌쌓기도 잘하고 잎 담배까지 샀으니 거의 운좋은 하루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사람의 품격이라는 것도 당연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무엇인지 모를 공허감에 시달리는 내게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치열한 필살기로 하루를 견뎌야 하는 슈호프는 8년의 수감 생활을 통해 눈치도 빨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지만 나름의 품격을 유지하며 비굴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 자리가 어디든 전심전력을 다해 하루를 살아냄이 눈물겹다.

한 약자의 운명에 대한 인간애적 동정을 통해 스탈린 공포시대와 정치적 억압의 수단이었던 혹독한 강제수용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그린 이 책은, 내게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견디게 하는 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여러종류의 인간의 군상이 등장한다. 침례교도인인 알료쉬카에게는 종교가 그를 지켜주는 끈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슈호프에게는 반드시 가족이라고 언급되어 있지 않다. 가족을 그리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을 만큼 혹독한 감옥생활이었기에 고향을 그리는 생각도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슈호프는(결국 작가는) 10년 생활을 잘 견디어 내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냥 하루를 살아냄이 기적같은 수용소에서 죽 한 그릇을 더 먹기위해, 양배추 건더기가 있는 죽을 내 앞으로 오도록 하기 위해, 담배 한 잎 사기위해, 줄칼을 잘 숨겨 들어와 잔일 도우며 돈벌기위해, 친구에게 온 소포 찾아다 주고 맡아주고 조금 얻어먹기위해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던 그 삶 자체가 그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작업이 늦게 끝난 것도 불만인데 인원점검에서 한 명이 없음을 알고 지체되어 결국 작업하다가 졸았던 몰다비아인때문인걸 알고 온갖 욕을 다하던 제 104반원들이 이제 소중한 저녁 시간이 다 날라갔음을 알고 터벅터벅 걷다가, 다른 기계공장 작업반원들도 작업이 늦게 끝나서 오는걸 발견하고 그들보다 빨리 도착하려고 경호원들까지 가세하여 행군을 빨리하던 그들의 모습은 진짜 눈물겹다. 그들 보다 빨리 가서 신체검사도 먼저 받고, 저녁 배식도 받고 등등. 백 오십여 미터 먼저 도착한 그들은 풀 죽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엄동설한의 작업도 잊고, 의기양양하는 토끼의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과연 이런 생물학적 욕구만이 우선인 극한 곳에서 그들을 견디게 하는 끈이 삶에 대한 긴장이 아니고 그 무엇일까? 현재 나의 정신적 나약함은 물리적 환경의 풍요에서 오는 교만함 때문은 아닐까? 품격있는 내 삶을 논할 때, 기본적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을 논외로 하며 당연하게 여김이 교만한 태도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이만큼 살아 숨쉬는 것에 대하여, 자유와 평등의 꽃이 이만큼 피어남에 대하여,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나태와 나약함의 원인은 아닌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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