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의 아우라를 생각하며 기대감을 안고 시작했고 진입장벽은 쉬웠으나, 오락성은 떨어지고 치밀한 심리묘사와 암울한 이야기, 역사적 배경의 부족 및 일중독으로 독서에 할애할 시간의 부족 등으로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책이라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썼을 귀한 책을 감동적으로 읽어 주었어야 하는데, 심드렁하게 책을 덮고 나니 죄책감도 찾아든다.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책은 걸으며 책을 읽었던 18세 소녀의 성폭력을 다룬 이야기이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신구종교 갈등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걸으며 책을 읽었던(reading while walking) 그녀에게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밀크맨으로 인해 그녀는 온동네 전체에 나이 많은 밀크맨과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으로 언어 폭력을 당하게 된다.
불건전한 관계라는 소문을 낸 첫째 형부와 그의 말을 믿는 언니들, 심지어 20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한다고 입만 열면 결혼 설교를 하는 엄마도 그녀가 말하는 진실을 믿지 않는다. 초등학교 이래로 가장 친한 유일한 친구마저 그녀가 진실을 털어 놓았지만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하고, 헛 소문이 진실로 둔갑한 세상에서 그녀 홀로 외로운 투쟁을 해야 한다.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고 평생 원망했던 주인공의 엄마가 평생 사랑했던 진짜 우유배달 real-milkman도 있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이뤄지지 못한 사랑으로 평생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던 real-milkman을 바라보고 있던 동네의 많은 여자들과 그 여자들과 경쟁하며 real-milkman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이 든 엄마의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정 등...
책 제목 Milkman은 여러가지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듯 하다. 그녀의 삶을 위협했던 다양한 폭력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한가. 우연히 세 번 정도 마주친 Milkman 외에도, 관계를 맺고 있으나 완전한 남자 친구는 아닌 maybe-boyfriend의 이중적인 관계, 그녀를 좋아하지만 거절당해 스토커가 된 Somebody Mcsomebody의 여자 화장실에서의 권총 위협 등등 그녀를 둘러 싸고 있고 있는 삶의 폭력등이 아닐까 한다.
Milkman이 죽고 나서 비로소 그녀는 세번째 형부와 달리기를 하며 예전에 Milkman을 만났던 공원과 저수지를 지나면서도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자유함을 얻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실 너무 어렵게 읽어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책 속 어린 소녀는 그녀의 진실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변명하며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엄마와 친한 친구마저 진실을 외면하는걸 보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Fake News가 난무하며 우리의 진실을 가리게 하는 세상에서 어린 소녀의 진실과의 힘겨운 싸움이 많은 메세지를 시사한다.
The truth will set you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