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를 생각하면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먼저 든다. 내려 온다라는 생각보다 더 높은 곳으로를 떠올리게 하는 수직적 개념이다. 모두 다 올라가고 싶어 하기에 이미 충분히 높은 곳에 있는데도 만족을 모르게 된다.
How do we judge “enough”? 라는 표현이 있다. 충분하다는 표현은 상대적이다. 행복과 불행도 그러하듯이 가난과 부유함도 항상 상대적이다. 그런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우리는 늘 마음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문제는 경제적 빈곤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가난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다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한다.(feeling poor matters, not just being poor)
개인의 주관적 비교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도 무섭지만, 가난과 불평등은 맞물려 있고, 불평등은 더 커다란 불평등을 낳고 우리가 사고하고 살고 죽는 것까지 무자비하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너무 깊숙히 치고 들어와 우리의 생각을 병들게 하고 많이 가지고도 상대적 박탈감과 허기를 느끼는 수직사회에서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실제로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하고 상처를 입었던 작가는 불평등을 대중 건강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view inequality a public health problem). 건강을 해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수직적 사다리가 아니라 평평한 사다리가 필요하다. 언제든 누구든 이동이 가능할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사다리.
수평적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를 가지려면, 부의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져야 하고, 가진자는 더 많이 기부하고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자신의 연봉을 낮추고 고위 간부를 해고하고 신입사원을 더 선발함으로써 회사의 사기를 높인 CEO의 사례도 있었다.
개인의 주관적 비교가 우리 뇌속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비교를 함에 있어 신중하고 지혜로와야 한다. 첫째, 상승비교(upward comparison) 아니라 하강비교(downward comparison)를 하라고 충고한다. 또한 비교를 재구조하여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의 비교를 하라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위로 위로만 올라가려는 것 때문에 힘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록해 보는 것도 나름의 처세라 한다.
삶에 있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생각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항상 남과 비교하는 무의식적 기본 패턴을 막을 수 있다고.(Making the conscious effort to consider what genuinely matters interrupts the unconscious default pattern of looking to others...)
현재 내 마음 속 가난함과 허기 역시 가시적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과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가난한 느낌”이라는거 안다. 어리석다는거 아는데 관점을 바꾸기가 어렵다. 의식적인 나 자신의 노력이 없다면 난 늘 가난할 것이다 ㅜ. ㅜ. 비교를 벗음으로 진정한 자유를 얻어 부유한 마음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