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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오랫동안 책꽂이에 있었고 인지도도 매우 높은 책이다. 내 책장이니 언젠가 읽었을터인데 기억이 정확지 않아ㅜ 누군가에게 추천해야 되서 기억을 되살리려 다시 읽었다. 책은 출판연도도 참고하여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넌픽션은 더욱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미 제목에서 책 내용 전체를 말해주는 마음 아픔이 있다.
그런데 올해 읽은 신간, Factfulness와 Enlightenment Now와 내용이 반대되는 내용이라 혼란스럽기도 하다. 물론 이 책은 2000년도에 발행되었고 후자 2권이 2018년도라 할 때 근 18년 사이에 이 세상은 훨씬 진보하고 발전하였기에 이제 기아로 죽는 사람이 줄어 들었다 믿어야 할까?
후자 두권은 데이터와 그래프 등의 구체적 양적 숫자로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여주는 책이었는데, 유엔식량특별조사관의 내용과 대치되는 이유는 실제로 기아의 실태를 파악할 수 없는 아프리카 지역은 통계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인가?
기아가 정치와 경제질서와 이리 밀접하게 관련되어 전 세계의 1/6이 기아로 죽어 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가 낳은 아이들의 무덤은 또 어떠한가?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이 테러집단을 먹여살린 사례도 되어 구호활동조차 딜레마에 빠지는 어려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외국세력의 조종을 받은 자국 군부에 의해 살해된 아옌다, 상카라의 죽음은 더욱 믿기지가 않는다. 이 땅에 정의라는 것이 살아 있기는 한건지... 선진세력이 현재 가진 것도 모자라 더 가지기위해 이렇게 무자비하게, 아니 무자비한 줄도 모르고 악역을 하고 있다니 무섭다. 권력다툼을 위한 전쟁과 인간 존엄 이전에 교리를 앞세우는 종교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낭만적 도움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기에 희망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의 중요성에 있다고 한다.
부디 마지막 나의 바램은 최근 서적 2권의 내용이 더 정확하고 18년 사이에 기아로 굶어 주는 아이들이 줄었고,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서구의 자유시장경제 논리의 압박에서 많이 벗어나 자급자족하는 나라들로 성장하고 내란도 줄어들어들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하였기를!!! 물론 북한의 동포들까지도.
이런 나의 바램은, 세계 시민으로 살면서 인도주의적 도움의 손길에 아무 것도 보태지 않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위한 수단인가?